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경영자들은 말한다 "위기야, 고맙다"
-조영탁 월간 리더피아 발행인-
경기침체는 조직에 위기의식 불어넣어
조직 혁신·리스크 줄일 절호의 기회
조영탁 대표 / 조선일보 경제면 기고 2008.9.27
중국 전국시대에 전쟁으로 금값이 폭등하고 곡식 값이 폭락했을 때 금과 패물 등을 사들이는 다른 사람들과는 정반대로 곡식을 사들이는 이가 있었다. 전쟁이 장기화 되면서 식량 부족 현상이 나타났다. 양곡 값이 폭등하고 금값이 하락하면서 그는 거대한 부(富)를 축적했다. 이에 한고조 유방이 그를 불러 부의 축적 방법에 대해 물었다. 그는 "사람들은 누구나 비슷한 생각을 하는데 저는 사람들과 달리 생각합니다. 저는 그것을 역발상이라고 합니다"라고 말했다.
전 세계적 경기 침체가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드러난 악재는 더 이상 악재가 아니다.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은 "동양에서는 'crisis'를 위기(危機)라고 쓴다. '위(危)'는 위험을 뜻하고 '기(機)'는 기회를 뜻한다. 위기상황이 오면 위험을 예측하는 동시에 기회를 살펴야 한다는 뜻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궁즉통(窮卽通)이라 했다. 또한 이환위리(以患爲利)라는 사자성어도 있다. 리더에 대한 기대감은 위기 국면에서 고조된다. 많은 위대한 리더들은 위기를 틈타 영웅으로 거듭 태어난다. 그런 점에서 위기는 경영자에게 회피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가치를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위기는 보통의 경영자와 탁월한 경영자를 가려내는 리트머스시험지이다.
구체적으로 불황과 경기침체가 선사하는 기회는 다음과 같다. 첫째, 경제위기는 현대 조직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위기 의식을 높여준다. "역사적인 성공의 절반은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기 의식에서 비롯되었다. 반면 그리스·로마 등 천년만년 영광을 누릴 줄 알았던 강대국들이 얼마 못 가 망한 원인은 천재지변이나 외부 침략이 아닌 교만과 안이 때문이었다"는 아널드 토인비의 지적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환경 변화에 둔감하여 방심하다가 사라져간 수많은 기업들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잘 나가는 기업일수록 좌불안석하는 거안사위(居安思危)형 조직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변화·혁신 분야의 세계적 대가인 존 코터 하버드대 교수는 "조직 혁신을 시도하려 할 때 우리가 범하는 가장 큰 실수는 동료 경영진이나 직원들에게 충분한 위기 의식을 불어넣기도 전에 혁신을 시작해 버리는 것이다. 이런 실수를 범하는 것은 매우 치명적인데, 자만심과 무사안일이 팽배해 있는 조직에서 경영 혁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변화하지 않는 조직은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본능적으로 변화를 싫어하기에 변화·혁신을 위해서는 조직에 없는 위기라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고맙게도 경기 침체는 최고경영자가 특별한 공을 들이지 않고도 조직 전체를 위기 의식에 몰아넣어 과감한 혁신을 시도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줌으로써 평상시에는 손도 못 댈 여러 가지 혁신적인 조치들을 비교적 쉽게 해낼 수 있게 한다.
둘째, 경기 침체는 투자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해 준다. 겨울이라 해도 봄은 반드시 온다. 경기는 늘 호황과 불황의 연속이다. 가장 비관적인 상황, 모두가 투자를 꺼리는 불경기에 투자하는 기업이 호황이 닥쳤을 때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청쿵그룹 리카싱 회장은 "다른 사람들이 물러날 때 나는 나아가고, 다른 사람이 얻으려 할 때 나는 포기한다(人退我進 人取我棄). 실제로 나는 경기 불황으로 부동산 가격이 폭락할 때 매입에 나섰으며 경기가 좋아지자 이를 팔아 M&A에 나섰다"고 말한다.
자고로 투자는 불황기에 하는 것이다. M&A도 마찬가지다. 호황기에 높은 값을 치르고 인수한 기업들은 나중에 큰 위험에 처하는 경우가 많고, 반대로 불황기에는 인수 가격도 크게 떨어지므로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좋은 매물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
셋째, 불황은 내부 결속과 체질 개선의 기회를 가져다준다. 물론 불황기에는 직원들의 사기 저하가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경영자가 하기에 따라서 오히려 외부 환경의 악화는 내부 직원의 결속을 가져오기도 한다. 기업이 살아야 종업원도 산다는 인식을 같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부 결속을 통해 불황기를 오히려 경쟁사보다 강한 체질로 바꾸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최근 한 경제연구소 조사에서 우리 CEO들이 불황 극복에 도움이 되는 사자성어로 '줄탁동시(口卒啄同時)'를 꼽은 것은 그런 점에서 매우 의미심장하다. 원래 병아리가 바깥으로 나오기 위해 안에서 '톡톡' 쪼면, 어미 닭이 때를 알고 밖에서 '탁탁' 찍어 깨뜨려 준다는 의미인데, 기업이 불황을 극복하려면 노사가 합심하고 협력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한 가지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경영자는 불황기 파고를 넘기 위해 장기적 성장 동력을 까먹는 일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는 점이다. 즉, 회사의 비전과 핵심가치 준수, 정도(正道) 경영, 종업원에 대한 신뢰 및 고객과의 약속, 교육과 핵심 인재에 대한 투자, 브랜드와 품질 같은 무형자산에 대한 투자 등은 제 아무리 불황기라도 반드시 지켜낼 수 있는 뚝심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경영자는 교육 예산을 2배로 늘려야 한다. 특히 불황기에는 이를 4배로 늘려야 한다"는 톰 피터스의 지적을 결코 가벼이 보아 넘겨서는 안 된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이번 경기 침체기가 끝나는 시점에서 많은 경영자들이 영웅으로 떠오를 것으로 믿는다. 미래의 영웅들에게 기대와 함께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