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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百家爭鳴

럭키홍 2010. 3. 9. 09:59

                

            세종시 百家爭鳴

동양 최고의 사상가 공자는 당대에 뜻을 펴지 못했다. 제자들을 이끌고 천하를 돌아다녔지만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했다. 난세에 인(仁)을 실천하려고 노력했지만 세상이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결과론적이지만 춘추시대는 공자의 철학과 이상이 통하지 않았다.

삼국지 해설가로 유명한 이중톈은 공자 당대에 이미 실인(失仁), 즉 인을 상실한 시대가 왔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그래서 공자의 철학을 이어받은 맹자는 의(義)를 전면에 내세웠다. 인을 잃게 되니 의로서 세상을 이끌어 가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정의와 의리로 똘똘 뭉친 맹자는 의를 실천하며 공자의 사상을 더욱 빛나게 했던 인물이다.

전국시대 말엽으로 넘어오자 맹자의 주장도 더 이상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이번에는 의를 상실하게 되는 실의(失義)의 시대가 왔다. 순자시대로 와서는 급기야 의도 잃게 되고 예(禮)가 나왔다. 공자는 인을, 맹자는 의를 강조했는데 순자는 예를 말해야 할 지경이 됐다.

순자가 탄생한 기원전 313년은 초나라 회왕(懷王)이 신의를 헌신짝처럼 버린 해이다. 초나라가 진나라와 연합하더니 제나라와의 동맹까지 깨고 반기를 들은 것이다. 전국시대 말엽에는 서로 속고 속이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의리를 저버리는 일이 비일 비재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도덕과 신의는 무의미하게 됐다. 누가 누구를 믿을 수 없는 세상에 도덕이나 인의를 이야기 한다는 것 자체가 우습게 됐다. 그래서 순자의 제자인 한비는 예가 아닌 법(法)을 꺼내 들었던 것이다.

이제 와서 춘추전국시대의 유가, 도가, 법가의 사상이나 철학을 듣자는 것은 아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세상이 어지러울 수록 도덕의 함량(含量)이 떨어졌다. 그만큼 거짓이 진실로 둔갑할 가능성도 많다는 얘기다. 도가 안되니 덕이 나오고, 덕으로 어려우니 인이 나왔다. 또 인이 어려우니 의가 나오고, 의가 어려우니 예가 나오고 급기야 법이 나오지 않았는가.

세종시 문제도 좀더 철학적인 관점에서 봐야 할 것 같다. 세종시 수정안과 관련한 한나라당의 끝장 토론을 보니 시계(視界)가 어지럽던 전국시대로 돌아가는 듯 하다. 온갖 터무니 없는 주장과 학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듣고 있자니 누가 옳고 그른지 판단이 서지 않을 정도다.

약속을 뒤집은 쪽이 오히려 양심으로 포장하고 있고 백년대계(百年大計)를 거론한다. 심지어 국민과의 약속이 미생지신(尾生之信)에 비유되는 세상이 됐다. 세종시가 원안대로 건설되면 나라가 망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은 얘기다. 아무리 자기 학설이나 주장을 자유롭게 발표할 수 있다지만 역설(逆說)이 난무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인(仁)과 의(義)가 자취를 감추어 가던 춘추전국시대나 작금의 현실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은현탁 사회부장 eun@daejonilbo.com -대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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