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산속 옹달샘(고전이야기)

인생에 대하여........(장문)

럭키홍 2007. 11. 9. 11:54
 

인생의 여러가지 감옥들
로이드(K.F. Lloyd) 교수는 “사람이 철이 들면서 스스로 여섯 가지 감옥을 만들어 놓고 그 속에 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첫째, 감옥은 자기의 좋은 면만을 보기 때문에 어느 한정된 틀에 매여 살고 있습니다.
둘째, 다른 사람의 가장 나쁜 면만을 보는 감옥을 만들어 사는 것입니다.
셋째, 사실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오늘과 내일을 암담하게 전망하면서 쓸데없이 불안하게 근심하는 감옥 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넷째, 자기의 지나간 옛것을 모두가 황금시대와 같고 오늘은 보잘것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향수의 감옥입니다.
다섯째, 다른 사람의 소유는 다 귀중해 보이고 자기 소유는 값싼 것으로 계산하고 있는 선망의 감옥입니다.
끝으로는 남이 잘되는 것을 배 아파하며 괜히 싫어하는 증오의 감옥을 스스로 짓고 그 속에 갇혀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로이드는 “이 여섯 가지의 인생의 감옥을 잠궈둔 자물쇠는 곧 자만심인데 이 자물쇠를 여는 열쇠는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다”라고 말했습니다.


인생의 소망은 어디에
데이빗 리빙스턴은 세기의 위대한 기독교인이요 선교사였다.
그가 아프리카에서 선교사역을 감당하다가 하나님이 부르심을 받아 그의 시신이 영국으로 옮겨져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시키게 되었다. 그때에 수만은 군중들이 그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 거리로 나왔다. 그러나 어떤 노인이 외로이 혼자서 군중들 후미에 홀로 서서 가슴을 조이며 슬피울고 있었다.

이 노인은 다름아닌 리빙스턴의 친구 윌리암이었다. 그는 리빙스턴이 아프리카에서 선교하러 가겠다고 나섰을 때 `미친 사람`이라고 말한 장본인이었다.
윌리암은 리빙스턴이 아프리카로 떠난 후 런던에서 큰 부자가 되었으며 오직 자기만을 위해서 살았다.

그런데 윌리암은 리빙스턴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이렇게 고백했다. `리빙스턴은 아프리카에서 고생하고 살았지만 많은 사람의 사랑을받고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명성을 떨치며 이 세상을 사라지는구나`며 `그러나 나는 비록 부자라고 말할 수 있으나 소망없는 세상을 위해서만 살았으니 얼마나 부끄러운가`라고 한탄한 것이다.

비록 리빙스턴은 가난하고 고생하며 선교지에서 보잘 것 없는 인생처럼 살았지만 하나님과 세상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고 윌리암은 부자요 세상에서 부러울 것 없이 살았지만 그는 소망없는 인생의 누린것이다.
우리 인생은 어디에 소망을 두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 것인가? ` 너 자신을 누구에게 필요한 존재로 만들라 누구에게든 인생을 고되게 만들지 말라` (에머슨)

인생을 바꾼 교사의 말 한마디

칭찬이든 꾸지람이든 사랑이 깔려 있을 때…

인류의 역사는 말의 역사라는 말이 있듯, 말의 중요성은 일찍부터 강조되어 왔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라는 우리 속담을 비롯해, 「고기는 낚싯바늘로 잡고, 사람은 말로써 잡는다」(독일), 「바다는 사람의 손에 의해, 세계는 사람의 입술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덴마크), 「친절한 말은 봄의 햇살처럼 따사롭다」(러시아) 등 동서양을 막론하고 말의 중요성이 강조되어 왔다.
더욱이 말하는 사람이 어떤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그 말은 엄청난 효력을 발휘할 뿐 아니라 때때로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기도 한다. 특히 학창 시절 교사의 말 한마디는 인생의 좌표가 되기도 하고, 좌표를 수정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교사의 말 한마디에 용기를 얻기도 하고 새로 운 꿈을 갖기도 하지만, 상처를 입기도 한다.

월간조선은 사회 名士(명사) 38人을 대상으로 「내 人生을 바꾼 교사의 말 한마디」라는 주제로 조사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이번 設問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적극적으로 답해주었다.
설문 응답은 칭찬 한마디로 자신의 진로를 찾은 경우와, 관심과 배려로 자 신의 분야에서 더욱 두드러질 수 있었던 경우, 교사의 꾸지람으로 인생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경우로 대별할 수 있었다.

金在奎(김재규·74) 영동대 총장, 웨이터 徐相祿(서상록·64)씨, 성악가 嚴正行(엄정행·57)씨, 영화배우 엄앵란씨 등은 선생님의 칭찬 한마디에 열등생에서 우등생이 되었고, 동양화가 金炳宗(김병종·48)씨, 탤런트 崔佛岩( 최불암·61)씨, 디자이너 앙드레 김, 방송인 裵漢星(배한성)씨 등은 선생님 의 칭찬에 고무되어 자신의 재능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국회의원 金洪信(김홍신·54)씨, 시인 鄭浩承(정호승·51)씨, 시인 金光林 (김광림·72)씨, 李海仁(이해인·56) 수녀, 소설가 朴婉緖(박완서·70)씨 등은 『글 잘 쓴다』는 한마디에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반면 全商國(전상국·61)씨는 『너 같은 게 작가가 되면 내 손에 장을 지진 다』 하는 선생님의 말에 오기가 생겨 작가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카피라이터 李萬才(이만재·57)씨, 수필가 皮千得(피천득·91)씨, 숭실대 명예교수 安秉煜(안병욱·81)씨 등은 선생님의 관심과 사랑으로 오늘날 자 신이 있게 되었다고 한다.
각각의 사연은 다 다르지만 공통점을 보면 칭찬이든 꾸지람이든 그것의 바 탕은 애정이 배어 있어야 하고, 개인의 개성을 잘 찾아 구체적으로 이야기 를 해준 경우 매우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었다.
이번 설문을 통해 말 한마디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동시에 교사의 역할이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설문 응답자들은 또한 「현직 교사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다양한 의견을 제시해 주었다.
「인성 교육을 중요시했으면 한다」, 「동기 부여를 해주었으면 한다」, 「 지식보다는 지혜를 가르쳐 주길 바란다」, 「학생을 자식처럼 여기길 바란다」 등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역시 공통점은 학생의 개성을 찾아 칭찬 과 격려를 해줄 것을 당부하는 것이었다. 또한 「따끔한 충고도 필요하다」 는 의견과 함께 「아무리 삐뚤게 나가는 학생이라도 꾸준히 관심을 가져주면 반드시 돌아온다」는 의견을 준 사람도 있었다.
한편, 설문에 응해준 사람 중에는 자신에게 영향을 준 스승은 있지만 특별 히 기억나는 말이 없다면서 가슴속에 그런 말 한마디가 없다는 사실이 무척 안타깝다며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주요내용
칭찬 한마디가 열등생을 우등생으로
엄앵란에게 『넌 구제 불능이야』
재능을 발굴해 준 선생님의 말
『기분 문제다? 참 좋다』
金洪信·李海仁·金鎭洪의 오늘을 있게 한 말 한마디
『정치과가 아니라 정치학과에 입학한 것을 잊지 마라』
李光洙의 충고
安淑善이 받은 꾸지람
『노력해야 성공한다』 / 현직 교사에게 주는 한마디
白惠善 (백혜선·피아니스트, 서울대 교수)
任雄均 (임웅균·한국예술종합대 교수, 성악가)
金章煥 (김장환·침례교세계총회장,극동방송사장,수원중앙침례교회목사)
徐廷旭(서정욱·과학기술부 장관)
李相禹(이상우·서강대 정치학 교수)
姜英勳(강영훈·前 국무총리)


칭찬 한마디가 열등생을 우등생으로

영동大 金在奎 총장은 칭찬의 중요성을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누구나 「나도 할 수 있다. 나에게 능력이 있다」는 유능감이 있 다. 하지만 이 유능감은 지도를 잘 받으면 현실로 나타날 수 있지만 아무에 게도 인정을 받지 못하면 소용이 없게 된다. 학생들이 선생님의 꾸지람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고맙게 생각하고 분발하는 계기로 삼는 것은 유능감이 있기 때문인데, 유능감이 칭찬과 마주치면 2~3배의 도약을 가져오게 한다』金총장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경남 합천군 용주초등학교 시절 수학 성 적이 「양」으로 저조했던 그는 6학년에 진급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담임인 마쓰다 선생은 그런 그에게 끊임없는 관심과 격려를 해주었다.
『너는 조금만 하면 되겠다. 그래, 자꾸해봐라』 마쓰다 선생은 이런 말을 해주며 지속적인 관심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고 , 결국은 수학 성적을 正常(정상)으로 올릴 수 있었다고 한다. 삼미그룹 부회장에서 웨이터로 변신해 놀라움을 던져주었던 徐相祿씨. 그의 어릴 적 별명은 「바보」였다. 공부가 하기 싫어 누나가 가르쳐 주는 것을 알고도 모른 척했는데, 그러다 보니 그만 바보로 낙인이 찍혀버렸고, 스스 로도 바보라고 결정해 버리고 공부를 하지 않았다. 경북 경산초등학교 3학 년 때까지 그는 꼴찌에서 1, 2등을 도맡아 했다. 그러자 학교 선생님과 친 구들마저도 바보라고 부를 정도였다.
그런 그가 하루아침에 天才가 되는 전환을 맞는다. 분수의 덧셈을 배우고 있었는데, 얼떨결에 정답을 대답했다. 담임인 이상호 선생님은 그에게 『야 , 천재다』하고 칭찬을 해주더니, 수업 후 교무실로까지 불러 많은 선생님 들 앞에서 칭찬을 해주었다.
그 한마디에 우쭐해진 徐相祿씨는 그때부터 공부에 매달렸다고 한다. 그는 집안이 가난해 정상적으로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했지만, 그때 자신감을 얻어 검정고시로 합격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徐相祿씨는 그후 15세쯤 집안이 어려워 낮에는 읍사무소 사환일을 하고, 밤 에는 야학에서 공부를 해야 했다. 그때 만난 최정 선생님 말은 徐相祿씨에 게 든든한 정신적 버팀목이 되었다.
『너희는 모두 하면 된다. 충분하다. 나도 교수가 될 준비를 하고 있다』 그 말에 자극을 받은 徐씨는 결국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인생이란 자연의 사계절과 같다. 언제나 봄만 있는 것은 아니다. 꽃피는 호시절을 너무 좋아하지 말아라. 여름 가고 가을 지나 다시 겨울이 오니 항상 준비를 해야 한다』
지금도 어려울 때면 최정 선생님의 이 말을 떠올린다고 한다.
엄앵란에게 『넌 구제 불능이야』
성악가 嚴正行씨의 스승인 홍진표 교수가 없었다면 오늘날 嚴正行씨의 목소 리는 들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嚴正行씨는 경희대 音大에 진학했지만 오 페라의 기본도 모르고 화성악도 힘들어 고향으로 내려갈 생각까지 했다. 그 런 그가 홍교수로부터 개인 레슨을 받을 기회를 얻었는데, 嚴正行씨는 칸소 네를 불렀다. 그의 노래를 듣고 난 홍진표 교수가 뜻밖의 칭찬을 해주었다.
『악기(목소리)도 좋고 하니까 너는 뭔가 되겠다』
이 한마디에 그는 용기를 얻고 더욱 열심히 노력했다. 성악가들은 유학을 다녀오지 않으면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이라 국립오페라 단에서도 늘 조연밖에 못했지만, 홍교수의 한 마디는 그에게 유학을 다녀오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준 말이었다고 한다.
영화배우 엄앵란은 굉장한 왈가닥이었다. 서울 미동초등학교 5학년 때, 하 루는 아이들하고 책상 위를 뛰어다니며 놀다가 선생님에게 걸렸다.
『넌 구제불능이야』
선생님은 이 말 한마디와 함께 일주일간 정학을 시키는 등 그를 완전히 불 량 소녀 취급을 했다. 그때 엄앵란씨는 마음의 상처를 입고 좌절과 고민의 나날을 보냈다.
어쩌면 6학년 담임 홍혜은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엄앵란은 진짜 나쁜 길로 접어들었을지도 모른다. 6학년 첫날 교실에 들어온 선생님은 자신의 소개를 하더니 곧장 엄앵란이 누구냐며 물었다. 「5학년 선생님이 인수인계 했구나」하는 생각에 씁쓸하게 고개 숙이고 있는데 뜻밖의 말이 그에게 들 려왔다.
『날렵하고 예쁘게 생겼구나. 그래, 네가 400m 육상선수라고? 참 잘하겠다』 그리고는 그를 교탁 앞에 앉혀놓고 작은 일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는데, 그 덕분에 그는 침착한 아이가 되었고, 학교에서 인정받게 되었다. 선생님의 애정어린 칭찬은 엄앵란씨의 제2인생을 열어준 것이다.


재능을 발굴해 준 선생님의 말

『너는 그림을 잘 그리는구나. 이 다음에 화가가 되면 잘될 거다』 오늘날 동양화가 金炳宗씨를 있게 한 칭찬 한마디이다. 全北 남원 송정초등 학교 4학년 때 정문자 선생님은 그의 재능을 일찍이 발견해 준 분이었다. 미술시간에 金炳宗씨의 그림을 지켜본 선생님이 해준 그 말은 단순히 칭찬 을 받았다는 기쁨 그 이상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 기 위해 깊은 고민에 빠져 있던 金炳宗씨에게 정문자 선생님의 말이 떠올라 한 줄기 빛처럼 강하게 삶의 좌표가 되었다.
당시 조언자가 없는 시골에서 예술 분야를 강력히 추천해 준 선생님의 안목 과 사랑은 서울대 美大(미대) 교수가 된 지금까지 정신적 자신감을 불어넣 었다고 한다.
디자이너 앙드레 김은 초등학교 때부터 학예회 등에서 노래, 연극, 그림 등 다양한 재능을 가진 학생이었다. 그는 고양공립중학교에 입학해서도 노래 , 연극 등에서 재능을 발휘했다. 하루는 미술시간에 미술 선생님이 앙드레 김의 그림을 보고『이 그림은 독창적이고 창의적이다. 굉장하다』는 극찬 을 아끼지 않았다.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 선생님의 칭찬에 앙드레 김은 예술가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다고 한다.
탤런트 崔佛岩씨는 老役(노역)을 소화해 내는 데는 단연 으뜸이다. 그가 老役을 전문적으로 맡기 시작한 것은 서라벌예술대학 재학 시절 은사인 이광 래 교수의 한마디 때문이다. 그 한마디에 그는 연출자 지망생에서 연기자가 되었던 것이다. 그는 대학 시절 연기보다는 연출을 공부하고 있었다. 당시 연기자의 조건은 지금과는 달라서 신성일처럼 잘생겨야만 했다. 하루 는 「어느 하늘빛」이라는 창작극의 연출을 맡아 연습을 하고 있는데, 극중 할아버지 배역을 맡은 친구의 연기가 영 엉망이었다고 한다. 연출을 하고 있던 崔佛岩씨가 연기 시범을 보였는데, 그것을 지켜보던 이광래 교수는
『아예 네가 연기도 하고 연출도 해라』고 말했다.
이 말 한마디에 그는 연출자 崔佛岩이 아닌 연기자 崔佛岩이 된 것이다. KBS 성우 裵漢星씨는 영화배우 지망생이었다. 그는 영화를 즐겨보고 영화에 서 본 장면을 쉬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흉내내곤 했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이미 영화배우로 불릴 정도로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그런 그의 재능도 선생 님의 칭찬 한마디가 없었다면 계발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서울 고명중학교 2학년 국어시간이었다. 전시균 선생님이 「신숙주와 그의 부인」이라는 희곡으로 연극을 한번 해보자고 했다. 배역을 정하는데, 아 이들의 강력한 추천에 의해 그가 신숙주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가 연기하 는 것을 보고 난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裵漢星은 앞으로 연기 쪽으로 성공하겠다. 내가 알고 있는 아나운서도 있으니까 열심히 해라』
친구들에게도 늘 듣던 말이지만 절대적으로 존중을 하던 선생님의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 裵漢星씨에게는 크나큰 기쁨이었다. 그는 어렵게 공부를 하 면서도 중학교 국어 선생님의 칭찬이 계기가 되어 일찌감치 진로를 정해 노 력할 수 있었다고 한다.


『기분 문제다? 참 좋다』
시인 金光林씨의 문학적 재능을 일깨워주신 분은 개성 송도중학교에 다닐 무렵 국어 선생님이다. 일제 강점기라 학생들은 종종 근로활동을 나가곤 했 다. 한번은 모내기를 다녀온 후 작문시간에 근로활동을 한 소감을 적어내라 고 했는데, 金光林 시인은 거머리에 대해서 썼다고 한다.

