충청당의 탄생과 그 운명 |
4·9총선거 결과는 여러 면에서 놀랍다. 여야 거물들이 여지 없이 나가 떨어지고 많은 후보들의 철옹성도 무너졌다. 유권자들은 후보들을 한발 앞서 갔다. 잘 따라잡은 후보들은 성공했고 그렇지 못한 후보들은 고배를 들었다. 여론조사를 너무 믿고 긴장을 푼 후보들 중 실패한 사람이 많다. 중앙정치보다 현장 밑바닥을 훑고 다닌 후보들이 유리했다. 과거의 유명세가 큰 행세를 못한 것이다. 지명도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선거에서의 결정력은 감퇴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번 총선에서 나타난 충청의 민심은 지금 정가의 최대 화제중 하나다. 대선때 급조된 자유선진당의 대전·충남 석권은 과거의 정치상식을 뒤엎은 이변이다. 여기에는 두 번씩이나 대선에서 아깝게 떨어진 이회창씨에 대해 충남유권자들의 아쉬움과 동정이 있다. 또 민선지사를 세 번씩이나 역임한 심대평씨가 있다.그 둘의 결합이 매우 긍정적인 화학반응을 일으켰다. 만약 이회창만의 신당이나 심대평만의 국민중심당이었다면 과연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그러나 선진당의 바람을 이런 인적 요소로만 해석할 수는 없다. 지난 1996년 15대 선거때는 이보다 큰 충청바람이 있었다. 이른바 자민련 태풍이었다. 그때는 김영삼세력이 김종필씨를 드러내놓고 박대함으로써 충남을 뿔나게 했었다. 한번 화를 내면 유독 무섭다는 충청도기질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그러나 이번은 그때처럼 충남을 화나게 할 사건도 없었고 이회창-심대평씨가 김종필씨처럼 자타가 공인하는 충남의 대표선수는 아니었다는 점에서 특이한 결과가 나온 것이다. 물론 선진당 말고는 마땅한 정당이 없었다고 하면 그만이다. 그럼 선진당이 그렇게 확고한 인기를 누릴 만큼 대단한 정치결사체였던가. 이번 선거의 이면에는 분명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출발에서 공천에 이르기까지 보여준 실책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만 갖고는 전부를 해석할 수 없다. 충남인들의 강력한 지지를 이끌어 낸 데에는 또다른 힘이 있을 것이다. 바로 자아의식의 발로다. 우리가 언제까지 영남과 호남의 양대세력 사이에 끼여 시달리고 홀대를 받을 것인가에 대한 반동심리다. 이제 더 이상 고래싸움에 등이 터지는 새우의 신세가 되지 않겠다는 결의의 표시다. 적어도 권력의 세계에 관한 한, 충남은 영·호남의 눈치를 보고 그들의 시혜에 일희일비하는 운명이었다. 그것이 운명이었기에 받아 들였고 또 지역감정을 자제해야 한다는 명분 때문에 참아왔지만 이제 ‘노 모어(no more)'라고 단호하게 소리를 지른 것이다. 다만 이번 총선거에서 충북의 결과는 전혀 딴판인데 바로 이때문에 충남과 충북의 동질성, 즉 충청의 정체성이 무엇인가에 대해 많은 사랍들이 혼란에 빠져 있는 상태다. 돌이켜보면 우리 정치사에서 영남과 호남은 대통령을 비롯하여 권력의 요충을 거의 다 차지해왔다. 충청의 불만과 소외에 대해서는 그것이 폭발하지 않을 수준에서만 손을 써왔다. 흡사 우는 아이에게 과자를 물리는 것과 비슷한 대증요법이었다. 그들은 선거나 권력배분때 유감없이 지역성을 발휘하면서도 충남인들이 그렇게 하려고 하면 즉각 지역감정을 자제해야 한다며 막아섰다. 유독 충남인들에게만 공자님 말씀을 지키며 양반처럼 행세하라고 떠미는 것은 그렇게 고마운 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이런 이치로 볼때 이번에 ‘충남당’이 생긴 것은 순리다. 영남당, 호남당이 엄연히 존재하고 대한민국 정치지도를 석권하고 있는 마당에 충남사람들이 잃어버린 ‘땅’과 자존심을 찾고자 하는 것은 누구도 말릴 수 없을 것이다. 다만 문제는 이것이 대한민국 정치에 어떤 긍정적, 또는 부정적 결과를 낳을 것인가이다. 한때 강성한 정치세력으로서 원내 제3당의 지위를 누렸던 자민련의 재판, 또는 그 이상이 될 것인가, 아니면 2008년의 특수한 정치상황속에서 가능했던 반짝정당으로 축소지향할 것인가. 이는 앞으로 선진당에게 부여된 준엄한 시련이 될 것이다. 선진당이 이 험난한 정치세계에서 융성하려면 우선 충무공처럼 국가관이 투철한 정당으로서의 차별성을 보여줘야 한다. 동시에 충청의 이익을 얼마나 잘 대변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혹자는 그런 것이 지역주의를 더 심화시킨다고 지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선거민주주의의 한계인 것이며 어차피 민주정치는 세력균형이라는 현실위에서 운영되는 제도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언론인· 순천향대 교수-구월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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