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고구마들 / 이경림
자, 이 고구마를 먹어 치우자
불그죽죽한 껍질을 벗기고
노오란 속살을 먹어치우자
속살같이 들큰한 시간을 먹어치우고
허벅한 뒷맛도 먹어치우자
뽀오얀 접시 위에 놓인, 아니
넓적한 탁자 위에 놓인, 아니
더러운 마룻장 위에 놓인, 아니
컴컴한 구들장 위에 놓인, 아니
수끌거리는 용암 위에 놓인
이, 뜨거운 고구마를 먹어치우려고 나는
저 뜨거운 해에서 생겨나
번쩍이는 수천만의 별 사이를 흘러내려
묵 같은 허공을 수세기 떠돌다가
이 비스듬한 지붕 밑
넓적한 탁자 옆
볼기짝만한 의자에 앉아 있는 것
보라, 아무도 없는 방안에서 한 섬광이 지금
고구마만한 불덩이를 먹어치우고 있다
보라, 이 불덩이가 식도를 태우며
저 수만 리 용암의 길로 쏜살같이 달려가는 장관을,
이 장엄한 불의 식사를!
시집 <상자들> 2005년 랜덤하우스중앙
1947년 경북 문경 출생
1989년 『문학과비평』 봄호에 「굴욕의 땅에서」외 9편으로 등단.
시집 「토씨찾기」「그곳에도 사거리는 있다」「시절 하나 온다 잡아먹자」「상자들」2005년 렌덤하우스중앙
시평집 『울어라 내 안의 높고 낮은 파이프』등
2005년 8월 : 울어라 내안의 높고 낮은 파이프 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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