「거머리가 다리를 뜯고 피를 빠는 게 아프거나 두렵다는 게 아니라 첫째가 기분 문제다」라는 표현이었는데, 국어 선생님은 「기분 문제」라는 그의 표현을 보고 이렇게 칭찬했다. 『정말 독특한 표현인데? 첫째가 기분 문제 다? 참 좋다』 하면서 허허 웃었다. 그 이후로 金시인은 글쓰기에 자신감이 붙었다고 한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작은 일에도 관심을 가져준 국어 선생님의 칭찬이 金시인에게는 글에 대한 자부심과 용기 그리고 표현에 대한 열정과 호기심 을 심어준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소설가 朴婉緖씨는 서울 숙명여자고등중학부 5~6학년 때(지금으로 말하면 고등학교 2~3학년) 국어를 가르치던 월북 소설가인 박노갑 선생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선생님은 글쓰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는데, 특히 문장에 엄격 해 일본식의 문장, 남의 흉내를 내는 허황된 美文(미문)을 싫어했다. 그래 서 항상 강조한 것이,「어떤 물건을 표현하는 데 적절한 말이 하나가 있다 」는 뜻의 플로베르의 말 「一事一言」이었다. 당시 글쓰기 수업이 따로 정 해진 것도 아니고 작가 양성기관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선생님의 가르침은 곧 朴婉緖씨가 소설가가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시인 鄭浩承씨는 대구 계성중학교 2학년 때까지만 해도 평범한 소년이었다 고 한다. 생활이 어려워 집에 늘 빚쟁이가 들끓었는데, 그것이 싫어 학교 수업을 마치면 하염없이 수성천변을 쏘다니다 집에 늦게 들어가곤 했다. 그 무렵 어느 국어시간에 소설가인 김진태 선생님이 느닷없이 詩를 써오라 는 숙제를 내주었다. 詩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써본 적은 더더욱 없는 鄭浩承 시인은 숙제를 제출해야 하는 일주일의 기간 동안 내내 걱정만 하다가, 하루 전날 「자갈밭에서」라는 詩를 써가지고 갔다. 어린 마음에 느꼈던 가난의 체험을 여름날 자갈밭에 나뒹구는 자갈들에 비유해 썼던 것이다. 鄭浩承 시인이 숙제해 간 詩를 발표하자 선생님은 교단 아래로 내려와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
『넌 훌륭한 시인이 될 수 있을 것 같구나, 앞으로 열심히 써봐』鄭浩承 시인은 이 말이 너무도 충격적이었고, 이후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 놓을 줄은 몰랐다고 한다.

金洪信·李海仁·金鎭洪의 오늘을 있게 한 말 한마디
金洪信 의원은 정치에 입문하기 전에는 소설가였다. 그가 작가의 길에들어 서게 된 데는 논산 대건고등학교 시절 수필가이면서 작문을 가르쳐 주셨던 김영배 선생님의 힘이 컸다. 작문시간에 「계절」을 주제로 글쓰기를 하였 는데, 선생님은 그의 글을 보더니 『이렇게 훌륭한 글이 어디 있냐』 하셨 다. 아이들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투로 『에이』 하면서 야유하자, 선생님은 낭독을 해보라고 했다. 그리고는 『너는 장차 작가가 될 수 있다』고 공개 적으로 칭찬을 해주었다고 한다.
金의원은 부모가 의대를 권해 시험을 쳤지만 낙방을 하고, 김영배 선생님의 권유로 재수를 해서 국문과에 입학했다. 재수 시절 그는 선생님의 칭찬을 새기며 단편소설을 습작했다고 한다.
李海仁 수녀의 詩的 감수성을 일깨워 준 분은 서울 풍문여중 3학년 때 문예 반 담당 임영무 선생님이다. 좋은 詩를 소개해 주고 그의 詩的 재능을 일찍 이 알고 격려해 준 임영무 선생님의 한마디는 그가 수도자로 시인으로 꾸준 히 정진하는 데 꿈과 용기가 되었다고 한다.
『하늘의 별처럼, 영롱한 보석처럼 이웃에 빛을 주는 삶을 살라』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부산의 동래여중으로 전학을 가게 되었을 때, 여러 친구들을 데리고 서울역에 배웅을 나온 선생님이 李海仁 수녀에게 해준 말 이었다.
계명대 철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던 金鎭洪(김진홍) 목사는 지방대 철학과 학생이라는 이유로 열등감에 사로잡혀 학교에 정을 못 붙이고 있었다. 그 때 미국에서 돌아와 새로 부임해 온 소홍열 교수는 그의 그런 열등감을 씻어주었다고 한다.
소교수는 일대일 수업을 하며 학생들의 논리적 표현력을 향상시켜 주었는데 , 어느 날 그가 제출한 리포트를 보고는 『너의 글은 탁월하다. 정말 잘 썼 다』는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 격려와 함께 글쓰는 훈련을 받 은 金목사는 실력이 부쩍 늘었고, 지금 그가 군더더기 없는 논리적이고 합 리적인 사고 표현과 설교를 할 수 있는 것도 당시 소교수의 지도 덕분이라고 한다.
경향신문 문화생활팀장 兪仁卿(유인경·42) 기자는 서울 청운초등학교 4학 년 때 오명자 선생님의 칭찬 한마디가 오늘날 기자가 된 밑거름이라고 말한 다. 하루는 일기를 써가지고 갔는데, 그의 일기를 보고 『일기는 이렇게 자 기의 느낌을 표현하는 거야』 하면서 兪仁卿에게 일기를 낭독하게 했다. 그리고는 『너는 나중에 글을 쓰거라』하고 독려해 주었다.
그후 선생님은 어린이 신문의 명예기자로 추천을 해주는 등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었다. 선생님의 칭찬은 다른 班까지 소문이 날 정도여서, 그때 兪仁卿 기자는 자신이 글을 잘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고, 선생님의 칭찬 한마디는 자신의 일생에 불을 켜주었다고 한다.

『정치과가 아니라 정치학과에 입학한 것을 잊지 마라』
高建(고건·63) 서울시장은 1956년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 신입생 환영회 에서 당시 주임교수였던 민병태 교수의 말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자네들은 정치과에 입학한 것이 아니라 정치학과에 입학했다는 것을 항상 명심하기 바란다』
그는 후에 서울대 총학생회 회장으로 공부는 소홀히 한 채 총학생회 활동을 많이 했다. 정치학을 공부한 것이 아니라 정치과 학생이 되어버린 것이다 . 그런데 4학년이 되자 민병태 교수의 말이 불현듯 가슴에 와 닿았다고 한 다. 학생회장을 한 덕에 당시 그에게는 유명한 정치인이나 국회의원 비서관 이 되는 길이 열려 있었지만 그는 행정 전문가로서의 길을 선택했다고 한다 . 그것은 민병태 교수의 한마디가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카피라이터 李萬才씨의 어린 시절은 가난하고도 고달팠다. 6·25 때 北에서 전북 정읍 내장산 근처로 피난을 온 터라 그의 집안 사정은 말이 아니었다 . 당시 초등학교 2학년생이던 그는 공납금도 못 내고 도시락도 싸가지 못하 는 날이 거의 매일이었다. 그러자니 자연히 학교에 재미를 붙이지 못했고, 학교에 가기보다는 뒷산에 서 산열매나 칡뿌리를 캐먹으면서 허기를 달랬다. 그러던 어느 날 박정임 선생님이 그런 그를 나직이 부르면서 한마디 했다.
『너의 마음을 이해한단다. 공납금도 못내고, 점심도 매일 걸러야 하는 네 마음 알아. 하지만 세상에 많은 위인들은 키가 작았단다. 나폴레옹도 너처 럼 키가 작았지. 너는 키가 작고 똑똑하니까 노력만 하면 분명히 큰사람이 될 거야. 너는 성공할 수 있단다』
선생님의 한마디는 열등감으로 가득 찼던 한 아이를 그 누구보다도 자긍심 과 희망이 가득 찬 아이로 변화시켜 놓았고 그가 꿈을 잃지 않고 공부를 계속하는 계기가 되었다.
원로 수필가 皮千得씨는 경기중학교의 前身인 제일고등보통학교 시절의 고 리야마 선생님의 한마디를 잊지 못한다고 한다. 그는 일본인이었지만 제국 주의를 반대하고 신사참배는 미신이라고 말하는 자유주의자며 진보주의자였다. 고리야마 선생은 皮千得씨를 특히 아끼고 사랑해 주었는데, 공부보다는 책 읽기에 정신이 없는 그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학교 교육에만 구애받지 말고 자기 분야를 탐색하고 나아가라』 고리야마 선생님의 격려로 皮千得씨는 공부가 뒤처졌어도 용기를 잃지 않을 수 있었고, 그의 작품이 나올 수 있는 탄탄한 기반이 되었다고 한다.

李光洙의 충고
숭실대 명예교수 安秉煜 교수의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인물은 春園 (춘원) 李光洙(이광수) 선생이라고 한다. 평양공립고등 보통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安秉煜 교수는 춘원의 「무정」 「흙」을 읽고 깊은 충격과 감 동을 받았다. 그는 춘원에게 「나라를 빼앗긴 일제 암흑시대에 우리 젊은이 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하고 묻는 편지 한 장을 보냈다. 얼마 후 춘원 선생이 회답을 보내왔다. 그 편지 속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 었다.
「당신 자신이 훌륭한 스승의 말을 배워서 뛰어난 인물이 되는 것이 우리나 라를 위한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춘원의 한마디는 安秉煜 교수가 뜻을 세우고 중학교를 마친 후 일본 와세다 대학 철학과에 진학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의 일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동시통역사이며 한국외대 교수인 崔楨禾(최정화)씨는 「내 인생을 바꾼 선 생님의 한마디」라는 주제를 듣자마자 곧바로 다니카 셀레스코비치 선생이 떠올랐다고 한다. 프랑스 파리 제3대학 유학 시절, 그는 고비 때마다 선생 님의 사랑과 격려의 말 한마디가 인생의 등불이 되어주었다고 한다. 박사학위를 준비하던 崔교수는 모든 것이 미흡하다는 생각 때문에 논문 발 표를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었다. 그때 셀레스코비치 교수는 『너의 논문은 이미 무르익어 발표해도 괜찮다. 현명한 사람은 항상 끝맺음을 할 줄 알아 야 한다』는 말로 그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박사학위란 게 운전면허와 같아서 처음부터 완벽한 주행 실력을 기대한다 는 것은 욕심』이라는 말과 함께 해준 그 한마 디에 용기를 얻은 그는 무사히 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후 韓佛 頂上(정상)회담 전담통역사가 되었는데, 그 때문에 그를 질시하 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것을 속상해 하는 것을 안 셀레스코비치 교수는 그 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만큼 네가 성공했다는 것이라 생각하고 항상 의연하게 묵묵히 길을 가 라. 진실은 시간이 가면 밝혀진다. 그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말아라』하 고 위로해 주었다고 한다.
성공한 후 바쁜 일정 속에 보내는 그를 보고 『시간이 없을수록 사람을 만 나는 데 힘써라』 하고 충고를 해준 셀레스코비치 교수의 말 한마디 한마디 는 崔楨禾 교수의 오늘이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방송인 李相璧(이상벽)씨는 서울 숭문고등학교 시절 서기원 교장 선생님의 한 마디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자신은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당시 학생들의 진학상담을 직접 하신 서기원 선생님은 그가 정치외교학과에 지망한다고 하자 만류하면서 충고를 해주었다.
『이상을 좇지 말고 현실을 직시하라』 당시는 권력중심 사회요, 소위 빽지향적인 사회라 「정치인이 이상인 시대 」였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에게 학연도 없고 혈연도 전혀 없고, 더군다나 집안의 장남으로 형제를 이끌어야 하는 입장이니 안정적인 직업인이 돼라 고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는 미술을 잘하니 실용적인 산업미술학과를 가라 고 권해주었다. 결국 독학으로 미술공부를 해 합격했고, 미술공부를 하면서 길러진 정서적인 사고는 졸업 후 기자생활과 방송인으로 활동하면서 「세상을 보는 시각」을 달리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프로 바둑기사 曺薰鉉(조훈현·48)씨가 일본인 스승 세고에를 만난 것은 열 살 때였다. 그에게 입문하기 위해 갔을 때 세고에 선생은 76세였는데, 그 때까지 중국인과 일본인 제자 단 두 명만 길러냈던 분이었다. 세고에 선생 은 曺씨를 제자로 받아들이면서, 바둑이 중국에서 한국으로, 한국에서 일본 으로 전해진 유래를 말하고는 『한국에 은혜를 갚을 길이 없었는데, 내가 너를 키워 은혜를 갚겠다』고 했다. 바둑과 제자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직 접 표현하지 않는 세고에 선생으로서는 최대의 표현이었다고 한다. 그후에도 세고에 선생은 기자들이 曺薰鉉에 대해 물으면 『예술에는 국경이 없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말로 대신했다. 세고 에 선생은 언행일치의 모범을 보여주는 분이었다. 장관이든, 기업인이든, 공무원이든 그를 찾아오는 사람의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언제나 한결같은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어릴 적 스승의 언행일치를 보고 배운 曺薰鉉씨는 스승의 말과 정신을 깊이 새겨 훗날 자신이 제자를 기를 때 본보기가 되었다고 한다. 延萬熙(연만희·71) 柳韓재단 이사장은 故 柳一韓(유일한) 박사를 그의 스 승처럼 생각한다. 유일한 박사의 한마디 한마디는 그의 기업 철학에 고스란 히 배어 있어 자신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말한다.
『柳韓재단은 정직을 영원한 전통으로 삼아야 한다. 기업이란 무엇보다 국 민의 신임을 얻는 것과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柳一韓 박사는 이런 기업철학을 스스로 실천해 모범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또한 부모에 대한 孝와 사랑을 기업철학의 바탕에 두고 실천하신 柳一韓 박사의 행동은, 延萬熙씨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고, 그가 영원한 「柳韓人」 으로 살아가는 데 지표가 되었다고 한다.
개그맨 전유성(52)은 메모광이다. 그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는 메모 습관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회를 다니던 중학교 2학년 때 교회중등부 담임 선생님은 메모 습관이 대단했는데, 자신이 읽은 책의 줄거리, 등장인물 등을 꼼꼼히 정리를 해 파일을 만들어 놓았다. 그러면서 그에게 『유성이 너도 꼭 이런 스크랩북을 하나 만들어라. 꼭 해봐라』하고 말했다. 당시 전유성은 선생님의 그 말을 그냥 생각만 할 뿐 실천하지는 않았고, 대 학생이 되어서야 비로소 선생님의 말을 실천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 때의 메모들은 책을 읽다 발견한 「명문장」을 비롯해 세세한 내용들이 모 여져 있어 「말로 먹고사는」 그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한다.

安淑善이 받은 꾸지람
재동초등학교 시절 姜智遠(강지원) 검사는 글을 참 잘썼다고 한다. 6학년 때의 일이다. 글쓰기 시간에 원고지에 글을 써서 제출했는데, 「결과가 중 요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때 담임인 정병문 선생님은 그의 원고지에 빨간펜으로 이런 말을 남겼다. 「세상은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한 것이다」 그 지적을 받고 姜智遠 검사는 부끄러움을 느꼈고, 그후 그는 수많은 선택 의 기로에 서서 결과만을 보고 편한 길을 갈 것인가, 과정을 생각해서 선택 할 것인가 하는 갈등을 할 때 선생님의 그 한마디가 곧 선택의 기준이 되곤 했다고 한다. 오늘날 姜智遠 검사를 있게 한 또 한 분의 스승은 서울대학 시절 민병태 교 수이다. 그는 시위 주동자로 무기정학을 받았는데, 학장실로 불려간 그에게 민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데모를 해서 출세할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덧붙여 미국으로 유학 갈 것을 권유했다. 당시 姜검사는 엄청난 충 격을 받았다고 한다. 민교수의 말뜻을 미처 깨닫지 못해 고민하던 중 경찰 의 수배에 山寺(산사)로 들어가 고시 공부를 시작한 姜검사는 그때야 비로 소 민병태 교수의 말이 자기 연마를 해야 한다는 의미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고 한다.
국악인 安淑善(안숙선·52)씨는 스승인 만정 김소희 선생님의 가슴 아픈 꾸 중 한 마디가 오늘의 安淑善을 더욱 큰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였다고 한다. 安淑善씨가 텔레비전에 출연해 공연을 하는데, 갑자기 가사가 생각나지 않 아 지휘자와 대화를 해 실수를 만회하려고 했다. 당시 음식을 먹지 못할 정 도로 몸이 아파 병원에서 텔레비전으로 이 장면을 지켜본 김소희 선생님은 , 그를 부르더니 처음에는 친필로, 후미는 대필로 쓴 편지 한 장을 전해주었다.
『숙선이 너를 보통 제자로 생각한 게 아닌데, 텔레비전에서 보여준 너의 실수를 알아야 한다. 수많은 사람이 너를 좋다고 하여도 그중 한 사람이 아 니라고 하면 너는 아닌 것이다. 판소리 정신에 어긋나면 그것은 「나는 이 정도밖에 안 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모른다면 나에게 다시 한 번 물어주길 바란다』
이 편지글에 安淑善씨는 큰 감동을 받았고, 그 말은 그의 소리인생의 지침 이 되었다고 한다.
방송인 鄭恩娥(정은아·36)씨는 수도여자고등학교 방송반담임이던 임병서 선생님의 매섭고 차가운 꾸지람 한마디가 그에게 오기를 불어넣어주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방송반 반장을 맡은 그는 고1 후배들을 이끌어 나가면서 방송제 준비를 하느라 성적이 많이 떨어져 급기야는 학급평균을 떨어뜨린 다는 핀잔을 받기에 이르렀다. 성적이 더욱 떨어져 진학하는 것마저 자신감을 잃게 되었을 때 선생님이 한 마디 했다.
『이 길은 너희들이 선택한 길이다. 스스로 자신감을 회복하고 긍지심을 가 지고 헤쳐나가라』
선생님의 매섭고 차가운 그 한마디에 鄭恩娥씨는 가슴이 덜컹하고 자존심이 상했다고 한다. 그후 그는 둘 다 잘해야겠다는 오기로 공부를 해 방송인으 로 성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야구 해설가 河日成(하일성·52)씨는 서울 경동고등학교 시절에는 야구 선 수로 활약했다. 하루는 너무 연습이 하기 싫어 일주일간 연습에 빠지고 난 뒤 돌아왔는데, 그때 이강법 체육 선생님의 한마디가 그를 변화시켰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다. 넌 참 불 쌍하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많은데, 그렇게 살아서 무슨 의미가 있겠냐. 너는 운동만이 살길인데, 네가 할 수 있는 것마저 이런 식 으로 하면 어떻게 하냐』
그러면서 『무엇이 되든 간에 최고로 인정받는 사람이 돼라』는 선생님의 따끔한 가르침이 그로서는 너무도 고마웠다고 한다. 그는 훗날 뛰어난 운동 선수는 되지 못했지만, 선생님의 그 말이 평생의 지침이 되었다고 한다.

