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희 전대통령의 마지막 하루 ♣ (10.26. 그날의 진실중) | |
나는10.26事件의 直接的인 契期가 됐던 釜馬事態의現場에 있었던 以後朴正熙大統領 弑害事件과 이 事件의 後爆風인 12.12事件을 長期間 取材해 왔다. 이런取材는 朴大統領傳記執筆로 이어졌다.
이 冊은 내가 1997年부터 1999年 末까지 [朝鮮日報]에連載했던 <近代化革命家 朴正熙의 生涯: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가운데10.26事件을 다룬 部分만 뽑아낸 것이다. 요사이 새삼스럽게 10.26事件이 社會的 論爭거리가 되고이 事件을 잘 모르는 젊은層이 많아져 이冊을 내게 됐다.
내가 10.26事件을 取材하면서 個人的 好奇心을 풀려고 한 臺木이 있다.朴大統領은 果然 가슴 貫通傷을 當하고도"난 괜찮아" 라고 말했을까.나는 10.26事件의 現場에 있었던 主要人物들을거의 다 만났다.勿論 거기에는 그 最後의 晩餐場에 있었던 세 生存者도 包含된다.金桂元(當時大統領秘書室長), 沈守峰(歌手), 그리고 申才順(女大生).이들 중 申才順氏의 證言이 가장 正確했다.申氏는 는 大擔한 性格인 데다가 記憶力과 表現力이 大端했다.하느님이 그女를 朴正熙의 最後 目擊者로 選擇했다는느낌이 들 程度였다.
한가한 시간에 피아노 치는 박 대통 1979년 10월 26일 오후 7시 45분, 김재규金載圭의 권총 발사로 가슴을 관통당해 등에서 피를 괄괄 쏟고 있던 박정희 대통령을 혼자서 안고 있었던 이가 신씨였다. 차지철車智澈 경호실장은 팔에 총상을 입고 실내 화장실로, 김계원 씨는 바깥 마루로, 심수봉 씨는 김재규가 다가 오는 것을 보고 달아난 이후 신씨만이 대통령을 피범벅 속에서 안고 있었다. 김재규는 합동수사본부 수사에서 이렇게 진술했다. "차지철을 거꾸러뜨리고 앞을 보니 대통령은 여자의 무릎에 머리를 대고 있어 식탁을 왼쪽으로 돌아 대통령에게 다가가자 여자가 공포에 떨고 있었습니다. 권총을 각하의 머리에서 50cm 거리에 대고 쏘았습니다. "이 순간을 40대의 중년의 중년여성으로 변한 신재순 씨는 이렇게 기억했다(1997년의 증언) "그 사람의 눈과 마주쳤을 때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인간의 눈이 아니라 미친 짐승의 눈이었어요. 그가 대통령의 머리에 총을 갖다 대었을 때는 다음에는 나를 쏘겠구나 생각하고 후다닥 일어나 실내 화장실로 뛰었습니다. 저의 등 뒤로 총성이 들렸습니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도 문손잡이를 꼭 쥐고 있었습니다." 바깥이 좀 조용해지자 신씨는 화장실 문을 열고 나왔다. 대통령은 실려 나갔고 문 앞에 차 실장이 하늘을 보고 쓰러져 신음하고 있었다. 신씨가 일으키려고 손을 당겼다. "차 실장은 몇 번 힘을 써 보다가 포기하는 눈빛으로 말했습니다. "난 못 일어날 것 같애." 그러고는 다시 쓰러져 신음하는데 그 눈빛도 잊을수가 없어요.그날 밤 차 실장은 김재규 부장을 자극하고 약을 올리듯 막말을 했습니다. 그래도 차실장이 고마운것은 그날 제가 대기실에서 면접을 볼 때 술을 못 마신다고 했더니 그분은 "옆에 깡통을 갖다 놓을테니 거기에 부어 버려라" 고 말하더군요. 나는 박정희의 마지막 모습에 대해서 신씨에게 여러 모로 물어보았다. 신재순씨의 설명은 일관성이 있었다. "그날 밤 대통령 께서는 좀 취하셨던 것 같아요. 하지만 몸을 가누지 못하거나 말이 헛 나올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인자한 아버지 같았어요. 피를 쏟으면서도 "난 괜찮아" 라는 말을 또박 또박 했으니까요. 그말은 "난 괜찮으니 자네들은 어서 피하게" 라는 뜻이었습니다. 