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태극기

럭키홍 2010. 3. 9. 09:50

 

             태극기

                                 김주현<독립기념관장>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우리 국민들 누구나 잘 아는 유치환 시인의 시 ‘깃발’에 나오는 귀절이다.

사실 깃발처럼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것도 별로 없다. 푸른 창공에 펄럭이는 깃발을 보고 있노라면 박동하는 힘찬 생명력과 영원과 무한에 대한 순수한 동경에 불현듯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군대에는 군기가 있고 회사에는 사기가 있고, 각 지역이나 민간단체들도 나름대로 그 조직을 대표하는 깃발을 만들어 소중하게 다루고 있다.

깃발 중 대표적인 것은 무어니 무어니 해도 국가를 상징하는 국기이다. 나라마다 여러 가지 의미를 담은 국기를 만들어 국민들의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이끌어 내는 구심점으로 삼고, 대외적으로는 국가이미지를 고양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성조기는 미국내 50개 주를 상징하는 별 50개와 미국 독립 당시의 13개 주를 나타내는 13개 줄로 구성되어 있다. 건국의 기억을 잊지 않는 것이다. 젊은 시절 미국 유학을 갔을 때 국기가 햄버거집이나 피자집에도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신기해 했던 기억이 난다. 다민족 국가인 만큼 국민들의 국가에 대한 사랑을 이끌어내기 위한 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영국의 국기 ‘유니언 잭’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를 상징하는 십자가를 조합한 것이다. 국민적 단합을 위한 것이지만 지금도 북아일랜드의 독립운동으로 시끄러우니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한때는 세계를 제패한 대영제국의 깃발로 5대양 육대주를 누비고 다녔다. 프랑스의 삼색기는 1789년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난 후 시민혁명정신인 자유(파랑), 평등(하양), 박애(빨강)를 상징하는 세 가지 색으로 구성되었다.

일본의 국기인 일장기는 의외로 그 기원이 지금의 오키나와인 류쿠왕국의 무역선박의 깃발에서 유래한다. 16세기 사쓰마번에서 류큐왕국을 침략한 후 자기들의 선박표지로 사용하다가 메이지시대에 일본의 국기로 채택된 것이다. 볼 때마다 우리의 아픈 기억을 일깨우는 일장기는 시작부터 침략의 역사를 담고 있다.

그럼 우리의 태극기는? 잘 아는 바와 같이 태극기는 흰색 바탕에 가운데 태극 문양과 네 모서리의 ‘건·곤·감·리’ 4괘로 구성되어 있다. 흰색 바탕은 밝음과 순수, 그리고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의 민족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태극 문양은 음양의 조화를 상징하는 것이고, 4괘 중 건괘는 하늘을, 곤괘는 땅을, 감괘는 물을, 리괘는 불을 상징하는 것으로 태극을 중심으로 통일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태극기를 사용한 것은 1882년 5월 조미수호통상조약 조인식 때가 처음이다. 조인식장에 국가를 대표하는 국기를 게양할 필요성을 느껴 급히 만든 것이다. 그리고 국가의 공인을 받은 태극기는 같은 해 9월 박영효가 고종의 명을 받아 특명전권대신 겸 수신사로 일본에 가던 중 선상에서 만든 것이 최초이다.

그러나 국기제작방법이 법제화되지 않은 탓에 이후 다양한 형태의 태극기가 사용되었다. 독립기념관에 근무하다 보면 가끔 관람객들로부터 항의를 받는 경우가 있다. 태극기의 태극 문양이라든지, 게양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것 등이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태극기는 대한민국 정부수립이후 1949년 10월 제정된 국기제작법에 의한 것이라 전에는 통일된 형태의 태극기가 없었음을 설명드리면 오해가 풀린다.

형태야 어떻게 됐든 태극기는 처음 만들어진 이후 우리민족과 기쁨과 슬픔을 같이했다. 태극기는 국권회복을 위해 싸우던 의병들이나, 만주벌판을 달리던 독립군들과 함께 전장을 누볐다. 3·1운동이 일어났을 때에는 한반도에서, 만주에서, 연해주에서, 미주에서 2000만 겨레의 손에 손에 들려 조국의 자주 독립을 위한 만세함성에 동참하였다.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에도, 광복군이 창군될 때에도 태극기는 자리를 함께하였다. 광복의 기쁨과 함께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을 때, 6·25 전쟁으로 빼앗겼던 서울을 수복했을 때에도 맨 처음 한 일은 중앙청 위에 태극기를 게양하는 것이었다.

과거 태극기는 기쁨보다는 나라 잃은 아픔과 저항의 상징이었던 적이 더 많았다. 그러나 이번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모태범에서부터 김연아까지, 선수들과 국민들이 함께 힘차게 휘두른 태극기는 승리의 기쁨을 나누고, 세계 속에 우뚝 선 대한민국의 위상을 가늠하는 징표가 되었다.

며칠전 3·1절을 맞아 곳곳에 태극기가 게양되었다. 이제 태극기는 존엄의 상징이면서도 우리와 생활을 함께하는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