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기술 이야기

초콜릿도 혈관도 비행기도… '3D 프린터(입체 분사방식)'로 찍어낸다

럭키홍 2011. 12. 1. 12:25

              초콜릿도 혈관도 비행기도… '3D 프린터(입체 분사방식)'로 찍어낸다

                                                                                      -  입력 : 2011.12.01 03:17 / 수정 : 2011.12.01 03:32 -

"20세기 대량생산 방식 대체하는 제조업 혁명"
고분자물질·금속 가루를 잉크처럼 뿌려 제품 완성, 무인기 7일만에 제작 가능
20년內 가정서 식품 찍어내고 수술실서 뼈·혈관 바로 이식

지난달 11일 독일 하노버에서 열린 국제 생명공학 전시회에서는 프라운호퍼 연구소가 출품한 작은 혈관 하나가 사람들의 큰 관심을 모았다. 세계 최초로 3D(3차원) 프린터로 만든 혈관이었다. 잉크젯 프린터로 잉크 방울을 뿌려 글씨를 만들듯, 연구진은 프린터 노즐에서 플라스틱의 일종인 고분자물질을 뿌려 층층이 쌓았다. 여기에 전자 빔을 쏘아 굳히면 실제 혈관과 같은 탄력을 가진 인공 혈관이 만들어졌다. 간단히 말해 입체 분사방식이다.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바로바로 찍어내는 '3D 프린팅(3차원 인쇄)'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적용 대상도 초콜릿이나 기계부품, 생체조직 같은 작은 크기에서 비행기, 건축물 같은 대형 구조물까지 다양하다. 영국 BBC방송은 "3D 프린팅은 20세기의 대량생산 방식을 대체하는 새로운 맞춤형 생산 혁명을 가져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프린터로 찍어내는 비행기

3D 프린팅은 일종의 잉크젯 프린터에서 잉크 대신 플라스틱과 같은 고분자 물질이나 금속 가루를 뿜어내는 기술이다.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 건물을 만들듯, 3D 프린터는 미리 입력된 입체 설계도에 맞춰 재료를 뿌리면서 층층이 쌓는다. 자외선이나 레이저, 전자 빔을 쏘면 재료들이 서로 달라붙어 굳는다. 1984년 미국에서 처음 개발된 이래 주로 모형 제작에 쓰이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최종 완성품을 3D 프린팅으로 만드는 일이 급속히 늘고 있다.

지난 7월 말 영국 사우스햄튼대 연구진은 3D 프린터로 '찍어낸' 최초의 무인비행기 '설사(SULSA)'의 비행시험에 성공했다. 날개 길이가 1.5m이고, 배터리와 전기 모터로 가동되는 설사는 최고 시속 160㎞로 날았다. 동체와 날개 재료는 나일론 분말이었다.

3D 프린팅 기술은 식품에서부터 건축, 항공산업 등 다양한 산업에 적용되고 있다. 맨 왼쪽부터 초콜릿 모양을 마음대로 만들 수 있는 3D 프린터, 3D 프린터로 만든 콘크리트 의자, 나일론 재질의 무인 항공기. /엑시터대·러프브러대·사우스햄튼대 제공
설사 제작에는 설계에 이틀, 인쇄에 닷새밖에 걸리지 않았다. 사우스햄튼대 연구진은 "3D 프린팅은 맞춤형 무인기 생산에 바로 적용될 것"이라며 "컴퓨터로 기본 설계도를 10분만 수정하면 바로 농약살포용·정찰용·자외선촬영용 등 다양한 무인기를 찍어낼 수 있다"고 밝혔다.

대형 항공기도 3D 프린팅이 가능하다. 에어버스(Airbus)의 계열사인 EADS는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Concord)'를 만들었던 공장에서 3D 프린팅으로 실제 여객기 날개와 부품을 만드는 연구를 하고 있다.

항공기 날개는 작은 알루미늄 합금판을 이어 붙여 만든다. 시간이 많이 걸릴 뿐 아니라 가공도 힘들다. 하지만 3D프린팅 기술을 이용하면 아무리 복잡한 구조의 날개라도 이음매 없이 한 번에 찍어낼 수 있다. 각지에 부품 창고를 유지할 필요도 없고, 값비싼 재료를 깎아 버리는 낭비도 크게 줄일 수 있다.

티타늄·콘크리트… 잉크도 다양

'잉크'도 다양해지고 있다. EADS는 금속인 티타늄 분말을 3D 프린터의 잉크로 삼아 기존 제품과 강도에서 아무런 차이가 없는 항공기 부품을 만들었다. 영국 러프브러대 연구진은 3층 높이의 공장에서 콘크리트 잉크를 뿜어내 건물의 일부를 실제 크기로 만드는 3D 프린팅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스냅샷으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조선닷컴
올 2월 미국 코넬대 연구진은 컴퓨터에 입력된 요리법에 따라 주사기 모양의 잉크 분사구로 쿠키 반죽 등을 뿜어내는 3D 프린터를 발표했다. 영국 엑시터대 연구진은 초콜릿 제조용 3D 프린터를 발표했다.

코넬대의 호드 립슨(Lipson) 교수는 미 화학회가 발행하는 '화학과 공학 뉴스(C&EN)'지 11월호에서 "개인용 컴퓨터가 게임을 통해 확산됐듯, 식품은 3D 프린팅을 보급시킬 '킬러 앱(killer app, 특정 제품을 성공시키는 결정적인 기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자가 원하는 초콜릿 모양을 인터넷에 올리면 식품회사가 프린터로 찍어내 배달하거나, 유명 요리사의 요리나 의사가 처방한 환자용 식단을 손쉽게 가정에서 찍어내는 일도 3D 프린팅으로 가능하다.

10년 후 시장규모 4배로 성장 예상

컨설팅회사인 홀러스 어소시에이츠는 3D프린팅 시장이 지난해 13억달러(1조5000억원)에서 오는 2020년에는 52억달러(6조원)로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 3D 프린팅 시장에서 최종 완성품이 차지하는 비율은 20%에 그치지만 2020년엔 50%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코넬대의 립슨 교수는 "20년 내 가정에서 식품과 일상 용품을 찍어내고 병원 수술실에서 뼈와 혈관을 찍어내 바로 이식할 수 있을 것"이라며 "40년 후엔 손자들에게 3D 프린팅 없이 어떻게 살았는지 설명하기 어려워질지 모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