 

때로 너의 인생에서 엉뚱한 친절과 정신 나간 선행을 실천하라

이것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미국 전역에 퍼진 일종의 슬로건이다. 사건의 시작은 이러했다. 어느 화창한 겨울날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일이었다. 차 뒤칸에 크리스마스 선물을 잔뜩 싣고서 빨간색 혼다를 몰고 가던 한 여성이 베이
브릿지의 통행료 내는 곳에 이르렀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징수원에게 자동 매표기에서 산 일곱장의 티켓을 내밀었다.
"한 장은 내꺼고, 나머지 여섯 장은 내 뒤에 오는 여섯 대의 차를 위해 내가 대신 내주는 거예요"
뒤따르던 여섯 대의 차들이 한 대씩 징수원 앞으로 다가와 통행료를 내밀었다. 징수원은 그들에게 말했다.
"앞에 가는 어떤 여성이 당신들의 요금을 미리 내줬소. 좋은 하루 보내시오"
혼다를 몰고가는 그 여성은 전에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냉장고에 붙어 있는 작은 문장 하나를읽은 적이 있었다. 그것은 이런 내용이었다.
<때로 너의 인생에서 엉뚱한 친절과 정신 나간 선행을 실천하라>
그 문장에는 마음에 와 닿는 구석이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것을 수첩에 옮겨 적었다.
한편 주디 포먼은 집에서 수백 마일 떨어진 도로를 차를 몰고 지나가다가 어느 창고 벽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휘갈겨 적혀 있는 똑같은 문장을 만났다. 여러 날 동안 그 내용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아 주디는 다시 그 먼 길을 달려가 그 문장을 베껴 왔다.
그녀는 자신이 보내는 모든 편지 말미에 그 말을 적어 넣으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난 이 말이 너무나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어.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메시지처럼 말야"
그녀의 남편 프랭크도 그 문장을 좋아해서 자신이 가르치는 중학교 교실 벽에 그것을 붙여놓았다. 그런데 학생들 중 하나가 그 지역 신문의 논설위원의 딸이었다.
논설위원은 그 문장을 신문에 실으면서 자신도 그 말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것이 누가 한말인지, 또는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는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이틀 뒤 논설위원은 앤 허버트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다.
늘씬한 40대의 금발 여성 앤은 십대 부자촌에 꼽히는 마린에 살고 있었다. 그녀는 그곳에 서 틈틈이 남의 집을 봐주거나 잡일을 하면서 그럭저럭 생활을 해나가고 있었다. 어느날 그녀는 레스토랑에 들어갔다가 무심코 테이블에 놓여 있는 식탁용 종이 받침대에다 며칠 동안 마음 속에 맴도는 그 문장을 썼다. 그러자 옆 테이블 앉아 있던 남자가 "그거 정말 멋진 말이군요!"하면서 자신의 종이 받침대에다 그것을 옮겨 적었다.
앤 허버트는 우리에게 권한다.
"이런 방법들을 생각해 볼 수 있죠. 물론 더 많은 것들이 있을 수 있지만 말예요. 한번 시도해 보세요."
앤 허버트가 제안하는 것들은 이런 내용이다. (1) 낡은 학교에 갑자기 찾아가 교실 벽에 새 페인트를 칠해 준다. (2) 도시 빈민가에 따뜻한 음식을 배달해 준다. (3) 자존심 강한 할머니의 지갑에 살짝 돈을 넣어 준다. 앤 허버트는 말한다.
"친절은 폭력이 파괴하는 것보다 더 많은 걸 세울 수 있어요."
이제 그 문장은 사방으로 전파되고 있다. 자동차 범퍼의 스티커로, 벽에 그리고 편지 말미와 영업용 카드에도 등장하고 있다. 머지 않아 우리는 이 나라 전역에서 게릴라와
같은 선행이 베풀어지는 것은 상상할 수 있다.
오레곤 주의 포틀랜드에서는 한 남자가 남의 차가 주차해 있는 장소의 주차 미터기에 때맞춰 동전에 주입한다. 뉴저지의 패터슨에선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양동이와 막대걸레와 튜울립 뿌리들을 들고 와서 어떤 낡은 집의 안팎을 말끔히 단장해 주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어리둥절한 늙은 주인이 좋아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시카고에서는 한 십대 학생이 갑자기 충동에 사로잡혀 차고에서 집앞 도로까지 차도를 삽으로 정리하고 있다. 무슨 일인지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데 학생은 이웃집의 차도까지 열심히 다듬고 있다. 이것은 매우 긍정적인 무정부 상태이며 무질서이고, 기분 좋은 혼란이다. 보스톤의 한 여성은 은행 직원에게 수표를 내밀면서 수표 뒤에다 "메리 크리스 마스!"라고 쓴다. 세인트 루이스의 한 남자는 차를 운전하고 가다가 젊은 여성이 모는 차에 자기 차의 뒷범퍼가 찌그려졌는데도 "아,걱정하지 말아요. 조금 긁혔을 뿐인데, 뭘."하고 말하고는 손을 흔들며 사라진다. 정신 나간 선행은 전염성을 갖고 퍼져 간다. 한 남자가 차도를 따라 나팔수선화를 심고 있다. 지나가는 차들이 일으키는 바람에 그의 셔츠가 물결친다. 시애틀에서는 한 남자가 공중 위생자원 봉사단에 가입해 혼자서 큰크리트 숲속을 돌아다니며 슈퍼마켓에서 쓰는 수레에 쓰레기들을 주워 모으고 있다. 그런가 하면 아틀랜타에선 한 남자가 초록색 공원 벤치의 낙서들을 지우고 있다. 이런 말이 있다. 미소를 지으면 기운이 난다고. 마찬가지로 때로 무차별적인 친절을 베풀면 당신 자신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가 한결 가벼워진다. 세상이 그만큼 약간이라도 살기 좋은 곳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신이 마음을 열고 그것을 받아들인다면 당신은 하나의 기분 좋은 충격에 사로잡힐 것이다. 당신이 러시아워 시간에 차를 몰고 가는데 누군가 앞에서 당신의 도로 통행료를 대신내 줬다면, 당신 역시 언젠가는 다른 누군가를 위해 그런 일을 하게 되지 않을까? 예를 들어 교차로에서 상대방 운전자에게 손을 들고, 지친 공무원에게 미소를 짓지 않을까? 아니면 어떤 더 큰일? 모든 위대한 혁명처럼 이 남모르는 선행 역시 하나의 작은 행동으로부터 시작한다

 

인생의 회계장부
어느 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어떤 사람이 목사에게 장난기 섞인 말투로 뒤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주일을 회계 장부를 정리하는 데 보내고 있지요."
그 목사는 뒤돌아보며, 결코 잊혀지지 아니할 만큼 진지한 억양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당신은 심판의 날, 그와 똑같이 회계 장부를 정리하여야 할 것입니다."
* 참조: 계20:12, 13, 겔7:8, 33:20, 시9:19, 살후2:12

 

두려움의 대상이 때로는 인생의 길잡이가 된다
한 청년이 깊은 산속에서 길을 잃었다.그는 번개에 대해 심한 공포심을 갖고 있었다.청년은 손전등을 들고 마을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폭우와 강풍으로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그때 갑자기 번개가 치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 손전등을 깨뜨리고 말았다.청년은 칠흑같은 어둠에 갇혀 어찌할 바를 몰랐다.그 순간 다시 번쩍 하고 번개가 쳤다.그러자 자신의 눈 앞에 길이 환하게 드러났다.청년은 정신을 수습하고 번개가 칠 때마다 조금씩 방향을 잡아나갔다.이제 번개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좋은 길잡이였다.청년은 번갯불을 이용해 무사히 마을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겼던 것들이 때로는 인생의 좋은 길잡이가 된다.인생의 번개로 생각했던 고통 모함 배신 가난 질병 억울함 등이 때로는 인생의 방향을 가르쳐준다.

 

인생에서의 걱정과 근심은 무의미하다
깊은 산골에서 평생을 살아오신 노할머니 한 분이 있었다.그 할머니는 평생 소원이 서울 구경을 꼭 한번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차를 타고 가면 깜깜한 굴을 지나가야 한다는 말을 듣고 그것이 늘 두려웠다. 어느 날 드디어 서울에 가야하는 일이 생겼다.서울 구경을 소원으로 간직했던 할머니는 그러나 집에서 출발할 때부터 걱정이었다. 기차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할머니의 불안은 더욱더 커갔다. 급행 열차가 긴 굴에 다다르기 전에 할머니는 너무 걱정을 한 나머지 지쳐서 그만 깊은 잠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한 잠을 푹 주무신 할머니가 눈을 떴을 때는 서울에 도착하고 있었다.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도 마찬가지이다. 이 땅에서 눈을 감고 긴 굴처럼 느껴지는 죽음의 터널을 지나서 눈을 뜨면 거기가 바로 하늘나라이다. 인생에서의 걱정과 근심은 무의미하다.‘우리가 아는 것은 오히려 몸을 떠나는 것이 곧 주와 함께 있다는 것이다’(고후 5:6-8).

 


감사로 충만한 인생

본문:시편 136:1∼7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편 136:1)

사냥꾼들이 곰을 잡을 때는 곰이 잘 다니는 길목에 커다란 돌덩이를 매달아놓습니다. 그러면 그곳을 지나던 곰이 돌덩이에 머리를 부딪히게 됩니다. 머리를 부딪힌 곰은 자기가 가는 길을 막은 데 화가 나서 돌덩이에게 덤벼듭니다. 줄에 매달려 있는 돌덩이에 자기 머리를 부딪쳐서 누가 센지 힘을 겨루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곰은 머리가 터져 녹초가 되고 사냥꾼들은 곰을 끌고 가기만 하면 됩니다.
어찌 보면 우리 인생들은 곰처럼 미련합니다. 도살장으로 가는 줄도 모르고 길바닥에 놓여있는 콩을 따라가며 열심히 주워먹는 미련한 돼지와도 같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자기를 지으시고 자신의 인생을 이끌어가시는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모르고 교만하고 건방진 인생을 살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이런 어리석은 인생들을 고발합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로마서 1:21)
미련한 인생들은 마땅히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돌릴 줄 모르고,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모릅니다. 인생의 불행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데서 옵니다.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인생, 그것이 가장 불쌍한 인생입니다.
우리는 추석연휴를 보냈습니다. 추석은 감사의 계절입니다. 시편 136편의 기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자입니다. 그의 시는 구구절절이 감사로 넘쳐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감사해야 할까요?
첫째로 하나님은 선하시기 때문입니다(1절).
하나님의 선하심은 우리를 향한 그분의 계획 가운데서 알 수 있습니다.하나님은 비록 인간의 실수와 허물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를 선하게 만들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온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이시기에 감사해야 합니다(5∼7절).
하나님께서 해와 달과 별을 지으시지 않으셨다면 세상은 캄캄한 암흑으로 전락했을 것입니다. 사계절을 만들지 않으셨다면 이 형형색색 단풍의 아름다움을 어찌 감상할 수 있겠습니까? 더더욱 오늘의 나를 지어내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돌보심에 감사해야 합니다(24∼25절).
우리는 우리가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하나님의 돌보심 속에서 살아갑니다.날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다면 우리는 단 하루도 온전히 살 수 없습니다. 우리가 비천한 자리, 즉 절망과 실패의 자리에 있을 때도 하나님은 우리를 기억하시고 우리를 그 자리에서 일으켜주십니다. 우리의 인생이 늘 감사로 충만한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우리들이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도 모르는 미련한 인생들이 되지 말게 하시고 늘 감사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영무 목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리이다”(시118:28)

 


인생 최대의 문제

사람은 눈에 보이는 육체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하는 영혼(마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죽음이란 육체와 영혼의 분리상태를 말하는데,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누구나 예외 없이 다 죽습니다.
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 모든 사람은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영원히 사느냐, 지옥에서 영원히 사느냐?" 하는 것이 인생 최대의 문제입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감옥에 가는 것처럼 지옥에 가는 것은 죄 때문인데, 십자가에서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신 예수님을 믿으면 당신도 죄사함을 받고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당신을 천국에서 꼭 만나고 싶습니다.

변화 시키는 인생
관광지에 위치한 호텔은 같은 평수의 방이라도 전망에 따라 가격차가 상당히 납니다. 똑같은 설계에 똑같은 재질을 사용하고, 똑같은 평수에 똑같은 인테리어를 해도 어느 쪽에 방을 만드느냐, 객실에서 창 밖을 내다볼 때 바다가 잘 보이느냐 산이 잘 보이느냐에 따라 가격차가 납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지오웰은 천재적인 머리를 가졌으나 부정적인 인생관 때문에 생긴 우울증과 폐결핵으로 젊은 나이에 인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러나 엘리너 루스벨트는 어릴 때 고아가 되었으나 미국의 역대 대통령 부인들 가운데 가장 호감 가는 여성으로 손꼽히게 되었습니다. 벌은 물을 마셔서 꿀을 만들고, 뱀은 물을 마셔서 독을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인생관을 갖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지금 당신의 마음의 창을 열면 어떤 곳이 보이나요?

 

인생의 날카로운 가시
미국의 존슨대통령은 사람을 채용할 때 분명한 기준이 있었다.그는 너무 빨리 출세한 사람과 실패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채용을 꺼렸다.그 이유는 너무 쉽게 출세한 사람은 독선적이기 쉬우며 실패의 경험이 없는 사람은 남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인류의 밝은 역사는 대부분 실패와 고통을 먹고 탄생했다.미국에서 사회복지법이 만들어진 것은 대공황이 극에 달하던 1935년이었다.말은 맨몸으로 달릴 때보다 등에 적당한 짐을 실을 때 더욱 빨리 달린다.사람도 적당한 시련을 만날 때 인생의 가속이 붙는다.

시련은 바람과 같다.바람은 배를 전복시키기도 하지만 반대로 배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된다.실패도 소중한 자산이다. 오늘의 고난이 결국 감사의 씨앗일 수도 있다.사람들은 가끔 인생의 날카로운 가시에 통증을 느끼지만 그것으로 인해 잠든 영혼이 눈을 뜬다.


톨스토이 ‘인생론’
톨스토이의 ‘인생론’은 삶을 운명에 맡기고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개척하며 살아가는 법을 가르친다.
그는 제정 러시아의 명문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중년에 접어들면서 번민과 죄의 절망에 깊이 빠졌다.그래서 삶의 의미를 얻기 위해 몸부림 쳤으나 해답을 얻지 못했다.주위 사람들을 찾아 의논도 해봤지만 허사였다.

그러다가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당시 귀족들이 멸시하는 투박스럽고 빈궁한 농노들을 찾아갔다.그들은 가진 것 없지만 소탈하고 단순한 생활을 하면서도 기쁨에 찬 삶을 누리고 있음을 본 것이다.톨스토이는 마침내 그 이유를 알아냈다.어려운 운명을 뚫고 나가는 그들의 힘은 바로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신앙에서 왔던 것이다.

우리 주위에도 운명에 붙들려 꼼짝 못하고 주저앉는 사람들이 허다하다.연초엔 더욱 그러하고 어수선할 때일수록 그렇다.어떤 위기에서도 바른 인생관으로 운명을 개척해가는 위대한 힘이 필요하다.


하나님 주신 아름다운 인생
"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 (시편 16 : 11)
아카데미 7개 부문 후보로 오른 이탈리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Life Is Beautiful)'는 희극으로 비극의 경지에 도전하는 작품이다. 유태인 학살이라는 민감한 소재를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은 기발한 상상력과 코미디 연기를 통해 '유쾌한'비극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배경은 파시즘이 맹위를 떨치던 1938년 이탈리아 투스카니 지방. 후반부는 이탈리아계 유태인 귀도와 아들 조슈아가 강제수용소에 끌려가게 되자 유태인이 아닌 도라가 자청해 수용소로 함께 들어가 시련을 겪는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희극적이다. 귀도는 수용소의 무시무시한 현실을 아들이 깨닫지 못하게 수용소 생활 자체를 게임이라고 속인다.
울지 말 것, 엄마 찾지 말 것, 간식 달라고 하지 말 것, 꼭꼭 숨어서 들키지 않을 것 등 득점하는 방법을 일러준다.
이런 스토리는 코믹한 상황, 이탈리아인 특유의 수다와 어우러져 쉴새 없이 관객에게 엔돌핀을 선사한다. 지난해 칸 영화제 대상을 비롯해 수많은 영화제를 휩쓸었고 베니니가 직접 맡은 감독 남우주연 각본 등 3개 부문을 포함, 아카데미상 7개부문에 노미네이트 된 이 영화는
"웃음이 인간을 위기에서 구해내고 사물의 다른 면을 생각해보도록 인도하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는 감독의 믿음을 증명한다.

