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도덕경에 압축된 통치철학 사람의 마음을 빼앗는 놀라운 힘
촉한의 유비에게는 조자룡(조운)이란 장수가 있었다. 도원결의를 맺은 관우나 장비와 달리 조자룡은 잠시 유비에게 의탁만 하고 있었다. 유비는 조자룡을 탐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눈치만 봤다. 때를 기다리던 유비에게 마침내 기회가 왔다.
조조의 백만 대군이 유비를 압박했을 때 그는 조자룡에게 2명의 부인과 아들 아두(阿斗)의 안위를 부탁했다. 불행히도 조자룡은 난전 중에 부인 한 명을 지키지 못하고 간신히 아들만 보호할 수 있었다. 그는 갑옷 위에서 새근새근 잠든 유비의 아들을 건네주며 벌을 청했다. 바로 이때 기막힌 반전이 일어났다. 유비는 아들을 건네받자마자 땅바닥에 던져버렸다.
“이까짓 어린 자식 하나 때문에 하마터면 나의 큰 장수를 잃을 뻔했구나!”
조자룡은 황망히 허리를 굽히고 팽개쳐져 우는 유비의 아들을 끌어안고 절규했다. “제가 이제 간뇌도지(肝腦塗地·간과 뇌를 땅바닥에 쏟다)하더라도 주공의 은혜에 보답할 수 없을 것입니다.”<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이때 조자룡은 유비가 나중에 황제가 될 맏아들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당연히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유비를 위해 살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 사람의 마음을 얻는 덕(德)
우리는 여기서 단순히 아름답고 흐뭇한 장면에만 취해 있어서는 안 된다. 대신 유비가 어떻게 조자룡의 마음을 얻었는지 철학적으로 숙고해야 한다. 제대로 된 답을 찾을 수만 있다면 동양 통치술의 핵심을 발견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유비의 자(현덕·玄德)에 들어 있는 덕(德)이란 개념이다. 사실 이 개념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한비자는 “덕(德)은 득(得)이다”라고 규정했다. 덕은 단순히 도덕적 품성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는 말이다. 물론 여기서 얻는 대상은 ‘사람’이다. 통치자의 덕은 탁월한 신하를 얻을 수 있는 능력이고, 스승의 덕은 탁월한 제자를 얻을 수 있는 능력이다.
덕은 무력이나 재력과는 다른 능력이다. 무력이나 재력으로는 몸을 잡아둘 수 있을 뿐, 마음을 얻기는 어렵다. 하지만 덕은 마음까지 얻을 수 있는 능력이다. 그래서 덕(德)이라는 글자는 ‘얻을 득(得)’과 ‘마음 심(心)’이 합쳐진 형상이다.
○ 빼앗으려면 먼저 줘라
그렇다면 유비는 도대체 어디에서 덕이 가진 놀라운 힘을 배웠던 것일까. 바로 노자의 ‘도덕경’에서였다. 도덕경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빼앗으려고 한다면 반드시 먼저 주어야 한다. 이것을 ‘은미한 밝음(微明)’이라고 말한다. 유연하고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는 법이다.”
이는 노자의 통치술이 압축돼 있는 구절이다. 특히 ‘빼앗으려고 한다면 반드시 먼저 주어야만 한다’는 말이 중요하다. 이제 명확해진다. 아두를 땅바닥에 던질 때, 유비는 바로 이 교훈을 실천했다. 자신의 아들보다 더 총애한다는 마음을 주었기 때문에 유비는 조자룡의 마음을 빼앗을 수 있었다.
하지만 유비는 조자룡의 마음을 빼앗으려는 목적으로 아들을 던졌다는 사실을 그에게 보여선 안 되었다. 조자룡이 자연스러운 애정으로 생각하도록 유도해야 했다. 만약 이를 눈치 챘다면 조자룡은 자신을 얻으려는 유비의 속내를 혐오했을 수도 있다.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 아들까지 내던지는 무서운 군주라고 생각했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이제 유비의 자가 왜 현덕이었는지 분명해진다. 현(玄)은 어둠을 상징한다. 이는 덕으로 마음을 얻으려는 사람에게 자신의 속내를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노자의 가르침을 의미한다. 상대방의 마음을 얻기 위해 무엇인가를 주는 자신의 속내를 보여서는 안 된다는 노자의 가르침을 유비는 한시도 잊지 않았다. 동양의 통치술은 노자의 ‘은미하지만 밝은 덕’으로 요약할 수 있다.
강신주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객원연구원 contingent@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