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지도자는 사람에게서 희망을 읽는 자…운명은 개척하라"
우리 역사에서 수양대군, 즉 세조만큼 양 극단의 평가를 받는 국왕도 드물다. 그는 한편에서 "쿠데타와 위압으로 집권 즉위했기 때문에 왕위의 명분과 정통성의 하자를 은폐하기 위하여 또 다른 불법을 자행한 철권통치자"로 규정된다. 정반대의 시각도 있다. "세조 당시에 우리나라의 문물이 미증유의 융성을 이루었다"는 평가가 그것이다.
실제로 실록을 보면 당시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태평시대"를 즐겼다고 한다. 즉위과정이나 통치방식에 있어서는 심각한 흠결이 있지만, 그 시대 백성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문화를 윤택하게 만든 지도자를 어떻게 봐야 할까?
세조가 수양대군 시절 김종서 등 많은 인재들을 제거하고 왕위에 오른 일은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즉위 이후의 언행 역시 보통 임금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것이었다. 그중에 하나가 국왕이 베푸는 빈번한 술자리다. 술자리에서 그는 신하들과 친밀감을 조성하고 그들의 속마음을 듣고 싶어했다.
덕분에 정인지처럼 술만 취하면 세조에게 "너(汝)"라고 반말을 하는 신하가 관대하게 용납되기도 했다. 하지만 양정처럼 취중진언으로 목이 잘린 경우도 있었다. 계유정난 때의 일등공신인 양정은 술이 반쯤 취한 상태에서 "이제 그만 왕위에서 물러나시라"고 진언했다가 도성 밖에 끌려나가 참수(斬首)의 변을 당했다.
대화 상대에 따라 술자리 장소도 달라졌다. 경복궁의 집무실(便殿)인 사정전 술자리에는 주로 외국 사신들이 초대되었고, 그 뒤의 왕의 침전인 강녕전에서는 종친이나 공신을 위로하는 주연이 열리곤 했다. 궁궐 뒤쪽의 은밀한 왕비 침전인 교태전에서도 술자리가 베풀어졌는데, 한명회·신숙주 등 왕의 최측근들만이 그 자리에 초대받았다. 이러한 세조의 '주석(酒席)정치'는 세종의 '경연(經筵)정치', 즉 고전을 놓고 회의를 시작해 말과 일을 엮는 방식으로 창의적 회의를 이끌었던 것과 대조를 이룬다.
그럼에도 그는 14년이라는 길지 않은 재위기간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진관(鎭管)체제'라고 불리는 향토방위 개념에 기초해 전국적인 방위체제를 수립한 일, 세종시대에 뒤이은 대규모 사민정책, 토지개간을 통해 농업생산을 증대시키고 민생을 안정시킨 일, 하늘제사를 복원하고 많은 편찬사업을 통해 자주적인 국가·문화의식을 고양시킨 일, 그리고 잘 알려진 것처럼 조선왕조 운영의 기틀이 된 종합법전 '경국대전'을 편찬한 것 등이 그 예이다.
세조는 어떻게 결격 사유에도 불구하고 그 많은 업적을 남길 수 있었을까? 세조실록을 통해 우리는 세조의 성과 뒤에 성공적인 리더십 요소가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세조는 왕자 시절 "나는 남이 하는 것은 하지 않고, 반드시 남이 하지 않는 것을 하는 자"라고 스스로를 정의한 적이 있는데 그는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해가는 사람이었다. 1468년 9월에 세조가 재위 14년 만에 52세의 나이로 사망했을 때, 신하들은 그를 "책운제권(策運制權)" 즉 스스로의 운명을 획책하여 권세를 제어한 군주로 평가하기도 하였다.
수양대군 시절 그는 "일이라는 것은 모두 세(勢)의 흐름의 영향을 받는데, 세란 것은 하늘의 뜻이다. 그러나 사람의 일이 더욱 중하다. 어리석은 자는 하늘에 미루고 지혜로운 자는 사람에게서 모든 것을 살핀다(事皆勢而勢亦天 然人事重. 愚者推之於天 智者審之於人)"고 하여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곤 했다. 인재에게 일을 맡겨서 난관을 돌파하게 하는 그의 강한 추진력은 재위 6년째인 1460년 7월의 여진족 토벌에서 잘 나타났다. 명나라와의 관계 등을 고려해 토벌을 망설이는 신숙주에게 그는 "기회를 놓칠 수 없다. 용병(用兵)에서 가장 안 좋은 것은 머뭇거리는 것"이라면서 거병을 촉구했고, 이후 북방지역은 점차 안정화됐다.
이처럼 역사는 조선의 제7대 왕 세조를 통해 지도자의 개척정신과 추진력이 정권의 성공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보여준다. 몇 년 전 미국 하버드대학의 바버라 켈러먼(Kellerman) 교수는 이런 현상, 즉 집권과정이나 통치방식이 정당하지 않은 지도자가 좋은 결과를 낳는 패러독스를 '리더십의 딜레마'라고 불렀다. 세조보다 약 50년 뒤에 살았던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의 정치판에서 일어나는 그런 패러독스를 목격하고 '강압적인 리더십이 가져올 수 있는 기회'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도저히 넘기 힘들어 보이는 장애물이 앞에 놓여 있을 경우 '진정한 지도자는 사람에게서 희망을 읽는 자이며, 혼신을 다해 운명을 개척해 나가면 불가능해 보이는 그 문도 활짝 열린다'는 세조의 좌우명을 기억하면 어떨까. 올봄 세조의 좌우명을 경영철학으로 삼아 도전하는 리더에게 큰 성과가 있을 것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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