 

인생의 세 가지 친구
어느 때 임금이 어떤 사람에게 사자를 보내어 곧 자기에게 오도록 명하였다.
그 사람에게는 세 사람의 친구가 있었다.
첫번째 친구는 매우 귀중히 여기어 왔으므로 서로 친구라 생각하고 있었다.
두번째 친구도 억시 사랑하고 있었지만 맨 첫번째 친구만큼 귀중히 여기고 있지않았다.
세번째도 친구라고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는 그다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임금으로부터 사자가 왔을 때 그는 무언가 자기가 나쁜 일을 했으므로 그것을 견책받게 되는가 보다 생각하고 어쩐지 두려웠기 때문에 임금한테 혼자갈 용기가 없어서 세 친구에게 함께 가달라고 부탁하였다.

먼저 가장 귀중히 하고 있는 친한 친구에게 가서 "함께 가달라"고 했더니 그 친구는 "난 싫어"하고 이유도 말하지 않고 거절했다.

두번째 친구에게 부탁했더니 "대궐문까지는 가지만 그 이상은 따라 가주지 않을걸세"했다.

세번째 친구는 "암 좋구말구. 자네는 별로 나쁜 짓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서워할 것 없네. 내가 같이 가서 임금님께 아뢸 테다."했다.

셋은 왜 제각기 이러한 말을 했었는지 생각해 보기로 하자.

첫번째의 친구는 "재산"이다. 확실히 아무리 사랑하고 있어도 죽을 때에는 남겨두고 가야만 한다.

두번째의 친구는 "친척"이다. 장지까지는 따라가지만 거기서부터는 그를 두고 가버린다.

세번째 친구는 "선행"이다. 평상시에는 별로 눈에 띠지않지만 죽은 뒤에도 그와줄곧 함께 있는 것이다.

 

588인생’들에 예수사랑 실천하는 임도진 목사
김강자 서울 종암경찰서장이 미성년 매춘과의 전쟁을 선포했기 때문이다. 서울 동대문구 전농2동 620번지. 속칭 ‘청량리 588’이라고 불린다.
이곳 가나안교회 김도진 목사(61)는 윤락가의 부랑인, 실직자, 윤락여성 등을 상대로 예수의 사랑을 실천하는 목회자이다. 이곳의 3층 건물을 임대해 교회를 세우고 14년 동안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 하고 있다. 김목사는 교회 내에 재활교육원인 ‘희망의 집’을 마련, 운영하고 있다. 희망의 집은 오갈데 없는 사람들의 재활 터전이다. 현재 행려자, 실직자, 출소자, 장애인 등 150여명이 몸을 의탁하고 있다.
가나안교회는 윤락녀들에게도 성소 역할을 하고 있다. 윤락녀들은 때때로 예배당에 들어와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하며 음으로 양으로 영향을 받아 이곳 생활을 청산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교회 초창기에 김목사는 업주들로부터 영업을 방해한다며 거센 항의를 받았다. 교회에 돌을 던지고 설교때 들어와 멱살을 잡는가 하면 길거리를 지날 때 ‘재수없는 목사’라며 침을 뱉는 사람까지 있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가나안교회는 신자 수가 250여명으로 늘었다. 예전에는 욕하던 동네사람들도 돈을 모아 기부하기도 하고 일일찻집을 열어 어려운 사람을 돕자고 나선다. 지난해 서울시는 그의 봉사정신을 평가, 서울시민대상 장려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저는 윤락녀들에게 무조건 이곳을 떠나라고 하지 않습니다. 강제력에 의해 이곳을 떠난다 해도 그들이 가는 곳은 또다른 윤락가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마음을 고쳐먹고 가정으로 돌아가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김목사가 윤락지역에 교회를 세우게 된 것은 그의 암울했던 과거가 밑받침이 됐다. 그의 젊은 날은 가출, 술주정, 폭력으로 얼룩졌다. 그러나 기독교신자인 아내가 그를 신앙의 길로 이끌었다. 그는 42살의 나이에 신학교에 입학,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됐다. 신학대학원을 마친 86년 개척교회 활동을 시작했으며 윤락가 사역을 자신의 천직으로 여기고 있다.
“하나님께서 바라는 것은 진실한 삶의 흔적입니다. 세속에 때묻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상처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실현하기 위해 분투하는 사람입니다”


창조적인 인생
슈퍼맨의 주인공 크리스토퍼 리브는 더 이상 「비운의 스타」가 아니었습니다. 95년 5월 승마경기 중 낙마사고로 전신마비 장애인이 된 그는 최근 영화 감독으로 데뷔, 제2의 인생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리브는 휠체어에 의지한 채 기관지 튜브를 통해 호흡하는 처지지만 조금도 좌절하지 않고 촬영현장을 누 비고 있습니다.

그는 휠체어에서 환하게 웃으며 말합니다.『나는 일함으로써 분노나 좌절 대신 해방감을 느낀다. 많은 것을 빼앗겼지만 창조적인 길을 찾아낼 수 있게 된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인가(국민일보, 96년 11월 5일).

우리는 또 이와같은 창조적인 인생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는 앞을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는 3불의 인생인 헬렌켈러입니다.

1880년 6월 27일 미국 터스 컴비아라는 마을에서 튼튼하고 머리가 좋은 귀염둥이 소녀 헬렌켈러가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태어난지 1년 반만에 헬렌켈러에게 뜻밖의 불행이 닥쳐왔습니다.

병이 들면서 앞을 볼 수 없고 말도 할 수 없고 들을 수도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때 헬렌켈러를 맡게 된 교사는 20세의 젊은 여자인 맨스 휠드 설리반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볼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고 듣지도 못하는 아이를 교육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설리반선생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심어주면서 헬렌켈러를 격려하며 젓가락을 다루는 법부터 시작하여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을 하난씩 가르쳐주었습니다.

수없는 실패를 거듭하면서 헬렌켈러는 점차 어늘하지만 말을 시작했고 손으로 더듬으면서 글을 배웠습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래리 클리프대학시험에 좋은 성적으로 합격했습니다. 설리반 선생님은 그때 헬렌켈러에게 이렇게 창찬하였습니다.

참휼륭하구나 눈과 입과 귀가 모두 부자유스러운데 용케도 어려운 대학시험에 합격한 것은 세계에서 네가 처음있는 일이야 드디어 헬렌켈러는 대학을 졸업하였고 그것은 정말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그때 헬렌켈러는 이렇게 다짐하였습니다.

앞으로 내가 할 일은 몸이 부자유스러운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봉사하는 일이다. 이것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 주신 여러 사람들에 대한 보답이다. 이것을 위해 나의 남은 생애를 바치리라

헬렌켈러는 이후부터 사회봉사 활동을 열심히 하였습니다. 그리고 낙담하여 좌절한 자기와 같은 장애인들에게 종종 이렇게 말하며 격려했습니다.

용기를 가지세요,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계십니다. 아직 눈이 있지 않으십니까? 아직은 귀가 들리지 않습니까? 아직 말은 할 수 있지 않습니까? 힘을 내세요. 어떤 환경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떠한 생각으로 생활하는가, 어떠한 이상을 추구하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가운데 여러 가지 장애와 불리한 환경으로 인해 염려하며 좌절한 사람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그러한 약점과 불우한 환경을 주신 것은 그런 약점과 환경속에서도 일어설 수 있는 능력이 당신에게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나에게 닥쳐진 불리한 환경과 상황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고 해도 하나님의 선한 뜻을 믿고 과감히 행동할 때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나의 고통에 담겨진 선한 뜻을 발견하며 용기를 가지고 꿈을 품으며 계속 나간다면 언젠가는 틀림없이 아름다운 결과를 맺을 것입

 

창조적인 인생
슈퍼맨의 주인공 크리스토퍼 리브는 더 이상 「비운의 스타」가 아니었습니다. 95년 5월 승마경기 중 낙마사고로 전신마비 장애인이 된 그는 최근 영화 감독으로 데뷔, 제2의 인생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리브는 휠체어에 의지한 채 기관지 튜브를 통해 호흡하는 처지지만 조금도 좌절하지 않고 촬영현장을 누 비고 있습니다.

그는 휠체어에서 환하게 웃으며 말합니다.『나는 일함으로써 분노나 좌절 대신 해방감을 느낀다. 많은 것을 빼앗겼지만 창조적인 길을 찾아낼 수 있게 된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인가(국민일보, 96년 11월 5일).

우리는 또 이와같은 창조적인 인생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는 앞을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는 3불의 인생인 헬렌켈러입니다.

1880년 6월 27일 미국 터스 컴비아라는 마을에서 튼튼하고 머리가 좋은 귀염둥이 소녀 헬렌켈러가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태어난지 1년 반만에 헬렌켈러에게 뜻밖의 불행이 닥쳐왔습니다.

병이 들면서 앞을 볼 수 없고 말도 할 수 없고 들을 수도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때 헬렌켈러를 맡게 된 교사는 20세의 젊은 여자인 맨스 휠드 설리반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볼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고 듣지도 못하는 아이를 교육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설리반선생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심어주면서 헬렌켈러를 격려하며 젓가락을 다루는 법부터 시작하여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을 하난씩 가르쳐주었습니다.

수없는 실패를 거듭하면서 헬렌켈러는 점차 어늘하지만 말을 시작했고 손으로 더듬으면서 글을 배웠습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래리 클리프대학시험에 좋은 성적으로 합격했습니다. 설리반 선생님은 그때 헬렌켈러에게 이렇게 창찬하였습니다.

참휼륭하구나 눈과 입과 귀가 모두 부자유스러운데 용케도 어려운 대학시험에 합격한 것은 세계에서 네가 처음있는 일이야 드디어 헬렌켈러는 대학을 졸업하였고 그것은 정말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그때 헬렌켈러는 이렇게 다짐하였습니다.

앞으로 내가 할 일은 몸이 부자유스러운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봉사하는 일이다. 이것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 주신 여러 사람들에 대한 보답이다. 이것을 위해 나의 남은 생애를 바치리라

헬렌켈러는 이후부터 사회봉사 활동을 열심히 하였습니다. 그리고 낙담하여 좌절한 자기와 같은 장애인들에게 종종 이렇게 말하며 격려했습니다.

용기를 가지세요,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계십니다. 아직 눈이 있지 않으십니까? 아직은 귀가 들리지 않습니까? 아직 말은 할 수 있지 않습니까? 힘을 내세요. 어떤 환경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떠한 생각으로 생활하는가, 어떠한 이상을 추구하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가운데 여러 가지 장애와 불리한 환경으로 인해 염려하며 좌절한 사람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그러한 약점과 불우한 환경을 주신 것은 그런 약점과 환경속에서도 일어설 수 있는 능력이 당신에게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나에게 닥쳐진 불리한 환경과 상황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고 해도 하나님의 선한 뜻을 믿고 과감히 행동할 때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나의 고통에 담겨진 선한 뜻을 발견하며 용기를 가지고 꿈을 품으며 계속 나간다면 언젠가는 틀림없이 아름다운 결과를 맺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인생이 5분밖에 남지 않았다면
만일 우리 인생이 단지 5분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안다면 우리 모두는 공중전화 박스로 달려가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 것이다.
그리고는 더듬거리며 그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것이다.

어른들을 가르치는 한 워크샵에서 나는 최근에 매우 '무례한' 일을 저질렀다.
어른들에게 숙제를 낸 것이다! 숙제 내용은 "다음 일주일 동안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가서 사랑한다고 말하되, 반드시 전에 한 번도 그 말을 하지 않은 사람이거나 오랫동안 그런 적이 없는 사람에게 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뭐 어려운 일냐고 하겠지만 그 그룹의 수강생들 모두가 35세가 넘었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사내'가 할 짓이 못된다고 배운 세대라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속마음을 드러내거나 눈물을 흘리는 일 따위는 결코 해서는 안된다고 그들은 배웠다.
따라서 어떤 사람에게는 내가 낸 숙제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 다음 워크샵 시간이 되자 나는 수강생들에게 자신이 누군가에게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를 말해 보게 했다.
나는 평소처럼 여성이 먼저 손을 들 줄 알았다. 하지만 그날 저녁에 손을 든 사람은 남자였다.
그는 무척 감동받은 것처럼 보였고 약간 떨기까지 했다.

의자에서 일어난 그는 180센티미터가 넘는 큰 키였다. 그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데니스 선생. 지난 주에 당신이 이 숙제를 냈을 때 난 무척 화가 났었습니다. 난 그런 말을 해야 할 상대도 갖고 있지 않았을뿐더러, 당신이 그런 개인적인 일을 숙제로 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내 양심이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하더군요. 내가 누구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야만 하는가 내 스스로 잘 알고 있지 않느냐고 양심이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섯 해 전에 나는 아버지와 어떤 문제로 심하게 다퉜고 그 이후로 그 감정을 그대로 안은 채 살아 왔습니다. 우리는 크리스마스 때나 다른 불가피한 가족 모임을 제외하고는 서로 마주치기를 꺼려 했지요.

지난 주 화요일 당신의 워크샵에 참석하고 나서 차를 몰고 집에 도착할 무렵 나는 아버지에게로 가서 사랑한다는 말을 해야만 한다고 내 자신을 설득시켰습니다.

우스운 행동이긴 하겠지만, 일단 결정을 내리자 마음의 무거운 짐이 덜어지는게 느껴지더군요. 집에 도착한 즉시 나는 집안으로 뛰어들어가 아내에게 내 계획을 말했습니다. 아내는 이미 잠자리에 든 후였지만 난 아내를 흔들어 깨웠습니다.

내 이야기를 듣자 침대에 누워 있던 아내는 벌떡 일어나더니 나를 껴안는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결혼 후 처음으로 내가 눈물을 흘리는 걸 봤습니다. 우리는 밤 늦도록 커피를 마시며 얘길 나눴지요. 정말 멋진 밤이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여느 때보다 일찍 밝은 기분으로 일어났습니다.
사실 너무 흥분해서 제대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지요. 난 일찍 사무실로 가서 전에는 하루 종일 걸렸던 일들을 두 시간만에 해치웠습니다.

오전 9시에 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버지가 전화를 받았을 때 난 간단히 이렇게만 말했습니다.

'아버지, 오늘 저녁 퇴근길에 잠깐 들러도 될까요?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그러자 아버지는 기분이 언짢은 듯'뭣 땜에 그러냐?'
하고 되물으시더군요. 오래 시간을 빼앗진 않을 거라고 안심시켜 드렸더니 아버지는 마지 못해 승낙을 하셨습니다. 오후 5시 반에 난 아버지의 집으로 가서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아버지가 문을 열러 나오시기를 기도하면서 말입니다. 만일 어머니가 나오시면 나 자신 금방 겁쟁이가 되어 어머니에게 대신 그 말을 하게 될까봐 겁이 났던 겁니다. 다행히 아버지가 문을 여셨습니다.

난 시간을 끌 필요도 없이 곧장 문 안으로 한 걸음 들어가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사랑한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왔어요. 전 아버지를 누구보다도 사랑해요.'
그 순간 아버지의 내면에 큰 변화가 일어난 듯했어요. 내가 보는 앞에서 아버지는 얼굴이 부드러워지더니 주름살이 사라지면서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셨어요.
아버지는 두 팔을 뻗어 나를 껴안으면서 말씀하셨어요.
'나도 널 사랑한다. 얘야. 하지만 여태까진 그 말을 할 수가 없었어.'
난 너무도 감동되어 한 발자국도 움직이고 싶지 않았어요. 어머니가 눈물을 글썽이면서 다가오시더군요. 난 손을 들어 보이며 어머니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아버지와 난 잠시 동안 그렇게 껴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난 그 곳을 떠났지요.
지금까지 오랫동안 난 그런 감동적인 순간들을 느끼지 못한 채로 살아왔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말하려고 하는 건 그게 아닙니다. 내가 방문한 이틀 뒤, 아버지께서 그만 심장마비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그 동안 심장병을 심하게 앓으면서도 내게는 아무 말씀도 안 하셨던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직도 의식불명인 상태이고, 과연 깨어나실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따라서 이 워크샵에 참석한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해야만 한다고 느끼는 일을 미루지 말라는 겁니다.
만일 내가 아버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지금까지 미루고 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난 두 번 다시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겁니다. 시간을 내서 지금 당장 하십시오. 여러분이 해야만 하는 일을!"


인생과 고통
북미의 나이아가라 폭포나 남미의 이과수 폭포는 그 위용이 거대합니다. 이들 폭포는 쏟아져내리는 물줄기의 폭과 높이가 세계적인 폭포입니다. 아마 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한 해 수백만명은 될 것입니다. 만일 이렇게 물줄기의 폭이 넓지 않고 낙차가 없이 고요히 흐르기만 한다면 구경거리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물이 바위에 부딪혀 굽이치고 물줄기가 곤두박질쳐 폭포를 이루는 모습이 장관이기 때문에 보고 싶어 합니다.
텔레비전이 방영하는 인생극장의 주인공들은 모두 거친 삶을 경험한 인물들입니다. 부딪치고,꺾이고,떨어지고,망가진 곳에서 다시 일어선 사람들의 이야기가 감동을 줍니다. 고통은 인간에게 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 덕을 주는 것입니다. 고통은 또 다른 은혜입니다. 마이클 몰리노스는 그의 책에서 “고통은 영혼을 깨끗하게 한다. 고통을 통한 영혼의 정화는 인내를 낳는다”고 말했습니다. 인생이 아름다운 것은 고통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쥐
비행항공술의 선구자인 핸드리 페이지가 많은 관중에게 에어쇼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는 창공에서 고난도 기술을 선보였다. 그런데 비행기 안에서 계속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생쥐 한 마리가 전선을 갉아대고 있었다.
만약 전선이 끊기거나 합선이 되면 비행기는 여지없이 추락할 상황이었다. 비행기가 추락하면 자신의 명예는 물론 대형참사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았다. 순간 페이지는 중대한 결단을 내렸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자. 그리고 더 높이 날아오르자"
그는 고도를 최대한 높였다. 비행기가 높이 날아오르자 더 이상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쥐는 비행기가 높이 날아오르자 산소부족으로 죽은 것이다. 그는 멋진 묘기를 마음껏 선보였다.
위기에 처할수록 믿음과 용기가 필요하다. 새해에는 강력한 기도로 '인생의 쥐'를 몰아내자.

