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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진인사의 길로 가야

럭키홍 2009. 12. 7. 16:21

[김대중 칼럼] 세종시, 진인사(盡人事)의 길로 가야

  
김대중·顧問

현 시점에서 李대통령은 '최선을 다했음'에 자족하고
'어쩔 수 없음'으로 물러서는 것이 현명할 것 같다

이명박 대통령은 1주일 전 한나라당 간부들과의 조찬 자리에서 세종시 문제와 관련, 자신이 세종시 문제에 최선을 다했는데도 충청도민(道民)이 이를 받아주지 않으면 도리가 없지 않으냐는 취지의 말을 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 발언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여러가지로 해석이 엇갈리는 모양인데 이 대통령의 진인사 대민심(盡人事 待民心)의 심경과 아울러 '피로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사실 이 대통령은 선거 당시 했던 약속을 뒤집는, 상당한 정치적 손실을 무릅쓰면서도 나름대로 나라의 '장래'를 생각해서 세종시 원안을 수정하려 하는 것임을 우리는 인정해줘야 한다. 세종시 원안을 수정하려는 이 대통령의 '백년대계'는 적어도 그 '논리'면에서는 수긍이 가는 점이 있고 그것을 굳이 색안경을 쓰고 볼 이유는 없다.

하지만 세종시나 4대강 같은 국가의 대사(大事)는 논리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런 일은 그 논리의 골격에 '정치의 옷'을 입힐 수 있을 때 비로소 실효성이 입증되는 법이다. 이 대통령은 논리의 힘에 너무 의존한 나머지 '정치'를 소홀히 한 때문에 세종시 문제에 좌초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먼저 무엇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구체적 어젠다와 대안을 갖추고 출발했어야 했다. 그리고 자신의 주장을 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충분하고도 필요한 의회적 장치, 즉 국회에서의 지지도를 치밀히 계산했어야 했다. 또 충청도민과의 대화를 통해 '적지(敵地)에서 생환한다'는 정면돌파의 의지를 확고히 천명했어야 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논리가 설득력 있고 자신의 '고해성사'가 크게 환영받으리라 과신했던 것 같다. 그러나 '대통령과의 대화'방송 이후에도 세종시 문제와 이 대통령의 논리에 대한 전 국민적 판도가 바뀌지 않고 있는 현 시점에서 이 대통령은 이제 '최선을 다했음'에 자족하고 '어쩔 수 없음'으로 물러서는 것이 현명할 것 같다.

우선 그럴 수밖에 없는 가장 현실적인 요인은 세종시 수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야당 전부가 반대하고 한나라당 내 친박계(40~50석)가 반대하고 있는 한, 친이계 100여석으로는 개정안 통과에 필요한 과반수에 훨씬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둘째 이 대통령이 제시하고 있는 방안대로 과학, 비즈니스, 연구소, 대학 등이 들어가려면 어림잡아 '원안'일 때 들어가는 돈보다 더 들어가면 들어갔지 절약되는 것이 없다. 이 대통령의 계산이 '백년대계'와 '국가재정'에 있었다면 그의 계산은 이미 빗나갔다. 그렇다면 문제의 핵심은 결국 '행정부처의 이동' 여부로 귀결된다. 행정부처 몇개 옮기지 않으려고 그 많은 정치역량을 소모하면서 당론분열에다 지역대립, 국론분열까지 감수하는 것은 MB식(式) 계산으로도 '손해보는 장사'다. 행정부처 이전 문제는 세월과 시대의 흐름에 맡길 수밖에 없다.

셋째 이 대통령은 더 이상 이 문제로 발목 잡혀 있을 여유가 없다는 점이다. 이 대통령 자신도 여러차례 한탄했듯이 지금 세계적 경쟁무대에서 해야 할 일이 많고 또 국내적으로 4대강, G-20 회의, 교육개혁 등 바쁜 일이 산적해 있는데 언제까지 세종시에 매달려 소모적, 낭비적으로 시간을 보내야 하는가 하는 문제다. 더욱이 내년 지방자치단체선거(6월 2일)에서 현 정부의 여당이 힘을 얻지 못하면 MB가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시간은 6개월 남짓이다. 그렇게 중차대한 시간을 잡아먹으며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세종시 문제에 붙들려 있는 것은 정치적으로 난센스다.

한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세종시 문제는 그것이 원안대로 가든 수정되든 국민들이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는 실체적 '결과물'이 없다는 것이다. 경부고속도로는 건설 초기 야당의 온갖 반대에 부딪혔었지만 '고속도로'가 건설된 뒤 반대했던 국민들도 좋아했다. 4대강도 그럴 것이다. 4대강이 정비되고 강이 살아남으면 그것으로 반대자들의 '근거'를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종시는 훗날 옳고 그름은 가려지겠지만 가까운 미래에 큰 변화가 드러나고 실체적으로 손에 잡히는 '결과물'이 남을 일은 아니다.

이 대통령의 세종시에 관한 생각, 주장, 그리고 솔직함 등에 공감하는 국민은 많을 것이다. 지난 시절 포퓰리즘의 굴레에서 벗어나 잘못된 것(자신의 관점에서)을 고쳐보겠다는 용기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이 대통령이 여기서 후퇴하면 정치적으로 큰 상처를 입을 것으로 걱정하는 측도 상당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도자에게는 잘못된 것을 보고 그것을 고치려는 의지와 노력에 못지않게,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해도 효율적이지 못한 일에 매달려 국력을 낭비하기보다 '최선을 다하면서' 정리할 줄 아는 용기 역시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