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병무의 행복한 논어 이야기(53) 공자와 노자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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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와 노자의 만남은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공자는 노자보다 30년 쯤 나이가 어렸다고 한다. 그 시절 노자는 국경을 뛰어넘는 지명도를 누리며 정상에 있었다. 공자 역시 상당한 명성이 있었지만 노자에게는 미치지 못했다. 공자는 노자를 만나기 위해 나이 47세에 자신의 고국인 노나라를 떠나 노자가 있는 주나라로 향한다.
이 만남은 인류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하고 신비스러운 대사건 중의 하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동양사상의 두 축을 이루는 유교와 도교의 원조들의 만남이었기에 그렇다. 공자가 노자에게 학생처럼 질문을 하면서 나눈 대화를 최인호씨의 소설 유림을 통해 살펴보자.
“예(禮)란 무엇인가요?” “훌륭한 장사꾼은 물건을 깊숙이 감추고 있어 얼핏 보면 점포가 빈 것처럼 보이듯 군자란 많은 덕을 지니고 있으나 외모는 마치 바보처럼 보이는 것일세. 그러니 그대도 제발 예를 빙자한 그 교만과 그리고 뭣도 없으면서도 잘난 체하는 말과 헛된 집념을 버리라는 말일세."
언뜻 보기에 노자가 공자에게 충고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또 노자는 신선처럼 고상해 보이는 반면 공자는 무언가 자리를 좇아 출세를 지향하는 이미지를 풍긴다. 이 때의 만남으로 인해 공자는 노자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세상의 정치적인 자리에 연연하는 해바라기 같은 지식인이라는 비판을 수없이 받게 된다. 하지만 공자는 노자를 추종하는 사람들의 비판에 흔들리지 않고 더욱더 현실론자로 돌아서서 왕도정치(王道政治)의 실현을 부르짖는다. 물론 노자에 대한 존경과 함께.
공자와 노자는 동양사상의 두 축을 이루며 절묘한 보완관계를 형성한다. 공자의 가르침을 받은 후진들은 현실정치에 뛰어들어 개인과 국가의 발전을 위해 수양을 하고 지배계층의 길을 걷는다. 반면에 현실을 좇기보다는 자유의지대로 살기를 원하는 지식인 또는 힘이 없는 민중들은 노자의 사상을 따라 도교로 발전해 나간다. 소위 제도권과 재야의 갈림길이 여기서 생긴다. 제도권 인사들은 참여 속의 개혁을 부르짖는 반면에 재야인사들은 세상은 어차피 근본적인 개혁이 어려우니 괜히 흙탕물에 몸을 담그지 말 것을 권유한다.
그러면 제도권과 재야는 어떤 관계인가. 재야가 있기에 제도권에 있는 사람들은 기준과 원칙을 인식할 수 있다. 재야가 제도권을 위해 거울의 역할을 함으로써 궤도이탈을 방지해 준다. 다시 말하면 공자가 있기에 노자가 빛나고 노자가 있기에 공자가 빛나는 것이다. 땅에 발을 붙이고 현실을 직시하면서 혁신을 모색하는 공자에게서 삶의 고뇌를 볼 수 있다, 또한 현실을 초월하여 유유자적하는 노자의 모습에서 자유를 느낀다. 이렇게 위대한 두 인물의 보완효과를 통해 동양사상이 성장하고 발전해 왔다.
그러나 우리는 인생의 무대에서 공자와 노자 중 어느 한 쪽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서 인생에 대한 태도가 중요시 된다. 조직 생활을 하는 직장인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공자와 같은 입장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오늘날 경쟁에 지친 현대인들은 노자처럼 하늘을 날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몇 번씩 생겨날지 모른다. 그러나 실천으로 옮기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시인 박목월 선생의 ‘나그네’란 시가 현대인의 양면적인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시는 복잡한 세상사를 모두 잊어버리고 구름에 달 가듯이 나그네처럼 어디론가 훌쩍 떠나가고 싶은 마음을 잘 묘사해 주고 있다. 하지만 가족을 생각하고 직장에서 얽히고설킨 인연을 고려할 때 현실을 뛰쳐나와 세상 밖으로 훌훌 털고 달려 나갈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
물론 삶 자체를 노자처럼 여유롭게 사는 사람도 있고 그런 사람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 세상은 ‘다수의 공자와 소수의 노자’가 필요한 것이다. 다수가 노자처럼 사는 것은 이상일지 모르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마치 우리 인생이 나그네이지만 삶 자체를 나그네처럼 살 수 없듯이.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南道)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주5일제 실시가 본격화되고 있다. 휴식은 재충전을 의미한다. 삶의 질을 모색하는 여유도 찾아보자. “주중에는 공자처럼 치열하게 주말에는 노자처럼 여유롭게” 살면 어떨까. 아니면 일주일에 하루 또는 한 시간만이라도 노자처럼 사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자. 우리의 삶 속에서 공자와 노자가 만날 때 보완효과를 통해 인생의 깊이와 삶의 질이 그 만큼 높아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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