 

보람있는 인생의 일곱 가지 길
윌리엄 아더 워드가 다음 글에서 주는 충고는 내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내용이다. 여기, 보다 풍요롭고 신나고 생산적이며 보람있는 인생을 살 수 있는 일곱 가지 간단한 길이 있다. / 하루에 적어도 한 가지씩은 진리를 담은 글을 암송하라. 이렇게 암송하는 내용이 곧 자신의 인생, 인격, 장래의 일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자신의 목표, 바라는 바, 포부를 늘 명확하게 하라. 그 내용을 글로 적되 성취하기 위해 취해야 할 행동과 구체적인 시간표까지도 함께 작성해둔다. / 자신의 노력을 집중할 특정한 분야를 선정하라. 적어도 그 분야에 관한 한 전문가가 돼라. 그러면 오래지 않아 그 분야에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될 것이다. / 기도와 묵상, 적극적인 마음가짐으로 두려움과 의심, 염려를 씻으라. / 자신의 결점이나 불리한 점을 부풀려 생각하지 마라. 가장 위대한 설계자이신 조물주께서 나를 지으셨음을 생각하라. / 자신의 능력이나 재능, 잠재된 가능성을 한껏 크게 생각하라. 스스로의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라. / 다른 사람들에게서 선한 것을 찾아내라. 우정의 아름다움, 사랑의 광휘, 봉사의 기쁨 등을 그들과의 관계에서 보려고 하라. 다른 사람 안에서 최선의 것들을 찾는 눈을 기르라.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내 안에서 최선의 것들을 보기 시작할 것이다. 메뚜기 사고방식 벗어나기 / 윌리엄 미첼
* 기도: 크신 능력과 힘의 근원 되신 주님, 내게 담대함을 주소서. 어떤 일을 만나든지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시고 만사형통하게 하시는 주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기도하는 자, 힘차게 전진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윌리엄 아더 워드가 다음 글에서 주는 충고는 내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내용이다. 여기, 보다 풍요롭고 신나고 생산적이며 보람있는 인생을 살 수 있는 일곱 가지 간단한 길이 있다. / 하루에 적어도 한 가지씩은 진리를 담은 글을 암송하라. 이렇게 암송하는 내용이 곧 자신의 인생, 인격, 장래의 일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자신의 목표, 바라는 바, 포부를 늘 명확하게 하라. 그 내용을 글로 적되 성취하기 위해 취해야 할 행동과 구체적인 시간표까지도 함께 작성해둔다. / 자신의 노력을 집중할 특정한 분야를 선정하라. 적어도 그 분야에 관한 한 전문가가 돼라. 그러면 오래지 않아 그 분야에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될 것이다. / 기도와 묵상, 적극적인 마음가짐으로 두려움과 의심, 염려를 씻으라. / 자신의 결점이나 불리한 점을 부풀려 생각하지 마라. 가장 위대한 설계자이신 조물주께서 나를 지으셨음을 생각하라. / 자신의 능력이나 재능, 잠재된 가능성을 한껏 크게 생각하라. 스스로의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라. / 다른 사람들에게서 선한 것을 찾아내라. 우정의 아름다움, 사랑의 광휘, 봉사의 기쁨 등을 그들과의 관계에서 보려고 하라. 다른 사람 안에서 최선의 것들을 찾는 눈을 기르라.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내 안에서 최선의 것들을 보기 시작할 것이다. 메뚜기 사고방식 벗어나기 / 윌리엄 미첼
* 기도: 크신 능력과 힘의 근원 되신 주님, 내게 담대함을 주소서. 어떤 일을 만나든지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시고 만사형통하게 하시는 주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기도하는 자, 힘차게 전진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인생에 기쁨의 잔이 넘치게 하려면?
요15:10-11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있듯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게 될 것이다」라고 하시면서, 「내가 이 말을 한 것은 내 기쁨을 같이 나누어 너희 마음에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제자들에게 명령하는 것은 제자들을 억압하고자 함이 아니라, 주님 자신이 맛보고 있는 기쁨을 제자들에게도 나누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결코 권위를 내세우고 싶어서 잔소리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니면, 심심풀이로 하신 말씀도 아니었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간절히 부탁하는 말씀이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하고 있는 것도 주님의 그 마음을 갖고 하는 말이었습니다.
ㄱ.남의 이목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혜롭고 담대히 행하라(1:7).
ㄴ.절제하면서 사랑과 기쁨으로 살아가야 한다(1:7).
ㄷ.주님을 위해서 고난 당할 각오를 해야 한다(1:8).
ㄹ.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진리 말씀을 실천해야 한다(1:13).
ㅁ.성령께서 주신 능력을 소중하게 간직해야 한다(1:14).
이런 말을 한 것은, 아들과 같이 여기는 디모데가 훌륭한 주님의 제자가 되기 바라는 마음에서 한 말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부모도 거의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자녀가 잘되라고 하시는 말씀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곱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부모를 죽이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① 인간의 출발점인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바른 의도를 모르고 있다는 말입니다. 딤후1:9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우리를 부르셔서 당신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공로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은총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이 은총은 천지창조 이전에 벌써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씀인고 하니,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거룩한 백성 삼으시고, 우리에게 온갖 복된 것을 다 베풀어주시되,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만 바르게 인식한다면, 인간이 엉뚱한 길로 가지 않을 것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그 축구 선수는 아버지의 뜻과 사랑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모든 절망과 낙심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하나님의 그 지극한 사랑을 깨닫지 못하는 까닭에,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15:9에서,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해 왔다. 그러니 너희도 언제나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밖에서 살고 있는 고로, 겪지 않아도 될 많은 불행과 시련을 당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인생버스는?
당신이 탄 인생 버스는 어떠합니까?
사람들은 어디론가 열심히 달려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타고 있는 인생버스는 어디를 향해가고 있을까요?
죄악과 절망, 그리고 분노와 고통으로 점철된 멸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모든 사람은 죄의 결과인 심판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브리서9:27)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우리를 죄의 심판으로부터 피할 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망설이지 마십시오. 지금껏 타고온 버스가 잘못된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다면 영생으로 달려가는 인생버스로 즉시 갈아타십시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14:6)

 

인생의 길(목적지)
세종 때의 충신이며 사육신의 한 사람인 성삼문은 절개를 지킨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집현전 학사로 글씨를 잘 썼고 문장이 뛰어났습니다. 1455년 수양대군이 단종을 내쫓고 왕위에 오르니 예방승지로 있던 성삼문은 국새를 안고 통곡하였고,
그 이듬해 박팽년 등과 함께 단종의 보위를 꾀하다가 김 질의 밀고로 세조로부터 가혹한 심문을 받게 됩니다. 세조는 진노하여 병사들로 하여금 불에 시뻘겋게 달군 쇠로 성삼문의 다리를 찔러 꿰뚫고 팔을 잘라 버렸습니다. 박팽년, 이 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와 함께 지금의 용산역 근처인 한강가로 끌려가면서 수레 안에서 읊 조린 성삼문의 시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석력 바람에 해는 지려는데 북 두드리는 소리는 사람의 목숨을 재촉하는구나 저승길에는 여관이 없을 것이니 오늘 밤 뉘 집에서 자야 하는고. 아무리 훌륭한 삶을 살았어도 가야 할 목적지가 없는 사람은 처량하고 불쌍한 사람입니다. 목적지가 없는 사람은 내일이 없는 사람이요 소망이 사람입니다. "태어났으니 먹고 마시고 즐기며 열심히 살다가 시간이 되면 갈 곳으로 가지!"라는 식의 삶은 너무나 무책임한 삶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삶을 책임져야 합니다. 자신에 대한 책임을 상대방이나 환경 탓으로 돌리는 사람은 무책임한 사람입니다. 세상을 너무 바쁘게 살다 보니 인생의 목적지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살았다고 변명한다면, 이 역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명예나 돈으로 쾌락을 누렸던 사람일수록 허무감을 더욱 많이 느낍니다.
그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인간을 만든 하나님을 인정하면 하나님께서는 인생이 영원히 가야 할 길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인생의 날
유대인의 최고 경전인 탈무드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매일, 오늘이 네가 끝나는 날이라고 생각하라. 매일, 오늘이 네가 시작하는 날이라고 생각하라." 퍽 의미있는 말입니다. 오늘부터 내 인생이 시작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새로운 희망과 기
대로 가슴이 벅찰 것입니다. 나는 어떻게 살아갈까, 무슨 일을 할까, 어디로 갈까, 흥분과 희열로 가슴이 벅찰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여행을 앞두고 그 전날 밤 기대 속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초등학교 학생의 심정과 같을 것입니다. 모든 일이 두
세 번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신선미가 없어지고 매력이 사라집니다. 처음의 시작이란 그렇게 좋고 의미가 있고 흐믓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하루하루가 쌓여 한 달이 되고, 한 달이 모여서 한 해가 되고, 한 해가 쌓이고 쌓여서 일생이 됩니다. 어제는 이미 지나간 날입니다.
과거 속에 사라진 시간입니다.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다가올 미래의 시간입니다. 내가 살 수 있는 시간은 오늘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처럼 소중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매일을 충실하고 보람있게 정성스럽게,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매일 오늘을 내 생이 끝나는 날이라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성경에도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라고 말씀했습니다. 내일 일을 모르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아침에 생기 발랄하여 기쁜 표정으로 집을 나간 사람이 교
통사고로 저녁에 시체가 되어 집에 돌아옵니다. 우리 주변에 이런 일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내일 내가 어떻게 될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면'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나의 부모, 처자, 친구, 사업, 재산, 내가 아끼던 모든 것을 그냥 그대로 두고 나는 떠나야 합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나는 과연 내게 주어진 일생을 보람되게 살았습니다
까? 헛되기 살지는 않았습니까? 나 자신에 대하여 성실하게 살았습니까?
세상의 돈이나 명예 그리고 지위 같은 것은 죽음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고스란히 그대로 놓고 떠나야만 합니다. 인생의 결산에서는 성실하게 살고 보람되게 산 것만이 남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오늘이 내 인생의 시작 날로 그리고 내 인생이 끝나는 날이라고 생각하면서 성실하게 살아갑시다. 당신이 예수님을 만나시면 기쁨의 삶, 생명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소망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마11:28)

 

위로 오르는 인생
히말라야 고산족들이 소나 양의 값을 메기는 기준이 재미있습니다. 무게를 따지거나 겉모습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 짐승의 버릇을 보아 값을 정한다는 것입니다. 풀을 먹을 때 아래서부터 위로 오르며 먹는 짐승의 값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며 풀을 뜯어먹는 짐승의 값보다 높다고 합니다. 온통 벼랑뿐인 히말라야에서 안이한 하향 습성에 길들여지면 풀 없는 저지대에서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현대인들도 아래서부터 차곡차곡 하나하나 쌓아가기보다 소유와 지위가 많고 높은 데서부터 인생을 시작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고된 상향의 삶을 포기하고 안이한 하향만 추구한다면 삶의 진가를 모르는 인생이 되지 않을까요?
 


남자 인생의 일곱 계절
탈무드에 의하면 남자의 일생은 7단계로 구분된다.

1단계 : 한살은 왕 - 모든 사람이 모여서 왕을 모시듯 얼르기도 하고 비위를 맞춰 준다.
2단계 : 두살은 돼지 - 진흙탕 속을 마구 뛰어다닌다.
3단계 : 열살은 새끼양 - 웃고 떠들어대며 뛰어다닌다.
4단계 : 열여덟 살은 말 - 덩치가 커져 힘을 뽐내고 싶어한다.
5단계 : 결혼하면 당나귀 - 가정이라고 하는 무거운 짐을 지고 끙끙거리며 걸어가야 한다.
6단계 : 중년은 개 -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구걸하게 된다.
7단계 : 노년은 원숭이 - 어린아이와 같아짐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관심을 기울여 주지 않는다.


 
어린시절의 아픈기억도 인생의 에너지
시의원을 지낸 아버지와 독실한 신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소녀가 있었다.소녀는 1남2녀 중 막내로 부모의 사랑
을 한몸에 받았다.아버지는 유명한 건축업자였다.소녀는 남부러울 것이 없는 풍요로운 가정에서 성장했다.그러나 소녀
가 일곱살 되던 해 아버지는 의문의 변사를 당했다.아버지의 동업자들이 전재산을 빼돌려 가족들은 졸지에 거리에 나앉
고 말았다.

소녀는 그때 비로소 자신의 주위에 비참한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래서 어머니에게 속삭였다.“어머니,저
는 평생동안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겠어요” 소녀는 가족을 떠나 로레타수녀원에 들어갔다.그리고 나중에 빈자들을
위한 ‘사랑의 선교회’를 만들어 활동했다.

이 소녀의 이름은 머더 테레사.노벨평화상을 받은 성자(聖者)의 이름이다.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도 때로는 인생의 엄청
난 에너지가 된다.

 


타격왕 타이콥의 삼진인생
 24년간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 슈퍼스타로 이름을 날리던 타이콥은 1950년대 야구팬들의 영웅이었다.하지만 1961년 7월 17일,그의 장례식이 있던 날 참석한 메이저리그 관계자는 단 세 명뿐이었다.이유는 평소 그의 특이한 성격 때문이었다.

타이콥은 그라운드에서는 명성을 날리고 팬들을 열광시키는 선수였지만 조급하고 신경질적인 성격 때문에 친구가 없었다.그는 걸핏하면 대들고 소리지르고 공격하러들기 때문에 아무도 그와 가까이 하지 않았다.심지어 아내와 자식들도 그를 멀리했다.

물론 그렇게 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그가 어렸을 적 가정불화로 싸우던 어머니가 아버지를 총으로 죽이는 참상을 목격한 뒤부터 그의 성격은 이지러지기 시작했던 것이다.제아무리 능력이 있고 자질이 특출하더라도 더불어 사는 삶이 모자라면 그 주변에서 사람들이 떠나가기 마련이다.
지도자가 갖춰야 할 자질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격,품격,인격이다.그리고 그 위에 신앙을 입으면 존경받는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안락한 인생의 비극
한 팀의 러시아 과학자들이 편안하고 안락한 인생이 과연 생명을 단축 시키는지 혹은 연장 시키는지, 아니면 삶의 활기를 불어 넣는지, 침체케만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동물을 대상으로 실험한 후 다음과 같은 보고서를 만들었다.

우리는 두 그룹의 동물을 선정했다.

한 그룹의 동물들은 아주 이상적인 환경에 두었다. 이들은 상쾌한 공기, 많은 음식, 방해물이 없는 곳에서 놀고 먹었다.

또 한 그룹의 동물들에겐 좋고 나뿐 환경을 고루 주었다. 이들은 편히 쉬다가도 적과 맛서기도 하고 음식을 찾아 끓임없이 움직여야 했다.

그 결과 좋은 환경에 있던 그룹의 동물들은 금방 노쇠하였으나 두번째 그룹의 동물들은 팽팽한 젊음을 유지했다.

인생의 고난이 없다면 무의미하다. 인간은 고난과 맛서며 활기를 띤다. 조류학자들은 새들이 미풍에서보다 바람에 맛설 때 더 날써게 난다고 한다.

 

시한부 인생으로
안양 어떤 교회에 용모가 아름다운 한 처녀의 신앙 간증입니다. 그녀 는 소풍을 갔다가 돌아오던 길에 같은 반 친구가 갑자기 길에 쓰러지 게 되자 그 학생을 데리고 병원에 가다가 그만 그 자신도 얼굴에 핏기 가 가시면서 쓰러졌다는 것입니다.