일국의 대통령 이시니까 역시 절박한 순간에도 우리를 더 생각해 주시는구나라고 생각했었죠. 그분의 마지막은 체념한 모습이었는데 허무적이라기 보다는 해탈한 모습 같았다고 할까요. 총을 맞기 전에는 "뭣들 하는 거야" 하고 화를 내셨지만 총을 맞고서는 그 현실을 받아들이겠다는 자세였어요. 어차피 일은 벌어졌으니까요." 근혜, 근영 두딸과 아들 지만 생도를 찾아간 박 대통령 해탈한 모습으로 운명을 받아들인 박정희! 총성과 고함과 비명이 오고 가는 아수라장 속에서 피하지도 숙이지도 애원하지도 않고 담담하게 "난 괜찮아"란 말을 남기고 떠난 사람. 그래서 나는 그가 참 멋진 모습으로 죽은 사람이란 생각을 하곤 한다. 그가 보통 사람처럼 행동 했더라면? 차지철 실장처럼 실내 화장실로 달아나 숨어 있는것을 김재규가 문을 차고 들어가 그를 사살하는 모습이었다면 우리는 지금 그를 어떻게 기억해야 할것인가. 박정희의 비범한 죽음과 그 증언자 신재순 씨로 인해서 우리는 영웅을 잃지 않게 되었다. 해탈한 초인超人의 모습으로 죽은 박정희의 국장(國葬), 최규하(崔圭夏) 대통령 권한대행이 영전(靈前)에 건국훈장을 바칠 때 국립교향악단은 교향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작곡)를 연주했다. 독일 철학가 니체가 쓴 동명(同名)의 책 서문을 음악화한 이 곡의 선정은 얼마나 상징적 이었던가. 니체는 이 서문에서 "인간은 실로 더러운 강물일 뿐이다"라고 썼다. 그는 "그러한 인간이 스스로를 더럽히지 않고 이 강물을 삼켜버리려면 모름지기 바다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덧붙였다. 어느 행사장에서 담배를 피며 활짝웃는 박 대통령 내외분 한 시대의 청탁(淸濁)을 다 들이마시고도 끝까지 자신의 혼을 더럽히지 않고 죽어 간 박정희를 나는 서슴치 않고 초인(超人) 이라고 부른다. 무자비한 권력욕의 화신이 아니라 부끄럼 타는 초인! 하나 우스운 것은, 김재규의 지령을 받아 두 대통령 경호원을 사살 하는 등 이날 궁정동 작전을 지휘했던 박선호(朴善浩) 중앙정보부 의전과장이 일대 학살극을 끝낸 뒤 두 여인(심수봉,신재순)에게 각각 20만원이 든 돈봉투까지 주고 차에 태워 집으로 보내 주었다는 점이다. 대통령이 사살 당하는 것을 목격한 두 사람을, 이 사건의 주역이 아무 감시역도 붙이지 않고 현장에서 이탈하게 했다는 이 점이 10 . 26사건의 성격을 이야기 해준다. 과감하지만 치밀하지 못한 김재규의 지리멸렬상이 그것이다. 그래서 그는 권력을 잡지 못하고 전두환(全斗煥) 의 등장에 길을 열어 주엇던 것이다. 10월 26일 밤의 행동에 의하여 상처받고 의심받은 요인들과 이 약점을 이용한 세력이 있었다. 이날 밤은 그뒤 10여 년의 한국 역사를 상당 부분 결정했다. 여름 휴가때 망중한을 즐기던 박 대통령의 어느날 오후에 계엄사령관으로 등장한 정승화(鄭昇和) 장군은 김재규의 계략에 의해 대통령 시해 현장에 초대 받아 와있었다는 점으로 해서 의심을 샀고,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은 지도자의 용기와 결단을 보여주지 못했다. 핵심 인물의 권위가 약화된 틈을 타서 정규육사 출신 장교단 의 대표격인 전두환 장군이 권력공백을 채우게 되는 것이다. 10월 26일의 하루는 박정희의 18년을 마감하고 13년의 전두환, 노태우 정권을 탄생시킨 24시간이었다. 그럼 점에서 이날은 한국 현대사의 가장 길었던 날, 가장 드라마틱했던날로 기억된다. 30여년의 역사를 해체하고 재구성한 하루였다. 이 책을 쓰는 데는 이동욱(李東旭)(전 조선일보 기자. 