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사 석가탑/다보탑 釋迦塔 多寶塔
참고 : 사찰 100美 100選 (상, 하)/허균 / 불교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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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 : 석가탑 / 다보탑 釋迦塔 多寶塔
불국사는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에 김대성의 발원으로 창건된 사찰로,
이 이름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불국사는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제불三世諸佛이 상주하는 불국정토를 이 땅에 구현하려 했던 신라인의 정신세계가 이룩한 절이다.
불국정토의 한 영역인 대웅전 앞마당에 동서로 다보탑과 석가탑이 단아하면서도 근엄한 모습으로 우뚝 서있는데,
석가탑은 우리나라 일반형 석탑을, 다보탑은 특수형 탑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두 탑은 [영산회상]에서의 <석가여래 상주설법釋迦如來 常住說法>과
<다보여래 상주증명多寶如來 常住證明>의 장면을 환상적 수법으로 상징화한 탑인 것이다.
즉 두 탑을 같은 위치에 세운 이유는 [과거의 부처]인 다보불多寶佛이
석가탑 주변에는 정사각형의 탑 둘레에 여덟 개의 연꽃문양이 배치되어 있다.
이 연화좌는 석가여래가 영축산에서 설법할 때 한량없는 부처들이 8방에서 찾아와 석존 주위에 둘러앉았다는
법화경 내용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상륜부의 앙화 네 모서리에 있는 주악비천상과 네 변의 공양비천상도 석가탑의 상징성과 관련이 있다.
두 탑과 관련된 경전 내용 :〈묘법연화경 견보탑품見寶塔品>에,
< 착하고 착하시도다 석가모니 세존이시여.
평등한 큰 지혜로 보살을 가르치는 법이며
부처를 옹호하시는 묘법연화경을
많은 중생들을 위해 설하심이 이러하시도다.
석가세존께서 하시는 말씀은 다 진실이로다. >
그 때 사부의 대중은 큰 보배 탑이 머물러 있는 곳을 보았고, 탑 가운데서 나오는 음성을 듣고 모두 법의 기쁨을 얻었다.
청중들은 일찍이 없었던 터라 이상하게 생각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공경하며 합장하고 한쪽에 물러나 머물렀다.
그 때 보살마하살이 있었으니 이름은 대요설이었다.
일체 세간의 하늘 인간 아수라들이 마음에 의심하는 것을 알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 세존이시여 어떤 인연으로 이 보탑寶塔이 땅에서 솟아 나와 있으며, 또 그 가운데서 이런 음성이 나오나이까?>
이 때 석가여래는 대요설 보살에게 말했다.
< 이 보탑 가운데는 여래의 전신이 계시니 저 먼 과거 동방으로 한량없는 천만 억의 아승지 세계를 지나서 나라가 있었느니라.
나라 이름은 보정寶淨이요, 그 곳에 부처님이 계시었으니 이름이 다보多寶이니라.
그 부처님께서 보살도를 행할 때 큰 서원을 세우기를
[만일 내가 부처를 이루어 멸도한 후에 시방 국토에서 법화경을 말하는 곳이 있으면
이 경을 듣기 위하여 나의 탑묘가 그 앞에 솟아나서 그것을 증명하고 거룩하다고 찬탄하리라]고 하였느니라.>
다보여래는 동방보정세계東方寶淨世界의 교주이다.
다보여래는 석가모니 이전의 과거불로서, 영원히 살아 있는 본체로서의 부처인 법신불이다.
보살로 있을 때에 내가 성불하여 멸도한 뒤에
시방 세계에서 법화경을 설하는 곳에는 나의 보탑이 솟아 나와 그 설법을 증명하리라 하고 서원 했던 것이다.
과연 석가여래가 영산靈山에서 법화경을 설할 때 땅속에서 다보여래의 탑이 솟아났고,
그 탑 가운데서 소리가 나와 석가여래의 설법이 참이라고 증명하였던 것이다.
석가탑 주위에는 여덟 송이의 연꽃을 조각한 탑구塔區가 있다.