얼마 후에 종합병원에서 진단을 내렸는데 그는 선천적으로 심장의 고동이 점점 약화되어서 죽게되는 보기드문 병에 걸려있다는 사실이 판명되었습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 와 있던 스칸디나비아의 의사팀은 그 학생의 병을 보고서 심장을 계속 뛰게 하는 조절기능 장치를 심장에 부착시켰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아무도 그런 위험한 수술을 받아 본 경험이 없어서 의사들은 책을 펴 놓고 연구하면서 수술을 하였습니다. 수술이 끝나고 의사들은 너는 하나님이 살려주셔서 다시 살아난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3년마다 수술을 하고 기계를 새것으로 갈아 끼워야 하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살아오기를 33살인 오늘까지 살아오면서 그 가정의 재산은 다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머지않아 또다시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이제는 하나님께 모두 내어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일순간에 고동장치가 멎어서 쓰러질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생명 전부를 하나님께 맡기고 살기 때문에 그 마음에 주님이 살아계시니 그저 기쁘고 감사한 것뿐이라고 한 눈물어린 고백을 읽게 될 때에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고장난 심장에 전기장치를 달고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으면서도 교회학교에서 어린 생명들을 위해서 충성하고 봉사하는 그분의 마음에 참된 천국이 이루어진 것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
오래 전 들은 어느 선생님 이야기입니다.
섬에서 근무하던 어느 선생님이 육지로 나와서 이발을 하게 되었습니다. 날씨가 무척 덥고 졸려서 이발을 하는 사이 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이발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발사가 면도를 하는 중에 실수를 하여 눈썹까지 면도를 해버린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때가 늦었기에 화를 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그 선생님은 눈썹을 그려서 이발소를 나갔고, 배를 타고 섬으로 향하던 중에 더운 날씨로 흘러내리는 땀을 수건으로 닦다가 그만 그린 눈썹까지 지우는 바람에 얼굴이 온통 검게 물들었으나 자신은 의식을 하지 못하다가 배에 탄 사람들이 킥킥거리고 웃는 바람에 알고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발사를 잘못 만나도 사람들로부터 창피를 당하는데,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알지 못해서 나름대로 신을 만들고 찾아다니는 수많은 사람들이 당할 수치는 이것과 비교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시면서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완벽하게 만드셨습니다. 불완전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전능하시고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간다면 수많은 실수와 시행착오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풍랑
인생의 풍랑은 반드시 내가 잘못해서 당하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샌프랜시스코에 이철수 사건이라고 하는 것이 있었다. 샌프랜시스코의 차이나 타운에서 살인사건이 발생되었을 때 한국 청년 하나가 범인으로 몰리게 되었다.
그 청년이 바로 이철수 라고 하는 한인 청년이었다.
그는 살인범이 아니었다. 그런데 증인 하나가 이철수가 범인이라고 증언을 했다. 경찰에서는 이철수의 가정환경을 조사했고 그 결과 이철수가 충분히 범인이 될 수 있다고 믿었으며, 증인도 있어 재판을 받고 살인범이 되어 감옥살이를 하
게 되었다.
더군다나 감옥에서 죄수들끼리 싸움이 벌어져 정당방위를 하느라고 사람을 죽 이게 되어 이철수는 더욱더 흉악한 살인범으로 낙인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10년 동안을 감옥살이를 해야 하는 인생의 풍랑을 만나게 되었다.
물론 이철수는 차이나 타운의 살인범이 아니었다. 외롭고 억울한 감옥 생활이 계속되는 동안 세상이 다 그를 잊어버렸을 무렵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이 그 를 찾아왔다.
목사님 한 분이 감옥으로 찾아온 것이다. 샌프랜시스코 한인 감리교회 차원태 목사가 찾아왔다. 그 목사는 이철수가 죄인이 아니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이철수의 억울한 사정이 교포들 사회에 번져 나갔고 무죄 석방운동이 전체 동양 사람들 사회로 번져 나갔다.
마침내 이철수 사건 규명운동이 일어났다. 증인으로 나왔던 사람은 이철수 말고 다른 범인을 목격했다고 증언하게 되었고, 마침내 그는 무죄로 판명되어 자유의 몸이 되어 풀려 나왔다.
이철수는 10년 만에 감옥문을 나섰다. 10년이라고 하는 긴 세월을 억울하게 감옥에서 보냈던 것이다. 보상받을 수 없는 10년의 세월이었다.
감옥문을 나선 이철수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억울했었을까? 물론 억울했다. 그러나 그의 첫마디는 그것이 아니었다.
`명예를 회복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보잘것 없는 저를 위해 10년간 투쟁해 주신 교포 여러분께 감사하다`
고 하는 것이었다.

 

인생의 역풍

예수님의 오병이어의 기적을 목격한 군중은 그분을 유대 왕으로 추대하려고 했다.
이것을 알아차린 예수님은 군중을 해산시키고, 혼자 조용히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가셨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산으로 가고 싶었으나, 예수께서는 이것을 허락하시지 않고 제자들을 억지로 배에 태워 먼저 맞은편 기슭으로 보내셨다.
그런데 배가 육지를 떠나 얼마 가지 않았을 때 갈릴리 바다 특유의 돌풍이 불어 닥쳤다. 그것은 강한 회오리 바람이었으므로, 원래 어부였던 제자들까지도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모르고, 배는 금새 성난 파도가 삼켜버릴 것만 같았다. 그들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그래서 예수님과 함께 남고 싶다고 말했는데!”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면 어째서 이 돌풍을 미리 알지 못했을까?”
“이제 끝장이야. 예수님은 산 위에 계시고, 우리는 배 안에 있어.”
“우리는 예수님께 버림을 받은 거야.”
제자들의 얼굴에는 절망과 좌절이 역력히 나타나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모든 일을 아시고, 제자들을 억지로 배에 타게 하셨던 것이다. “재촉하사”라는 낱말은 “억지요”라는 뜻이다.
즉 제자들의 의사에 어긋나게 억지로 배에 태웠는데 여기에는 목적이 따로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망망한 바다에서 예수님이야말로 살아 계신 위대한 구주임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시기 위해서였다.
당신도 이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인생의 망망한 대해 속에서 그리스도만이 위대한 구주임을 체험하고, 그 역풍을 만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이다.

황사의 고난

꽃피는 시절 황사의 고난이 버티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황사가 중국과 한국에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지나갔다.황사가 몰려올 때 예수 십자가의 고난과 관계성을 찾는 것은 고난주간에 황사바람이 자주 몰려오기 때문이다. 황사의 재난은 예수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하려는 자연의 몸부림이 아닐까? 황사의 여파로 병원이 대만원이다.노약자와 어린아이들이 호흡기 질환과 감기로 고생을 한다.지난주에는 유치원과 초등학교가 황사 때문에 최초로 휴원·휴교하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파괴된 자연이 날라다주는 황사는 풀 한 포기와 나무 한 그루의 소중함을 느끼게 한다. 중국의 사막화는 세월이 지남에 따라 더욱 심해진다고 한다. 황사의 바람은 차츰 죽음의 그림자로 다가오는 것 같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실 때도 이러했을 것이다. 성경에 “때가 제 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눈물을 뿌리지만 고난주간 외식(外飾)된 모습은 아닐까? 골고다 언덕,십자가상의 슬픔이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쌓이듯 황사의 고통이 지상에 쌓이고 있다. 하나님은 황사를 통해 어두워진 골고다의 슬픈 의미를 깨닫게 하신다.

 

인생의 광맥

보화는 길거리에서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보화는 깊은 광맥을 찾아가야 얻을 수 있다. 인생의 보화도 깊은 곳에 있는데 그 깊은 곳이 바로 「고난」이다. 역사의 진리와 교훈이 발견된 때도 민족이 고난을 당한 때였다.
영국의 저술가 C.S.루이스는 말했다.
『평안할 때 인간은 하나님께서 양심을 통해 속삭이시는 소리를 잘 듣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보내시는 것이다. 고난은 「인간의 잠든 감각을 깨우시는 하나님의 「큰소리」다』

 

사랑의 인생
본문: 누가복음10:25-37

1937년 '죄수들의 어머니'로 불리던 미국의 캐서린 로즈여사가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그녀는 평생동안 죄수들에게 사랑을 쏟았습니다. 두 자녀도 죄수들과 함께 운동을 하며 성장했습니다. 농아들에게는 수화를, 맹인들에게는 점자를 가르치며 삶의 의욕을 심어주었습니다. 캐서린 로즈여사의 운구가 묘지로 떠날 때 죄수들의 대표가 교도소장에게 당부했습니다.
"저희들이 교도소 밖으로 나가 캐서린에게 문상을 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그분은 우리의 은인입니다."
교도소장은 6백 명의 죄수들에게 잠시 동안 외출을 허용했습니다. 죄수들은 들꽃을 한 송이씩 들고 캐서린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죄수들의 애도행렬은 무려 8백 미터에 이르렀습니다. 그날 저녁 6백 명의 죄수는 단 한 사람의 도망자도 없이 모두 교도소로 돌아왔습니다.
사랑은 막힌 담을 허뭅니다. 사람은 진실한 사랑 앞에서는 정직해집니다. 사랑은 인간 사이에 막힌 담을 무너뜨립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도 사랑입니다. 사랑은 성삼위일체의 신학적인 코이노니아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주체고, 예수님은 사랑을 받는 사랑이고, 성령은 사랑, 자체입니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분이고 예수님에게는 평화가 있는데 그 사랑도 우리에게 주시고 그 평화도 우리에게 나눠주신 것입니다. 인간은 사랑하고 싶은 본능이 있습니다. 사랑해본 사람은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리고 선해집니다. 한없이 마음이 부드러워집니다.

 

사명적 인생관은
본문: 사도행전 20:17-24
이 땅위에는 60억이 넘는 사람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크게 나누면 두 가지 부류의 사람입니다. 사명감이 있는 사람과 사명감이 없는 사람입니다. 겉으로 볼 때는 차이를 발견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삶의 질이 완전히 다릅니다.
사명(使命)이 무엇입니까? 심부름 받은 생명이란 뜻입니다. 그런 인생관을 우리는 사명적 인생관이라고 합니다. 오늘 사명적 인생관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사명을 영어로 MISSION 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라틴말 MISSIO에서 유래된 것인데 '보낸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어떤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하나님께로부터 이 세상에 보냄을 받은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사명감이 있을 때 이 사명감이 우리를 위대하게, 성실하게, 용감하게, 부지런하게, 진지하게 만듭니다. 사람이 마음속에 사명감을 느낄 때 또는 생각하는 것이 달라지고, 말하는 것이 달라지고, 움직이는 것이 달라집니다.
심부름에는 심부름을 보낸이가 있고, 심부름을 받은 사람이 있고, 심부름의 목적과 내용이 있습니다. 누가 우리를 21세기의 한국에 심부름꾼으로 보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여기 한국에 보냈습니다. 이것을 믿습니까?
스위스의 사상가 칼 힐티(Kal Hilthey)는 "인간생애의 최고의 날은 자기인생의 사명을 자각하는 날이다"고 했습니다.
인생의 최고의 날이 언제 입니까? 결혼한 날입니까? 첫아이를 낳은 날입니까? 고시에 합격한 날입니까? 천만금을 모은 날입니까? 내 인생의 최고의 날은 내 사명을 자각한 날입니다. 아프리카 선교를 위하여 평생을 바친 리빙스턴(Livingstone)은 "사명을 가진 사람은 그것을 실현할 때까지는 결코 죽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명을 가진 사람은 집념이 있고 열의가 있습니다. 이것을 꼭 이루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와 신념이 있습니다. 내가 이것을 이루기 전에는 절대로 죽을 수 없다는 요지부동한 목적의식이 있습니다.
세상을 훌륭하게 산 사람들을 보세요.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그런 훌륭한 일을 하게 했습니까?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들은 생의 어느 시기에 어떤 결정적 기회에 인생의 확고한 사명을 자각했습니다.
물론 사명을 깨닫는 계기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이는 훌륭한 책을 읽다가 사명을 깨닫습니다. 어떤 이는 말씀을 듣다가 사명을 깨닫습니다. 어떤 이는 역사의 결정적 사건을 보고 사명을 깨닫습니다. 어떤 이는 생활의 절실한 체험을 겪고 사명을 깨닫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에이브라함 링컨은 뉴 오리엔스의 노예매매 시장에서 노예들이 백인에게 매매되는 처참한 비극을 보는 순간 이렇게 외쳤습니다. "언제가 때가 오면 내가 저놈의 나쁜 제도를 힘껏 때려부수겠다" 이 충격과 의분과 결심이 에이브라함 링컨으로 하여금 후일에 노예 해방의 대 사역을 성취하게 된 것입니다.
사명에 눈이 뜨는 것처럼 놀라운 일이 없습니다.
사명을 깨닫는 것은 사람을 새 사람으로 만듭니다. 인간은 사명적 존재입니다. 사명감은 위대한 힘의 원천입니다. 우리는 사명을 자각해야 합니다.
사명감 없이 사는 사람은 목표가 없이 여행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사람은 이 사명감을 가슴속에 간직한 채 그것을 실현하려고 주야로 노력하는 것입니다.
사명감이 없는 사람은 타락하기 쉽고, 자포자기하기 쉽습니다. 방안에 등불이 꺼지면 그 방안을 캄캄해집니다. 우리의 생활에서 사명감의 등불이 꺼지면 우리의 삶은 낮은 차원으로 전락해 버리기가 쉽습니다.
고난을 뚫고 나아가는 용기, 가난에 도전하는 의지,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씩씩한 기상, 한번세운 목표를 끝까지 추구하는 지구력,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굳은 정신, 7전 8기하는 끈기 이 모두가 마음속에 사명감이 확고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슴속에 사명감의 샘물이 마르지 않아야 합니다. 시인 쉴러는 "인간을 위대하게 하거나 비열하게 하는 것은 그 사람이 품은 뜻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명감을 가진 사람은 인생에서 꼭 이루고자 하는 뜻을 품습니다.
그러면 사명적 인생관을 가진 사람은 어떤 자세로 삽니까?
첫째, 높은 뜻을 가져야 합니다.
서원이란 마음속에 어떤 원을 세우는 것입니다. 내가 이것을 꼭 이루어 놓고야 말겠다는 간절한 소원을 갖는 것입니다. 이 소원이 얼마나 크고, 얼마나 높으냐 하는데 따라서 그 사람의 그릇과 그릇의 크기가 결정됩니다. 우리는 먼저 뜻을 세워야 합니다. 우리는 뜻을 세우되 큰 뜻을 세우고 옳은 뜻을 세워야 합니다. 세상에는 뜻을 세우되 나쁜 뜻을 세우는 사람이었습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습니다. 뜻이 간절하면 반드시 그것을 이룰 수 있는 길과 방법이 생깁니다. 한문에는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 이란 말이 있습니다. 인간의 정신력이 한 목표에 집중되면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뜻을 세우되 그것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그 뜻이 간절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간절한 뜻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작심삼일로는 절대로 인생의 큰 일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쉬지 않고 흐르는 강물만이 바다에 도달 할 수 있습니다. 쉬임 없이 걷는 사람만이 목적지에 도달 할 수가 있습니다. 한 목표에 집중된 힘만이 큰일을 성취할 수가 있습니다. 세상에 집중력처럼 무서운게 없습니다. 태양광선을 집중시켜 보세요. 물이 끓고 나무가 탑니다.
중국 한나라때 이광(李廣)이라는 장군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산 속을 걸어가다가 갑자기 호랑이 한 마리를 만났습니다. 그는 활을 꺼내서 전신의 힘을 다해서 호랑이를 쏘았는데 화살이 호랑이에게 명중했습니다. 그런데 이 호랑이가 화살에 맞았는데도 소리도 내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았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이광 장군은 가까이 가보니까 호랑이가 아니고 호랑이처럼 생긴 바위였습니다. 그는 바위를 호랑이로 착각한 것입니다. 이광 장군이 쏜 화살은 바위 깊숙이 박혀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쏜 화살이 바위를 뚫을 만큼 힘이 강한데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험삼아 다시 화살을 꺼내서 그 바위를 쏘았습니다. 아무리 쏘아도 화살은 바위에 박히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정신적 집중력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화살을 쏘았을 때는 호랑이로 알고 결사적 정신으로 쏘았기 때문에 화살이 바위에 박혔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 쏜 화살들은 결사적 정신이 부족했기 때문에 아무리 쏘아도 바위에 박힐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집중된 정신력이 얼마나 무서운 힘을 발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저마다 제 처지에 맞게 높은 뜻, 올바른 뜻을 세워야 합니다. 인생은 어떤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하여 분투 노력할 때 사는 보람이 있고, 삶의 충실 감이 있습니다.
둘째, 높은 뜻을 달성하기 위하여 힘을 길러야 합니다. 힘을 기르는 것, 실력 양성처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아무리 높은 이상과 목표를 세워 놓고 사명감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이룰 수 있는 힘이 없을 때는 한낱 허망한 공상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이상(理想)과 공상(空想)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이상은 실현의 가능성이 있는 목표요, 공상은 실현의 가능성이 없는 목표입니다. 힘이 없으면 품었던 꿈이 물거품처럼 무너지고 맙니다. 실현의 가능성이 없는 꿈은 망상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세상에 힘이 귀합니다. 힘이 만사를 결정합니다. 힘이 모든 것을 지배합니다. 일은 힘의 열매요, 힘의 산물입니다.
일과 힘은 밀접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은 힘의 함수입니다. 힘이 크면 큰 일을 할 수가 있고, 힘이 작으면 작은 일밖에 할 수가 없습니다. 일은 힘의 나무에 달리는 열매입니다.
큰 일을 하려면 큰 힘을 길러야 합니다. 힘을 기르지 않고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습니다. 작은 힘으로 큰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왜 아직 우주선을 만들지 못합니까? 아직은 우주선을 만들만한 과학력과 기술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왜 아직도 이 나라의 부정부패를 없애지 못합니까? 그것을 없앨 만한 국민의 도덕력과 양심의 힘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힘을 길러야 합니다.
셋째,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뜻을 세우고 힘을 기르는 까닭은 결국 보람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뜻과 힘의 목표는 일에 있습니다. 일은 나무의 열매와 같습니다. 나무에 잎이 나고 꽃이 피는 목적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입니다. 지식의 열매는 행동이요, 사상의 목표는 실천이요, 뜻과 힘의 결론은 일에 있습니다. 뜻이 뜻만으로 머물고, 힘이 힘만으로 머믄다면 뜻과 힘에 무슨 의미와 가치가 있겠습니까? 뜻을 세우는 것도, 힘을 기르는 것도, 모두다 우리의 발전과 사회의 유익을 위해 일하기 위해서입니다.
나무는 그 열매에 의해서 가치가 판단됩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그 행동에 의해서 가치가 결정됩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있는 근본목적은 보람된 일을 하는데 있습니다.
우리는 일생을 조용히 바라다보고 가만히 앉아 사색만 하는 소위 적정주의(Quietism)의 철학을 버려야 합니다. 반면에 우리는 인생의 보람과 의미를 실천과 행동 속에서 찾는 활동주의(Dynamism)의 철학을 우리 인생관으로 삼아야 합니다. 기독교는 앉아있는 종교가 아니라 일어나 힘써 일하는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분명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무엇이 우리의 중요한 문제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문제의식이 분명할 때 그것을 연구하고 분석해서 해결하려는 의지가 생깁니다. 그런데 문제의식만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우리에게는 분명한 책임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 문제의 해결이 남의 일이 아니고 우리의 책임입니다. 책임의식 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모름지기 우리는 확고한 사명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나의 사명리라는 사실을 느낄 때 우리는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온갖 지혜와 노력과 정성을 기울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의 확고한 사명을 발견할 때 인생을 살아가는 자세가 달라지고, 행동하는 원칙이 뚜렷하게 됩니다. 우리의 삶의 자세가 변하게 되는 것은 사명감의 자각입니다. 사명적 인생관을 가질 때 우리는 비로소 인생을 씩씩하게 살아갈 수가 있고, 보람있게 살아 갈 수가 있고, 의미 있게 살아 갈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사명적 인생관은 어떤 것입니까? 사명적 인생관을 가질 때 차원이 높은 삶을 살아갑니다. 차원이 높은 삶이란 어떤 것을 말합니까? 봉사의 삶을 말합니다. 사람은 주고받는 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받기만 하고 주지 않는 삶이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이기주의라고 합니다.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 삶이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개인주의라고 합니다. 우리가 보통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를 혼동하기 쉬운데 이것은 완전히 구별되어야 합니다.
이기주의는 내 욕심과 이익밖에 모르는 탐욕주의입니다. 그러니까 내 이익과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남을 희생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나 개인주의는 그렇지 않습니다. 집단이나 전체보다도 개인의 성격과 자유를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개인주의는 이기주의 보다 높은 차원의 삶입니다.
그리고 주는 만큼 받고, 받는 만큼 주려는 삶이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합리주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건전한 생활원리입니다.
'그런데 개인주의나, 이기주의나, 합리주의 보다 훨씬 높은 차원의 인생관이 있습니다.
그것은 받을 생각을 떠나서 될수록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받기를 바라지 않고 상대방에게 자꾸만 주는 태도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봉사주의 인생관이라고 말해도 될 것입니다. 이것은 이기주의와는 정반대인 이타주의의 삶을 말합니다.
사람은 모두가 주고받는 원리에 의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은 줄 때 받기를 원합니다. 또 받을 생각을 하고 줍니다. 그러므로 내가 준 만큼 받지 못하면 원망과 섭섭한 마음을 느낍니다. 이것이 보통 사람의 삶의 자세입니다.
그러나 봉사주의자는 주려고 하고 주는데서 기쁨을 느낍니다.
받겠다는 생각을 떠나서 자꾸만 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차원과 수준이 높은 인생관입니다. 봉사가 무엇입니까? 스스로 원해서 보수를 바라지 않는 기쁜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강요당해서 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봉사가 아닙니다. 가령 무슨 잘못한 일이 있어서 그 벌로 봉사시키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엄격한 의미에서 봉사가 아닙니다. 일의 질이 다릅니다. 삯을 받고 일하는 것도 봉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삯을 위해 일하는 사람의 일도 질적으로 다릅니다. 그런데 아무런 대가 없이 일하는 자원봉사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예배당 관리를 위한 자원봉사대가 일하는 모습을 보셨습니까? 보는 사람이 은혜가 됩니다. 손이 미치지 않는 곳은 할 수 없지만 손이 미치는 곳에는 손길이 가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새 예배당에 입당한지 일년이 지났지만 입당할 때보다 더 아름답게 깨끗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자원봉사자들이 기쁜 마음으로 정성을 쏟아 관리하기 때문입니다. 자원과 자의에 의해서 일하는 것을 봉사라고 합니다.
봉사는 보수를 바라지 않습니다. 보수를 바라면 그것은 봉사가 아닙니다. 봉사는 봉사 그 자체가 보수요 기쁨입니다. 봉사는 인간의 행동 중에서 가장 높은 차원의 행동입니다. 위대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위대한 봉사를 하는 사람입니다. 봉사정신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사람은 위대합니다. 봉사정신은 인물을 평가하는 척도요 기준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나 봉사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훌륭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야 봉사할 수가 있습니다. 내 이익과 탐욕만을 위해서 사는 이기주의자는 봉사 적인 사람이 될 수가 없습니다. 봉사하려면 위대한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더구나 봉사를 하려면 여력이 있어야 합니다.
남에게 무엇을 주려면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시간의 여유, 돈의 여유, 지식의 여유, 능력의 여유, 힘의 여유, 무엇보다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위대한 사람은 남에게 많이 주는 사람입니다.
많이 주면 줄수록 위대해 집니다. 마태복음 20장에 보면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26-28).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위대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봉사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남에게 봉사를 받으려 오신 것이 아니라 남을 봉사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나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생명을 제물로 바치려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 말씀에서 봉사주의의 위대한 정신을 발견합니다. 보통 사람은 남이 나에게 섬기고, 봉사하고, 대접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반대의 원리와 입장을 강조하셨습니다. 내가 남을 섬기고, 남을 대접하고, 남에게 봉사하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봉사의 본을 보이기 위해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남의 발을 씻어 준다는 것은 최대의 겸손과 최고의 봉사를 의미합니다.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 주는 것처럼 너희도 이 민족의 발을 씻어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복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봉사를 최고의 차원, 최상의 원리로 보았습니다.
남에게 준다는 것은 한없이 축복된 일입니다. 그러나 준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는 어떻나 마음으로 주어야 합니까? 주는데 지혜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주는 사람의 마음이 교만해 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교만한 마음으로 주는 것은 결코 축복이 될 수 없습니다. 주는 사람은 교만을 일으키고 받는 자는 모욕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남에게 줄 때는 준다는 생각을 떠나서 주어야 합니다. 사람은 돈을 주건, 지식을 주건, 말씀을 주건, 주는 사람은 의식무의식 중에 우월감에 빠지고, 교만한 마음로 전락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누구에게 주었다는 기억을 하지 않고 주어야 합니다. 주었으면 잊어 버려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 말씀대로 오른손이 한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입니다.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는 마음의 자세가 더 중요합니다.
프랑스 말에 nofless oflige란 말이 있습니다.
고귀한 신분에는 의무가 따른다는 말입니다. 신분이 높은 사람은 그 신분에 합당한 덕을 구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특권에는 사명이 따르고, 신분에는 의무가 수반됩니다. 남보다 뛰어나 사람은 남보다 더 많은 의무와 책임과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돈이 많은 사람은 돈이 적은 사람을 위하여 무엇인가 해야 됩니다. 지식이 많은 사람은 지식이 적은 사람을 위하여 무엇인가 봉사해야 합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은 권력을 못 가진 사람을 위하여 무엇인가 공헌해야 합니다. 능력 있는 사람은 능력 없는 사람을 위하여 무엇인가 헌신해야 합니다. 특권이 부여된 사람은 대중을 위하여 무엇인가 이바지해야 합니다.
미국 알링톤 국립 묘지의 푸른 언덕에서 묻혀 있는 젊은 대통령 J.F 케네디는 1961년 마사추세츠주 상원에서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훗날 역사의 심판대 앞에서야 합니다. 그때 역사는 우리에게 다음 네 가지 질문을 던질 것입니다.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하여 "예"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첫째 당신은 용감했습니까? 둘째 당신은 총명했습니까? 셋째 당신은 성실했습니까? 넷째 당신은 헌신했습니까? 정말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용감하게 살아야 하고, 총명하게 살아야 하고, 성실하게 살아야 하고, 헌신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헌신은 봉사와 꼭 같은 말입니다. 우리는 이 시간 스스로 생각해 보시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나는 무엇을 바칠까? 내 가족을 위해서, 내 직장을 위해서, 내 교회를 위해서, 내 민족을 위해서, 내 조국을 위해서 또 인류와 세계를 위해서 나는 무엇을 바치고 무엇을 봉사해야 하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와서 70,80 살다가면서 과연 무엇을 남겨 놓고 갑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가 네게 이런 심부름을 시켰는데 세상에 무엇을 남겨 놓고 왔느냐 물으시면 뭐라 대답하시겠습니까?
인생은 공수래공수거,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올 때는 빈손으로 왔지만 갈 때는 무엇인가 남겨 놓고 가야 합니다. 허송세월은 인간의 최대의 수치입니다. 무위도식은 인간으로서 가장 부끄러운 일입니다. 우리는 왔다가 가는 이 세상 무엇인가 보람있는 것, 가치 있는 것, 영광된 것, 의미 있는 것을 남겨놓고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인생의 진정한 행복은 남에게 주는 생활에 있습니다.
우리는 주의 사람에게 무엇인가 주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훈훈한 미소와 따뜻한 말을 정다운 표정을 주며 살아갑시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제 언젠가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될 터인데 무엇을 내놓으시겠습니까? 바울처럼 말할 수 있습니까?

