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조선 역사로부터 배움

럭키홍 2008. 4. 22. 15:11
정말 잘 된 책을 한권 소개하겠습니다. 신동준 씨가 집필한 <조선의 왕과 신화,
부국강병을 논하다>(살림)이란 책입니다. 근래에 읽었던 한국사 관련 책 가운데서
가장 우수작이라 꼽을 만한 책입니다.

1. 조선이 패망한 근본 원인은 무엇보다 왕권이 미약하고 신권이 강한 이른바
'군약신강'의 왜곡된 통치 구도에서 찾을 수 있다.

이는 조선 특유의 붕당정치에서 비롯되었다. 조선의 붕당 구도의 특징은 오직 성리학을
맹종라는 '사림세력'에 의해 유지되었다.

2. 조선의 붕당은 선조 때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선조가 신권의 주축이었던 훈구 세력을
몰아내고 사림세력을 대거 등용하면서 조선에 처음으로 붕당이 출현하였다.

3. 원래 조선의 훈구 세력과 사림 세력은 한 뿌리였다. 고려말기에 나타난 신흥
사대부들이 바로 이들 훈구 및 사림 세력의 선조였다.
당시 성리학으로 무장한 이들 신흥 사대부들은 권문세족이 권력을 세습하는 것을
비판했다. 이들 가운데 정도전 등 혁명파는 역성혁명을 통해 새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정몽주와 길재 등 개혁파는 내부의 개혁을 주장하며 혁명에 반대했다.
마침내 혁명파는 신흥 군벌로 성장한 이성계를 부추겨 최영 등 권문세족과 개혁파를
제거한 뒤 조선을 열었다.


4. 당초 정도전을 비록한 혁명파들은 역성혁명을 일으킨 뒤 성리학의 왕도 이념을
좇아 조선을 왕권보다 신권이 우위에 있는 이른바 '신권국가'를 만들고자 했으나
이내 이방원에게 제거되고 말았다.


5. 이후 조선은 태종과 세종, 세조, 성종 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유혈 정변이
일어났으나 대체로 강력한 '왕권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공신들이 나타났다. 이들 공신들이 바로 훈구세력의 주축을 이루었다.


6. 성종은 세조 때의 정난공신들이 신권세력을 형성할 것을 우려했다.
그래서 이들을 견제하기 위해 길재의 학통을 이어받은 김종직 등의 사림세력을
많이 발탁했다. 이로 인해 정난공신들이 주축이 된 훈구세력은
신권 세력으로 성장하지 못했다. 그러다 오히려 사림 세력이 훈구세력을 압도하는
신권 세력으로 부상했다.

7. 연산군 때 일어난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는 사림과 훈구 세력의 왕권에 대한 도전이
위험한 수위에 이르렀음을 방증하고 있다.
그러나 무오사화로 궤멸한 사림 세력과 달린 갑자사화에서 살아남은 일부 훈구 세력은
마침내 연산군을 몰아낸 뒤 중종을 앞세워 막강한 신권을 행사했다.
이로서 왕권은 심각하게 위협하는 신권이 처음으로 둥장했다.

8. 선조 때 퇴계와 율곡의 등장을 계기로 전국의 사람들이 이들의 문하로 모여들자
마침내 과거의 훈척 세력마저 사림을 자처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에 방계 출신으로 보위에 오른 선조는 이런 흐름에 편승해 자신의 취약한 왕통을
보완하고자 했다.
그는 스스로 사림의 일원임을 자처하며 남아있던 훈척 세력을 모두 몰아낸 뒤 오랫동안
금지해 온 붕당 결성을 적극 수용하고 나섰다
이로써 사림세력은 김종직이 중앙 정계에 처음으로 진출한 이래 근 1백년 만에 훈척의
견제를 받지 않고 독점으로 신권을 장악했다.

9. 당시 선조는 붕당 간의 갈등을 이용해 왕권을 유지하려고 했으나 이는 커다란
오산이었다. 이미 훈척 등의 견제 세력이 사라진 상황에서 독점으로 신권을
장악한 사림 세력이 신권 우위의 성리학 이론을 포기하고 왕권에 굴복할 리 만무했다.
이로써 조선은 마침내 왕권이 신권에게 제압당하는 '신권국가'로 치닫기 시작
하였다.


10. 본래 조선의 붕당 역시 위정자들이 정치 신념을 쫓아 만든 정치 집단이라는 점에서
볼 때 서양에서 발달한 정당과 다를 게 없다. 그러나 조선의 붕당은 성리학을 맹신하는
사림 세력만이 독점으로 참여했다는 점에서 서양의 정당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당시 사림세력들은 주자의 해석을 금과옥조로 삼아 이에 어긋나는 것은 모두
사문난적으로 몰아갔다. 주자의 성리학을 절대시하여 그 밖의 사상에 대해서는
이단으로 낙인찍어 가혹한 사상적 탄압을 했던 것이다.


11. 사림세력이 독점으로 붕당 구도를 형성한 이래 조선이 신권국가로 줄다음 친
것도 따지고 보면, 그들이 신봉했던 왕도주의 이념이 화석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왕도주의 이념은 붕당 구도를 통해 '국론분열'과 '폐쇄주의'를 널리
퍼트렸다. 이는 의리론에 얽매인 명분주의를 더욱 강화해 조선이 주변 정세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조선의 임기응변 능력을 완전히 잃어버린
시점에서 일제가 침공하자 덧없이 무너져 내리고 만 것이다.
-출처: 신동준, <조선의 왕과 신하, 부국강병을 논하다>, 살림,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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