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이야기

예견된 미국 자동차 산업의 몰락

럭키홍 2008. 11. 25. 17:39

                                       예견된 미국 자동차산업의 몰락
미국 자동차 ‘빅3’(GM·포드·크라이슬러)의 고용인원은 24만여명이고 부품업체를 포함해 직·간접 연관산업까지 포함하면 고용인원은 300만명에 이른다.

포천지 선정 세계 500대 기업 중 4위(GM)와 7위(포드)에 랭크돼 있고, 연간 매출규모도 500조 원(작년 기준)에 달하는 글로벌 기업들이지만 정부 구제금융이 제공되지 않을 경우 파산이 시간문제인 게 미국 자동차산업의 현주소다.

과거 GM 혼자서만 50%를 넘었던 미국 내 시장 점유율이 지금은 빅3를 합쳐도 50%가 안 되며, 2004년 이후 GM의 누적 적자만 700억 달러(100조원)가 넘어섰고, 장기 부채도 320억 달러(45조 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신용등급은 바닥으로 추락한지 오래고, 주식 가치도 사실상 ‘휴지 조각’으로 평가된다.

빅3가 파산위기에 처한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수년 전부터 적자가 시작된 이후 계속된 소비자 신뢰 하락으로 적자행진과 판매부진이 이어진 상황에서 지난 9월 닥친 금융위기는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판매급감을 초래해 자동차업계에도 직격탄이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자동차 종주국인 미국에서 빅3가 이처럼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된 원인은 외제차와 맞설 수 있는 기술개발 등 경쟁력 제고 대신 시대 변화를 읽지 못한 채 현실에 안주한 전략적 실수와 리더십 부재가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다시 말해 자동차 연비를 향상시키는 적극적인 기술개발보다는 연비 개선 법안을 막기 위한 안이한 의회 로비에 신경썼고, 주력 제품인 SUV와 픽업트럭 등 대형차 사업부문의 이익을 내는 데 안주해 시장 변화를 외면했고, 강성 노조에 밀려 퇴직자나 해고자에게 과도한 혜택을 주는 등 적자를 내면서도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해 몰락을 가속화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빅3의 시장 점유율 추락 원인은 에너지 절약형 자동차 개발을 외면하다가 고유가로 타격을 받은 데 있다.

미국자동차연구센터의 한 연구원도 미국 자동차 산업의 위기가 대형차를 고집한 전략의 잘못 때문이고 해결책으로 미국 자동차업체들이 시급히 연료 절감형 소형차 생산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 자동차를 사지 않는 이유는 품질은 떨어지고, 연비도 높은 데다가 소비자 기호마저 무시하기 때문이며 90년대 SUV 붐으로 번 수익을 고효율 자동차 개발에 충분히 투자했다면 오늘날의 국가적 망신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자성론이 전문가들로부터 나오고 있다.

그동안 세계 주요 자동차 선진국들의 기술개발 동향을 요약해보면 유럽은 고성능 디젤엔진 개발에 주력했고, 일본은 디젤엔진 기술은 취약하고 기존의 가솔린엔진은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대체동력원인 하이브리드 자동차 개발에 주력했다. 미국은 그동안 풍요로운 석유자원 여건으로 고효율 동력시스템 개발에 소홀하다가 기후변화협약시대로 접어들면서 클린턴 정부 시절에 그나마 차세대 고효율자동차 개발 국책사업을 추진했으나 이미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주도권을 놓친 상태였다.

정권이 바뀌어 부시 정부가 들어서면서 유엔기후변화협약 탈퇴라는 소극적인 자세로 상업화가 불확실한 수소연료전지 자동차 개발로 방향을 돌려 자동차 종주국의 위상 탈환을 시도했으나 시장이 요구하는 고효율 자동차 개발에는 소홀히 해 미국 소비자들로부터 외면을 당하면서 자동차산업의 침체를 초래했다. 부시 정부가 연임되면서 미국 내 거대 가솔린 자동차시장을 겨낭해 가솔린 첨가제인 옥수수 바이오 에탄올 정책으로 변신해 회복을 시도했지만 그 또한 세계 식량 위기와 환경파괴 역풍으로 사면초가에 몰려 있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서 많은 전문가들의 반대도 있었지만 무시됐고 결론적으로 부시 정부의 자동차정책 역시 시대 변화를 읽지 못한 채 현실에 안주한 전략적 실수에다가 여러 외부요인이 얽히면서 비참한 실패로 막을 내리고 있다.

자동차 문화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자동차산업은 전후방 관련 효과가 크기 때문에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인이 지칭한 것처럼 경제의 척추(backbone)이므로 정부가 적극적으로 빅3 구제에 나설 가능성이 크지만 반대도 만만치 않다. 문자 그대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됐다.

지금 세계 자동차업계는 사느냐 죽느냐 생존 경쟁 중이다. 한국 자동차업계도 혼돈의 시대를 넘기기 어려울 것이므로 미국의 위기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우리 실정에 맞는 올바른 정책을 설정해야 한다. <정동수 한국과학재단 국책연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