이것을 팔방금강좌八方金剛座, 또는 8보살의 정좌라고도 하고, 또는 석탑에 직접 조각하는 팔부신중八部神衆을 지면에 표현한 것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묘법연화경>>의 견보탑품에서는,
석가여래가 불법을 설할 때 시방의 모든 부처들이 모여들었는데, 그 때의 상황을 경은 이렇게 묘사하였다.
[ 그 때 동방의 석가모니불의 분신인 백 천 만억 나유타의 항하 모래 수 같은 국토에 있던 여러 부처님들이 각각 설법을 들으려고 모였는데,
이와 같이 차례 차례로 8방에 앉으시니, 그 때 모든 방위의 4백 만억 나유타 국토는 여러 부처님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석가탑 주변 8방에 장식된 여덟 개 연꽃은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앉은 여러 부처님의 연화좌蓮華座를 상징한다.
탑의 원래 이름은 <석가여래상주설법탑釋迦如來常住設法塔>으로 <석가탑>이라고 줄여서 부른다.
석가모니 부처님과 부처님의 교화를 상징하는 탑으로 높이는 8m 20㎝이다.
이전에 세워진 감은사지삼층석탑의 형태를 이어받은 우리나라 3층 석탑의 전형적인 석탑양식을 취하고 있다.
탑의 주위에 배치되어 있는 여덟 개의 연꽃(팔방금강좌)과 회랑은 이 곳이 성역임을 나타낸다.
탑 안에서 발견된 세계 최초의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등 70 여점의 문화재는 일괄해서 국보 제126호로 지정되어 있다.
@ 무구정광대다라니경 : 국보 제126호
현재까지 알려진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본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8세기중엽에 간행된 것으로,
너비 약 8㎝, 전체길이 약 620㎝ 되는 곳에 1행 8∼9자의 다라니경문을 두루마리 형식으로 적어놓은 것이다.
발견 당시 부식되고 산화되어 결실된 부분이 있었는데 20여 년 사이 더욱 심해져 1988년에서 1989년 사이 대대적으로 수리 보강하였다.
불경이 봉안된 석가탑은 751년 불국사가 중창될 때 세워졌으므로, 이 경은 그 무렵 간행된 것으로 인정된다.
또한 본문 가운데 중국 당나라 측천무후의 집권 당시만 썼던 글자들이 발견되어, 간행연대를 추정할 수 있게 해준다.
@ 아사달과 아사녀 -------------
석가탑의 정식 명칭은 불국사 삼층석탑으로, 무영탑無影塔이라고 한다.
이것은 이 탑을 만든 것으로 전해지는 아사달의 애틋한 사랑이야기 때문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아사달은 황룡사 구층탑을 완성한 아비지의 후손이다.
석가탑을 창건할 때 김대성은 당시 가장 뛰어난 석공이라 알려진 백제의 후손 아사달을 불렀다.
아사달이 탑에 온 정성을 기울이는 동안 한 해 두 해가 흘렀다.
아사달의 부인 아사녀는 남편 일이 하루빨리 성취되어 기쁘게 만날 날만을 고대하며 그리움을 달래
다 못해 불국사로 찾아왔으나탑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여자를 들일 수 없다는 금기 때문에 남편을 만나지 못 했다.
천리 길을 달려온 아사녀는 남편을 만나려는 뜻을 포기할 수 없어 날마다 불국사문 앞을 서성거리며 먼발치로 나마 남편을 보고 싶어했다.
이를 보다 못한 스님이 꾀를 내었다.
<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그마한 못이 있으니,
지성으로 빈다면 탑과 남편의 그림자가 못에 비칠 것이오. >
다음 날부터 아사녀는 온종일 못을 들여다보며 탑의 그림자가 비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무심한 수면에는 탑의 그림자가 떠오르질 않았다.
상심한 아사녀는 고향으로 되돌아갈 기력조차 잃고, 물 속에 비치는 환상의 탑 그림자를 보고
남편의 이름을 부르며 못에 몸을 던지고 말았다.