 

인생의 분기점
록키 산맥의 카나다 지역에 높은 곳에 두강의 발원지가 있다 한다. 여기에서 솟아나온 물 줄기는 내려오다가 한 分岐點을 만난다. 이름하여 "디바이드 크릭" "나누는 냇물" 이라 부른다. 하나로 흐르던 물이 큰 바위에 와서 부�히고는 갈라지는데, 한쪽으로 흐르는 물은 킥킹 호스 강으로 흐르는데 태평양에 이어지고 반대편으로 흐르는 물은 바우 강에서 사스카치완 강으로 흘러 결국 대서양으로 흘러들어 간다.
한번 흘러 지나가면 다시 돌아갈 수 없이 엄청나게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결정적인 분기점에서 어디로 나아가느냐가 우리의 운명을 완전히 결정 지을수 있는 것이다. 신앙의 좋은 나무에서는 좋은 열매가 맺히지마는 불신앙과 죄악의 나쁜 나무에서는 결코 좋은 열매가 맺히지 못하고 쓴 열매를 맺게 될것이다.
십대의 귀중한 청소년 시기는 여러번 자주 인생의 분기점을 만난다. 그러므로 어디로 가느냐 무엇을 하느냐의 태도와 선택은 참으로 중요하다 지금은 인격의 나무, 신앙의 나무를 가꿀때이다. 섣불리 꽃피우고 설익은 열매를 얻으려 하다가는 정말 귀한 시기와 상황을 놓지게 된다. 좋은 신앙의 나무로 성장하자.

 


인생의 항해
인생은 항해와 같습니다.
목적 없는 항해는 없는 것처럼 인생에는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사십니까?
배를 위해 항해하는 것이 아니라 항해를 위해 배가 있는 것처럼 단지 먹고 사는 것이 인생의 전부라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진정한 삶의 목적 없이 죽음과 함께 없어질 것들을 위해 사는 것은 영혼이 죽어 있기 때문입니다.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에스겔18:4)
곧 죄로 인해 모든 사람의 영혼이 죽은 것이며 한 사람의 예외도 없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3:10)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브리서 9:27)라고 인생의 결국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애써 수고하고 산 결과가 죽음이고 하나님의 심판이라면 당신은 지금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심판이 기다리는 죄의 항해를 계속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구원의 밧줄을 붙드시겠습니까?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린도후서6:2)
망설인 시간이 없습니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요한복음3:18)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심판을 받지 아니함은 우리의 모든 죄에 대한 심판을 십자가에서 그가 대신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로마서 4:25)
지체하지 말고 다시 사신 예수를 구주로 믿어 영생을 소유하심으로 진정한 목적이 있는 인생의 항해를 시작하십시오.

 

인생은 항해와 같습니다.
목적없는 항해는 없는 것처럼 인생에는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사십니까?
배를 위해 항해하는 것이 아니라 항해를 위해 배가 있는 것처럼 단지 먹고 사는 것이 인생의 전부라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진정한 삶의 목적 없이 죽음과 함께 없어질 것들을 위해 사는 것은 우리의 영혼이 죽어 있기 때문입니다.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 (에스겔 18:4)
곧 죄로 인해 모든 사람의 영혼이 죽은 것이며 한 사람의 예외도 없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로마서 3:10)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브리서 9:27) 라고 인생의 결국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애써 수고하고 산 결과가 죽음이고 하나님의 심판이라면 당신은 지금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심판이 기다리는 죄의 항해를 계속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구원의 밧줄을 붙드시겠습니까?
"보라 지금은 은혜를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린도후서 6:2) 망설일 시간이 없습니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요한복음 3:18)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심판을 받지 아니함은 우리의 모든 죄에 대한 심판을 십자가에서 그가 대신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로마서 4:25)
지체하지 말고 다시 사신 예수를 구주로 믿어 영생을 소유하심으로 진정한 목적이 있는 인생의 항해를 시작하십시요.

 


인생 성공 방정식
어떤 천채과학자에게 기자들이 인생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천재 과학자는 "그것은 l=g+j+n"라고 대답했다.
기자들이 해설을 요구하자
그는 l은 인생이고 g는 하나님, j는 일이며 n은 즐기는 것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하나님 중심의 인생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산에 오르실 때에 제자들에게 돌을 가지고 올라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주님의 뜻이 있는 줄 믿고 이왕이면 큰 돌을 가지고 갔고 가룟 유다는 산 위에 무슨 돌을 가지고 올라가란 말이냐고 불평하며 아주 작은 돌을 가지고 올라갔습니다. 산 위에 오르신 주님은 제자들이 가지고 온 돌을 축복해 빵을 만들어주셨습니다. 항상 예수님 중심의 삶을 따른 베드로는 기뻐했고 유다는 크게 낙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경에는 사울과 다윗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울은 왕이 되었지만 불행한 사람이 되었고 다윗은 많은 고난도 있었지만 행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사울은 자기 중심으로 살았고 다윗은 하나님 중심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찌거기 인생의 대역전
미국 시카고에 있는 어느 한 교회에서 세살짜리 여자아이의 장례식이 있었다.먹지 못해 굶어 죽은 아이였다.그런데 이 불쌍한 여자아이의 장례식에 남루한 옷을 입고 충혈된 눈으로 찾아온 한 알코올 중독자가 있었다.그는 사람들이 기도하는 틈을 타 죽은 아이의 신발을 벗겼다.그걸 팔아 술을 마신 그 사람은 바로 죽은 아이의 아버지였다.

20년 후,시카고 제일장로교회에서는 수천명의 성도들 앞에서 한 사람이 외치고 있었다.

“죽은 딸의 장례식에서 신발을 훔쳤던 파렴치범은 바로 저였습니다.만물의 찌꺼기 같은 나를 다시 살려주시고 하나님의 일꾼으로 삼아주신 분은 위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가 바로 시카고의 부흥사 멜 트라더 목사였다.하나님은 인간이 볼 때 폐품같고 불량품 같은 그를 통해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다시 드러내는 놀라운 창조주이심을 기억하자.


마리아 한목사인생
마리아 한 목사 인생 ‘화제’ 지구촌 돌며 17년째 복음사역…

아르헨티나 호주 네팔 등 전 세계를 돌며 복음을 전하고 있는 마리아 한 목사의 봉사 인생이 미국의 지역신문에 머리기사로 소개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녀가 처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은 22세 때 서울에서였다.“하나님이 제게 ‘너는 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물으셨어요. 그때 저는 결혼도 해야 하고 남동생이 자라는 것을 봐야 한다고 거부했지요”

세번째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녀는 성령과 함께 전 세계를 돌며 복음을 전파하라는 명령에 순종하기로 결정하고 1986년 아르헨티나에 선교사로 첫발을 내디뎠다. 그녀는 그곳에서 많은 기적을 보았다. 악성종양에 걸린 소년을 위해 기도하자 소년이 치유됐다. 전날만 해도 아이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고 의사는 하루나 이틀내에 숨질 것이라고 말했었다.

한선교사는 아르헨티나에서 교회를 개척해 4년동안 수천명의 성도를 모았다. 모든 것이 안정돼 가고 있을 때 하나님은 그녀에게 다시 호주로 떠날 것을 명령했다. 호주 시드니에서 그녀는 젊은이들을 위한 사역을 펼쳤다. 그녀는 우선 뷔페식당을 열고 맛있는 음식으로 젊은이들을 모았다. 또한 젊은이들을 상담해줄 상담팀을 구성했다. 그것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많은 젊은이가 찾았고 먼 곳에서도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마약과 갱단에 연루된 폭력에 묻혀 살던 젊은이들이 변화되기 시작했다. 3000명 이상의 젊은이들이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했다.

한선교사는 이어 시드니에서 승용차로 6시간 거리인 타리지역의 원주민 선교에 힘을 쏟았다. 그녀와 그녀의 사역팀은 그들에게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는 노래를 가르쳤고 모든 원주민은 그 노래를 배웠다. 원주민들 사이에 그 노래를 얼마나 잘 부르냐에 따라 노래 실력을 평가받는 일이 일어났다.

“우리는 그들에게 성경 읽는 법과 기도하는 법을 가르쳤어요. 수천명의 원주민이 함께 했고 나중에 방언으로 기도했어요”

그러나 한선교사에게 위기가 닥쳐왔다. 미국으로 떠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그녀는 타리지역 계곡에서 떨어져 병원에 입원하고 갱단에게 폭행을 당해 생명이 위독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녀는 결국 회개의 기도를 드렸고 건강을 회복했다.

