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이야기

사필귀정, 한·미 원자력협정

럭키홍 2013. 5. 9. 11:51

 

사필귀정, 한·미 원자력협정한·미 원자력협정이 별다른 진전 없이 2년 연장되었다.

 

한국은 미국 정부에 지속적으로 불만을 토로했지만, 뾰족한 수는 없다. 어느 정부도 깊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채 세월만 허비했다.
조회수 : 589 |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

 
 

4월16일부터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된 6차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이 마무리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내년 3월19일 만료되는 기존 협정 시한을 2년 연장하고 추가 협상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미국 측은 원자력수출통제법 등 관련법의 적용 기준을 완화해 한국이 원전을 해외에 수출하는 데 필요한 미국산 설비 반출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우리 측이 줄곧 원전 연료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요구해온 저농축 우라늄 자체 생산과 ‘사용후 핵연료’의 재처리 문제에 대해서는 수용할 수 없다며 명확히 선을 그었다.

“시대에 뒤떨어진 한·미 원자력협정을 개정하겠다”라는 대선 공약을 내걸었던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실망스러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40년 전에 만든 이 협정이 세계 5대 원자력 대국으로 성장한 한국의 현실과 맞지 않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23기에 달하는 국내 원자력 발전소에 안정적으로 원료를 공급하는 일이 주요 과제로 떠올랐으며, 2016년부터 사용후 핵연료를 저장할 시설이 포화 상태에 이르게 된다는 전망까지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사정을 몰라주는 미국의 무심함에 우리 정부는 지속적으로 불만을 토로해왔다. 특히 한국과 일본 모두 똑같은 미국의 동맹인데 왜 일본만 우대하느냐는 문제 제기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 1988년 미·일 원자력협정 개정 당시 미국은 일본에 ‘전면적 협력국’이라는 1등급 지위를 부여하며 농축과 재처리를 허용한 바 있다. 반면 한국은 미국과 원자력협정을 맺은 50여 개 국가 중에서도 4등급에 해당하는 ‘제한적 협력국(핵연료 농축·재처리 금지 대상국)’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쯤 되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은 어떻게 해서 그런 지위를 누릴 수 있게 됐을까. 답은 간단하다. 쉽게 말해 ‘운때’가 맞았다. 1988년 당시만 해도 핵 확산 문제가 지금처럼 중대한 쟁점이 아니었다. 더욱이 일본은 미국 핵무기 공격의 피해 당사국이다 보니 비핵화 의지를 상대적으로 쉽게 미국에 납득시킬 수 있었다. 반면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은 사뭇 다르다. ‘핵무기 없는 세계’라는 구호를 내건 오바마 행정부는 핵 비확산을 최우선 정책으로 추구하고 있다. 또한 북한과 이란 핵 문제가 민감한 사안으로 떠오르는 시점에 한국에 유리한 협상 개정을 이뤄내기란 간단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한국의 일부 지도층 인사들이 ‘북한 핵에는 독자적 핵 억지가 최선의 방법이며 핵무기 보유를 위해서는 NPT 탈퇴도 고려해야 한다’라는 발언을 워싱턴 한복판에서 쏟아내고 있다. 이들은 우리 국민의 3분의 2가 핵무기 개발을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통계까지 흔들어댄다.

일부 지도층 인사들, 독자적 핵무기 보유 주장까지

명분뿐 아니라 세(勢) 구축에서도 상대가 되지 않는다. 워싱턴 정치 지형은 기본적으로 비확산을 중시하는 정서가 강하다. 동맹을 강조하는 행정부 일부와 미국 기업의 이익을 옹호하는 상무부, 웨스팅하우스 등 원자력 산업계를 빼고 나면 주류 정치 세력은 모두 농축과 재처리에 매우 적대적이다. 의회와 학계, 싱크탱크, 언론계가 모두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일본은 매우 오랜 시간에 걸쳐 우호세력을 키워나가고 반대세력을 설득했다. 반면 한국의 경우 본격적인 세 구축에 나선 게 얼마 되지 않을뿐더러 배정된 예산도 미미하기 짝이 없었다.

차이는 또 있다. 일본의 경우 정치력과 경제력도 크게 주효했다. 1988년 개정 협상 당시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서로 ‘론’과 ‘야스’라고 부를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 또한 심각한 무역 적자에 허덕이던 미국에게, 1985년 플라자 합의를 통해 자발적으로 엔고 정책을 펴면서 대미 무역적자 개선에 전향적으로 애썼던 일본의 태도는 고맙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미국이 일본에 농축과 재처리를 허락해준 데에는 이러한 막후의 교환관계가 있었던 것이다.

일본은 1950년대 후반부터 국가 차원의 장기적·포괄적 계획을 세우고 30년 가까이 협상을 준비해 성공했다고 알려져 있다. 과연 일본다운 접근법이다. 우리도 1990년대 중반부터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최영명 박사를 중심으로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협정 개정을 위한 중장기 전략을 마련한 바 있지만, 어느 정부도 깊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심지어 원전 수출에 열을 올렸던 이명박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이렇듯 따져볼수록 머릿속에 남는 것은 사필귀정, 네 글자뿐이다. 과연 2년 후라고 해서 뾰족한 수가 있을까. 우리 정부가 대미 협상 전략을 원점에서부터 다시 검토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