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편지 / 도종환 붓꽃이 핀 교정에서 편지를 씁니다
당신이 떠나고 없는 하루 이틀은한 달 두 달처럼 긴데
당신으로 인해 비어 있는 자리마다깊디깊은침묵이 앉습니다
낮에도 뻐꾸기 울고
찔레가 피는 오월입니다
당신 있는 그곳에도 봄이면 꽃이 핍니까
꽃이 지고 필 때마다 당신을 생각합니다
어둠 속에서 하얗게 반짝이며찔레가 피는 철이면 더욱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가 많은 이 땅에선
찔레 하나가 피는 일도 예사롭지 않습니다이 세상 많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을 사랑하여
오래도록 서로 깊이 사랑하는
일은 아름다운 일입니다그 생각을 하며 하늘을 보면
꼭 가슴이 메입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서로
영원히 사랑하지 못하고
너무도 아프게 헤어져 울며
평생을 사는지 아는 까닭에
소리내어 말하지 못하고
오늘처럼 꽃잎에 편지를 씁니다
소리없이 흔들리는 붓꽃잎처럼
마음도 늘 그렇게 흔들려
오는 이 가는 이 눈치에 채이지 않게또 하루를 보내고 돌아서는 저녁이면
저미는 가슴 빈 자리로
바람이 가득가득 몰려옵니다
뜨거우면서도 그렇게 여린 데가
많던 당신의 마음도
이런 저녁이면 바람을 몰고
가끔씩 이 땅을 건너갑니까
저무는 하늘 낮달처럼내게 와 머물다 소리없이 돌아가는
사랑하는 사람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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