한선교사는 미국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필라델피아 순복음교회에서 사역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아프가니스탄과 네팔을 찾아 의료선교 사역을 벌였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돌아오니 하나님께서 선물을 준비해놓고 계셨어요. 교회를 세울 수 있는 넓은 땅을 마련해 주셨죠”


인생의 삶의 보람은
[인생을 좀더 보람있고 가치있게 사는 방법은 없을까]
이 질문은 내 인생의 주제였다. 그래서 연세대 교육학과를 졸업했지만 전공과는 달리 사회사업에 몸을 담았다. 처음엔 일에 대한 긍지를 느낄 수 있었으나 봉사도 한계가 있었다. 무엇보다 사회사업 자체에도 순수함이 상실되고 있는 거시 안타까웠다.
1970년, 미국 시카고로 이민을 떠났다. 새로운 곳에서 나를 개척해 보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원대한 꿈과는 달리 내가 얻어낸 직장은 빌딩관리인이었다.
엘리트의식을 가졌던 내가 현실에 대해 만족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1978년, 우연히 시카고 한인 부흥성회에 참석했던 나는 [자아가 깨어지고 거듭나는]놀라운 체험을 하게 되었다. 복음이 들어온 내게 비춰지는 세계는 전혀 딴 세상이었다.
[왜 평안과 기쁨, 진리가 가득한 세계를 몰랐을까]
나는 서른아홉살이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듬해 시카고신학교에 입학했다. 전도사로, 목사로 목회를 하면서야 나는 비로소 인생의 바른길을 찾았다는 만족을 느낄 수 있었다.
1985년, 필리핀에 단기선교를 떠났다. 그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보면서 내 가슴은 선교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차올랐다. 그것은 거역할 수 없는 [명령]이었다.
가족을 놔두고 필리핀으로 사역지를 옮겼다. 내가 가진 것은 [기도의 힘]뿐이었다.
무조건 그들에게 뛰어 들었다. 빈민촌지역부터 선교를 시작했다. [못사는 나라에서더 못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정말 불쌍했다.
그들에게 참된 애정과 사랑을 쏟아 줄 때 [복음의 능력]은 빛을 발했다.
산족전도를 시작했다. 그들은 워낙 고지대에 사는 데다가 주위에 공산게릴라들이 자주 출몰해 안내인도 가기를 꺼렸다. 그러나 [죽으면 죽으리라]는 자세 앞에는 못할 것이 없었다.
6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3시간을 걸어 올라가 만난 산족의 모습은 아시아의 인디언들 이었다. 겨우 몸만 가린 그들은 잘 먹지 못해 하나같이 말라 있었다. 추장을 만나 나의 뜻을 전했더니 자신들이 믿는 신은 따로 있다며 단호히 거부했다. 나는 즉시 묵
상기도를 하며 하 [추장님, 하나님을 믿으니 이렇게 몸도 좋고 좋은 옷을 입고 있지 않습니까. 여기서
믿는 신이 능력이 있다면 왜 이렇게 가난합니까]
추장은 할말을 잊은 듯 고개를 끄떡였다. 이곳에 교회가 세워져 매주일 예배가 드려지고 있는 것은 정말 꿈같은 일이다. 하나님의 섭리가 놀라울 따름이다.
필리핀 선교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의욕적인 현지사역자들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학교를 세웠다. 현재 26명의 학생이 오전에는 공부하고 오후에는 열심히 일하며 사역을 준비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미국에 있을 때보다 가족들을 더 잘 보살펴 주셨다. 첫딸이 의과대 학에 입학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기도응답이었다. 그것은 약사인 아내와 함께 온 가족이 의료선교를 본격적으로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약하고 부족하지만 내안에 계신 하나님이 강하시고 능력이 있으시며 용기를 주시기에 이일을 감당합니다]
나는 어디서나 이 말을 되뇌인다. 그리고 선교지에서 뼈가 묻힌 다는 각오가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내게 명하신 명령이자 사명이기 때문이다.

 

함께 사는 지혜 (지혜삶인생)
소설가 하근찬씨의 데뷔작으로 `수난 이대`라는 작품이 있다.
일제 때 강제징용에 끌려가서 팔 하나를 잃고 불편한 삶을 살고 있던 아버지가 있다.
그는 6.25동란에 참전했다가 제대하고 돌아오는 아들을 마중하기 위하여 읍내 기차 정거장으로 간다.
거기서 아들 또한 한쪽 다리가 잘린 병신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하게 된,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병신 부자의 조우는 그들을 망연자실하게 한다.
대상없이 치미는 아버지의 울화, 아들의 착잡한 심경, 내일의 삶을 생각 하면서 느끼는 심도 깊은 불안, 이 모든 것이 하나로 뒤엉킨 복잡한 감정의 교감을 막걸리 한잔에 담아 서로 나누고 두 사람은 시골길을 돌고 돌아 집으로 발걸음을 향하였다.
어느덧 외나무 다리가 가로놓인 냇가에 당도한 아들은 새삼스럽고 구체 적인 또 하나의 좌절을 맛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목발을 짚은 외다리 신체조건으로서는 이 다리를 도저히 건널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래로 내려가 물살 심한 급류천을 건너간다는 것은 더 한층 위험한 일이 아니겠는가.. 순간적으로 절망적인 당혹감을 나타내는 아들의 얼굴 표정을 읽은 아버지 박만도씨는 말없이 아들 앞에서 자기의 등을 내민다.
몇 차례 사양하다 아버지의 등에 업힌 진수, 그 등이 유난히 따사롭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렇게 두 몸이 하나되어 조심조심 다리를 건너가면서, 아들은 아버지를 걱정하고 아버지는 아들의 남은 인생을 염려하고 있다.
피차 착잡한 마음으로................

 

하나님 없는 인생
롬 1:28; 시 14:1; 롬 6:23; 시 36:9; 잠 27:1 우리 교회에서 한때 실시했던 민방위 교육 후 어떤 사람이 저에게 상담을 청해 왔습니다. 그는 저를 찾아와서 자신은 일류 대학을 나오고, 돈도 벌 만큼 벌었으며, 전에는 학원도 차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누군가가 그에게 에수님을 믿으라고 권하면, `예수? 문제가 있어야 믿지. 이렇게 행복한데 예수는 무슨 예수야!`라고 하면서 코웃음만 쳤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가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트럭에 이마를 부딪쳤습니다. 병원에 가서 수술을 했지만 몸에 마비증 세가 왔습니다. 성불구자가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삼년 후 아내는 자식들을 데리고 집을 나가 버렸습니다. 이혼을 하고서 지금은 동생집 사랑방에서 혼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행복하다고 해서 자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없는 삶이 행복한 것 같지만 결국에 가서는 불행으로 끝납니다. 하나님의 소망 가운데 사는 것이야말로 진실로 행복한 삶입니다. 하나님이 인생의 진실한 의미이며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허무한 인생
호주 어느 한인 교회 강장로 이민가서 고생하여 집 사가지고 수리하고 정원꾸며 편안하게 살려고 하는데 모든 일이 마쳐진 그날발 잠자다가 몸이 이상하다고 밖에 나가다 넘어져 즉사.

 

인생의 안내
아프리카의 콩고에서 일하던 스티븐스 선교사의 수기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읍니다. 스티븐스는 콩고의 정글 한복판에 조그마한 오두막집을 짓고 살면서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전도하였읍니다.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풍우가 몰아치던 어느 날, 뜻밖에도 백인 청년 두 사람이 이 선교사의 오두막집을 찾아왔읍니다. 그들은 비바람 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사실, 이 정글 속에는 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길도 없었읍니다. 이들이 선교사의 오두막집 문을 두드리며 다음과 같이 말했읍니다. `
저희들은 진스강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 강으로 가는 길을 도무지 알 수가 없읍니다. 그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유감스럽게도, 이 정글에는 길이 없읍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우리는 그 진스 강에 꼭 도착해야 합니다. 방향이라도 좀 가르쳐 주십시오` `여기에서는 방향도 가리킬 수가 없읍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이 때 스티븐스 선교사는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했읍니다.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읍니다. 그것은 제가 당신들을 데리고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선교사는 청년두 사람을 데리고 가면서 나무와 각종 식물로 뒤엉긴 정글에서 인생을 설명했다고 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인생의 정글에서 길을 잃어버립니다. 갈 길을 알지 못합니다. 공포와 불안이 우리 마음을 지배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갈 것인가를 고민하지 마십시오 길을 아는 그분이 내 곁에 계시다면! 그분이 내 손을 잡고 인도하신다면! 하나님이 당신 곁에 거하십니까? 당신은 하나님과 참으로 살아있는 교제를 나누고 계십니까? 당신이 하나님을 붙들고 간다면 인생의 수다한 결정의 길목 앞에서 방황할 필 요가 없읍니다. 그분이 당신과 함께 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결정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선택
오래전에 어떤 두 여인이 같은 시기에 헐리우드의 배우가 되었는데, 한 사람은 콜린 타운센드였고, 또 한 사람은 마릴린 몬로였다.
그로부터 몇년 후 타운센드양은 예수를 믿고 헐리우드를 떠나 선교 목사님과 결혼하였으나 마릴린 몬로는 계속해서 섹스의 심벌로 헐리우드에 남아 있었다.
어느날 몬로는 타운센드를 만나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가 영화배우가 되기로 했을 때 나는 결심했지. 그래서 꿈을 이루었지만 너무나 비싼 댓가를 치루어야만 했어. 나는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고 불행한 사람이야`
그후 어느날 밤 몬로는 죽었으나 타운센드는 주님을 위하여 지금도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인생의 삶의 보람은
[인생을 좀더 보람있고 가치있게 사는 방법은 없을까]
이 질문은 내 인생의 주제였다. 그래서 연세대 교육학과를 졸업했지만 전공과는 달리 사회사업에 몸을 담았다. 처음엔 일에 대한 긍지를 느낄 수 있었으나 봉사도 한계가 있었다. 무엇보다 사회사업 자체에도 순수함이 상실되고 있는 거시 안타까웠다.
1970년, 미국 시카고로 이민을 떠났다. 새로운 곳에서 나를 개척해 보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원대한 꿈과는 달리 내가 얻어낸 직장은 빌딩관리인이었다.
엘리트의식을 가졌던 내가 현실에 대해 만족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1978년, 우연히 시카고 한인 부흥성회에 참석했던 나는 [자아가 깨어지고 거듭나는]놀라운 체험을 하게 되었다. 복음이 들어온 내게 비춰지는 세계는 전혀 딴 세상이었다.
[왜 평안과 기쁨, 진리가 가득한 세계를 몰랐을까]
나는 서른아홉살이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듬해 시카고신학교에 입학했다. 전도사로, 목사로 목회를 하면서야 나는 비로소 인생의 바른길을 찾았다는 만족을 느낄 수 있었다.
1985년, 필리핀에 단기선교를 떠났다. 그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보면서 내 가슴은 선교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차올랐다. 그것은 거역할 수 없는 [명령]이었다.
가족을 놔두고 필리핀으로 사역지를 옮겼다. 내가 가진 것은 [기도의 힘]뿐이었다.
무조건 그들에게 뛰어 들었다. 빈민촌지역부터 선교를 시작했다. [못사는 나라에서더 못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정말 불쌍했다.
그들에게 참된 애정과 사랑을 쏟아 줄 때 [복음의 능력]은 빛을 발했다.
산족전도를 시작했다. 그들은 워낙 고지대에 사는 데다가 주위에 공산게릴라들이 자주 출몰해 안내인도 가기를 꺼렸다. 그러나 [죽으면 죽으리라]는 자세 앞에는 못할 것이 없었다.
6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3시간을 걸어 올라가 만난 산족의 모습은 아시아의 인디언들 이었다. 겨우 몸만 가린 그들은 잘 먹지 못해 하나같이 말라 있었다. 추장을 만나 나의 뜻을 전했더니 자신들이 믿는 신은 따로 있다며 단호히 거부했다. 나는 즉시 묵
상기도를 하며 하[추장님, 하나님을 믿으니 이렇게 몸도 좋고 좋은 옷을 입고 있지 않습니까. 여기서 믿는 신이 능력이 있다면 왜 이렇게 가난합니까]
추장은 할말을 잊은 듯 고개를 끄떡였다. 이곳에 교회가 세워져 매주일 예배가 드려 지고 있는 것은 정말 꿈같은 일이다. 하나님의 섭리가 놀라울 따름이다.
필리핀 선교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의욕적인 현지사역자들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래t서  신학교를 세웠다. 현재 26명의 학생이 오전에는 공부하고 오후에는 열심히 일하며 사역을 준비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미국에 있을 때보다 가족들을 더 잘 보살펴 주셨다. 첫딸이 의과대 학에 입학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기도응답이었다. 그것은 약사인 아내와 함께 온 가족이 의료선교를 본격적으로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약하고 부족하지만 내안에 계신 하나님이 강하시고 능력이 있으시며 용기를 주시기에 이일을 감당합니다]
나는 어디서나 이 말을 되뇌인다. 그리고 선교지에서 뼈가 묻힌 다는 각오가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내게 명하신 명령이자 사명이기 때문이다.

 


인생을 사는 세가지 유형
영국의 종교 개혁가이며 작가인 찰스 킹슬리 목사는 한 젊은이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인 간은 이론상으로 어떻게 분류되든 실제적으로 다음 세 유형이 있을것입니다.
첫째는 정직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옳은 일을 생각하고 그것을 행합니다. 둘째는 악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그릇된 것을 생각하고 그것을 행합니다. 셋째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정직한 사람이 기뻐하는 일이든, 악한 사람이 기뻐하는 일이든 분별없이 행하는 사람입니다.]
 

인생안내
인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며, 왜 사는가. 이 세가지는 가장 보편적이고 근본적이며 본질적인 물음이다. 우연히 만난 남녀의 성행위에서 수십억중의 정자 하나가 난자하나를 만나서 생긴 것이 인간이다. 인간을 형성하고 있는 화학적 요소를 분석하면 약간의 지방, 철분, 당
분, 석회분, 마그네슘, 인, 유화, 칼륨등과 염분과 대부분의 수분이 전부다. 아마 화학약품점에서 몇천원이면 살 수 있을것이다. 거기다 고도로 발달한 동식물의 생명체가 들어있다고 생각해 본다. 그러나 그런 사고로는 인간의 의미와 목적은 모른다. 자연에게 물어봐도 답이 없고 자신이나 과학이나 철학이나 종교에서 물어봐도 대답할 수 없다.
나를 만든 분만 알고 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고 천하보다 소중한 사랑의 대상이라고 성서가 가르쳐준다.
성서는 인생의 안내도 그리고 예수님은 그길의 안내자다. 이 세상은 우리의 영원한 주소가 아니다. 호출이 오면 언제라도 떠나야하는 출생과 사망 사이의 다리 위를 통과하는 나그네. 예수가 그 길이요, 생명이다.

 

무대위의 연기자 인생
프랭클 박사는 인생을 이런 예화를 들어서 설명합니다. `인간은 무대 위에 서 있는 배우와 같이 일단 태어나면 죽을 때까지 그 무대 위에 있게 된다. 이제 밝은 스포트라이트가 그를 비춘다. 객석의 조명은 컴컴하다. 무대 위에 일단 올라서면 관중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한 개의 검은 구멍만 보일 뿐이다. 그곳에는 어떤 스피커 장치도 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그 구멍으로부터 나오는 소리를 듣거나 그 구멍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구멍 안에 인간을 심판하는 어떤 존재가 있다는 사실은 아주 잘 알 수 있다. 그 사실은 인간에게 위로가 되며 활기를 불어넣어 줄 수도 있을 뿐 아니라 활력을 주고 동기를 부여해주고 인도자가 되어준다. 결국 그 사실은 무대 위에 있는 동안에 인간의 행동을 결정해 주게 된다. 이제 무대 위의 배우가 그 검은 구멍 속에 있는 보이지 않는 그 어떤 존재를 기쁘게 해드릴 것을 결심하는 순간 그 배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연극은 끝이 난다. 박수가 쏟아진다. 그리고 조명등에 불이 들어오고 마침내 청중들의 얼굴을 본다.` 그 무대 위의 배우는 우리이며 구멍 안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물론 우리는 그분을 뵐 수도, 음성을 들을 수도 없지만 우리의 연기를 말없이 평가하시는 존재가 있음을 알 수 있읍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절제하게 되고, 근신하게 되고, 동기를 부여받고, 그리고 용기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검은 구멍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십시오. 당신을 사랑하고 격려하고 계시는 그리스도를 발견할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실패를 열매맺는 경험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목마른 인생
유명한 미국의 성공회 신학자였던 제임스 피크라고 하는 분이 예수님께서 시험받으시던 유대광야를 찾아갔다가 그만 자동차가 고장이 나서 그 뙤약볕 아래에서 고통을 겪으며 마
지막 남았던 콜라 한 병을 마시고는 세상을 떠났다는 기사가 보도된 적이 있다. 이처럼 현대인은 사막 가운데를 걸어가는 목마른 인생들이다.

초를 아끼는 「황금인생
평생을 시계조립에 보낸 사람이 아들에게 시계 하나를 만들어 주었다.그 시계는 초침은 황금,분침은 은,시침은 동으로 되어 있었다.[ 아버지.시침이 금,분침이 은,초침이 동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 아들이 묻자 아버지는 [ 아니다.초침이 가는 길이야말로 황금 길이다.
초를 허비하면 황금을 잃는 것이다] 라고 대답했다.그리고 아들에게시계를 채워주며 말했다.[ 초를 아끼지 않는 사람에게 어떻게 분과 시간이 있을 수 있겠니? 이 세상의 변화는 초침에 맞춰지고 있다는것을 명심해라]

 

인생의 수업료
어느 날 대학 입시에 거듭 실패하여 삼수를 하고 있는 학생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는데 그 학생은 좌절감에 빠져 있었읍니다. `목사님, 저는 대학입시에 두 번이나 떨어졌읍니다. 이 젠 패배자로 삶의 의욕 조차 잃었읍니다. 나는 그 학생에게 `너는 실패자가 아니다. 다만 크게 성공하려고 다른 사람보다
수업료를 더 많이 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낙방이라는 실패를 통하여 인생의 깊은 골짜기를 지나 다시 일어설 때 연단을 받은 것이 되어서 장차 어떠한 시련에 부딪혀도 일어설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너는 다른 사람보다 더 크게 성공할 수 있다. 대학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라는 글과 함께 나의 간증을 적어 보냈읍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실패를 경험하지 않을 수는 없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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