탑을 완성한 아사달이 아내의 소식을 듣고 그 못으로 달려갔으나 아내의 모습은 없었다.
아내를 그리워하며 못 주변을 방황하고 있는 아사달의 눈에 아내의 모습이 홀연히 앞산의 바윗돌에 겹쳐져 보였다.
웃는 듯하다가 사라지고 또 웃는 모습은 인자한 부처님의 모습이 되기도 하였다.
아사달은 그 바위에 아내의 모습을 새기기 시작하였다.
조각을 마친 아사달의 뒷 얘기는 전해진 바 없다고 한다.
후대의 사람들은 이 못을 <영지影池>라 부르고,
끝내 그림자를 비추지 않은 석가탑을 <무영탑無影塔>이라 하였다.
# 다보탑 多寶塔 : 국보 제20호.
석가모니 부처님의 설법을 찬탄하는 다보부처님多寶佛을 상징하는 탑이다.
<과거의 부처님>인 다보부처님이 <현재의 부처님>인 석가모니 부처님께 설법할 때
옆에서 옳다고 증명한다는 <<법화경>>의 내용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석가탑 옆에 세웠다고 한다.
석가탑은 2층의 기단基壇 위에 세운 3층탑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지만,
다보탑은 그 층수를 헤아리기가 어렵다.
십十자 모양의 평면을 하고 있는 기단은 사방에 돌계단을 마련하고,
8각형의 탑신은 그 주위로 네모난 난간을 돌렸다.
여기에 대나무마디 모양의 돌기둥, 16장의 연꽃무늬 등을 새겼는데,
돌을 깎아 세운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솜씨가 훌륭하다.
목조건축의 복잡한 구조를 참신한 발상을 통해 산만하지 않게 표현한 뛰어난 작품으로,
4각, 8각, 원을 한 탑에서 짜임새 있게 구성한 점,
각 부분의 길이 · 너비 · 두께를 일정하게 통일시킨 점 등은 8세기 통일신라 미술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다보탑의 모양에 대해서 <<묘법연화경>〉은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 이때 부처님 앞에는 칠보의 탑이 있었는데, 그 높이가 5백 유순이며 사방 길이가 2백5십 유순이었다.
땅에서 솟아나서 공중에 머물고 있으며 가지 가지의 보물로 장엄하였으니
5천의 난간과 천만이나 되는 방과 수 없는 당번幢幡으로 장하게 꾸미었으며,
보배 영락을 드리우고 탑 위에는 만억의 보배 방울을 달았으며, 사면에서는 다마라발전단의 향기가 세계에 두루 차고
그 여러 번개幡蓋는 금.은.유리.자거.마뇌.진주.매괴 등의 일곱 가지 보배로 이루어져 그 높이는 사천왕의 궁궐까지 이르렀다.>
경에서 다보탑은 [5천의 난간과 천만이나 되는 방과 수 없는 당번幢幡으로 장엄하게 꾸몄으며…]라고 하였는데,
이 내용을 염두에 두면서 다보탑의 구조를 살펴보면,
현재 계단의 아래쪽에는 유구遺構로 보이는 돌기둥만 남아 있지만 네 방향에 조성되어 있는 계단에는 원래 난간이 있었다.
그리고 일층 옥개석에 해당하는 얇은 석판 위에 두 줄로 된 난간이 있고, 또 그 위에도 8각형의 난간이 둘러쳐져 있다.
현재 남아있는 난간은 세 군데에 불과하지만 이것은 경전에서 말한 5천의 난간을 상징한 것으로 보인다.
@ 1925년경에 일본인들이 탑을 완전히 해체, 보수하였는데, 이에 관한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
또한 탑 속에 두었을 사리와 사리장치, 그 밖의 유물들이 이 과정에서 모두 사라져버려 그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기단의 돌계단 위에 놓여있던 네 마리의 돌사자가 있었는데, 한 마리만 남아 있다.
그 가운데 보존상태가 가장 좋았을 듯한 3마리가 일제에 의해 약탈되어, 이를 되찾기 위한 노력이 오래 전부터 있었으나
아직까지 그 행방을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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