현 한국 갤럽 근무)씨의 취재협력이 컸음을 밝혀둔다. 2005년 2월 조갑제 (趙甲濟) 석유파동 직후 대통령은 여름 어느날 박 전대통령이 낮에 점심시간을 이용해 이발을 하면서 상의와 와이셔츠 를 벗고 이발의자에 앉았는데, 박대통령이 경부 고속도로 공정 점검차 헬기를 타고 지방으로 향하던중 엔진고장으로 수원의 밭에 불시착을 하지요. 헬기가 노후해 부속이 낡았기 때문이지요. 측근들이 새로운 헬기 도입을 수차 권하였으나 달러를 쓸수없다고 일언지하에 거절 합니다. 그리고, 그는 찝차를 타고다니며 민정시찰을 했습니다. 십여년이 넘도록 서너대의 찝차만을... 1964년엔가 독일 방문을 했을때 한국 교민인 광부와 간호사들 앞에서 울고 말지요. 가난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그들의 고생에 목이 메였기 때문에... 미처 말도 다 끝내지 못하고서... 돌아오는 승용차 안에서 그가 또울자 독일의 뤼브케 대통령이 자신의 손수건을 건네며 위로하고... 파월 장병을 월남에 보내놓고 밤새 담배를 피웠던 박전 대통령 이었습니다... 독일과 월남에서 벌어들인 달러로 이 나라의 경제 개발은 힘을 받아서 한강의 기적을 이루지요... 해진 혁대. 궁정동에서 총상을 입고 국군 서울지구병원으로 달리는 차안에서 김계원 비서실장이 안고 있는 중에 김희정의원 밝혀… 지금 노무현씨는 멀쩡한 전용헬기를 놔두고 1200억원 이란 막대한 국민의 혈세를 쏟아부어 한대에 400억가는 헬기를 3대나 도입 합니다. 부자 나라이며 강대국 미국의 대통령 부시 전용헬기도 10년이 넘었지만 운항을 하고 있는데요. 최고급 독일제 BMW 승용차를 5대씩이나 들여오고. 대통령 임기가 고작 5년인데도... 그동안도 무능하고 쓸데없는 일에 치우쳐 민생과 경제를 팽겨치고 모든일에 대해서 강건너 불보듯 하고 있는 그는 도대체 어느나라 사람이며 어느나라 대통령인지요. 빨리 임기나 끝났으면 좋으련만 왜 그렇게 긴지... 한번 잘못 선택한 사람 때문에 온 나라가 흔들거리고 정신을 차릴수가 없으니 참 안타까운 일이지요... 서거한지 27년이나 된분에게 싸움을 걸고, 대통령의 장부. 박 대통령 부속실에서는 세가지 장부를 유지하고 있었다. "가족장부"는 대통령을 제외한 두 딸과 한 아들의 잡비 씀씀이를 다룬 것이었다. 1979년 10월에는 27만 9,388원이 지출됐다. 2층 내실 담당 가정부 미스 원에게 10만 원, 신당동의 대통령 사저를 관리하고 있던 박환영 지금 노씨의 부인 권씨는 강남의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의 옷(한벌당 기백만원)을 한번에 서너벌씩 구입해 입는다한다. 남편의 봉급에서,아니면 증권에 투자해 번돈으로.? 설마 판공비로 쓰지는 않기를 바랄뿐... 지금도 석연치 않게 규명이 제대로 안되는 서너건의 게이트 사건들.. 제발 퇴임해서 법의 심판없이 평범한 시민으로 진정한 이땅의 단 한사람의 지도자 였습니다. 1968년도에 외대에 특강을 하러온 육 여사가 방명록에 사인하는 모습 육영수 여사 1968년 육성.출처 푸른바다님 네이트블로그.*** modrige님 포스트에서 인용 ***이제는 슬퍼하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했건만 문득 떠오르는 당신의 영상 그 우아한 모습 그 다정한 목소리 그 온화한 미소 백목련처럼 청아한 기품 이제는 잊어 버리려 다짐했건만 잊어 버리려 하면 더욱 더 잊혀지지 않는 당신의 모습…(1974년 9월4일)박대통령 일기에서...
장모 이경령 여사와 육여사 묘소를 참배한 박 대통령 박지만씨와 서향희씨 박대통령 묘소참배, 박근혜 대표와 함께 지만씨의 아들이 태어나 박 대통령의 가통을 잇게 된것을 축하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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