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이야기

스티브 잡스와 정주영 회장- 고령교 복구 공사

럭키홍 2009. 2. 13. 16:59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기업가 정신’의 표상이다. 태어나자마자 입양되는 등 불우한 가정환경 속에서 자라나 대학 졸업장도 쥐지 못한 채 세상에 뛰어든 그는 몸에 밴 혁신적 사고를 통해 창조적 경영이 무엇인지 전 세계에 보여주고 있다. 스티브 잡스의 삶이 극적인 것은 그가 최악의 상황들을 극복하고 새로운 결실들을 맺어냈기 때문이다.

애플컴퓨터와 매킨토시로 대성공을 거뒀지만, 잡스의 독주를 두려워한 애플의 대주주들은 1985년 그를 경영 일선에서 쫓아내버렸다. 그는 결국 몇몇 애플 직원들과 함께 넥스트스텝(NextStep)이라는 새로운 회사를 세운다. 넥스트스텝이 인수한 픽사는 <토이 스토리>로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반면 만성 적자에 시달리던 애플사는 1996년 스티브 잡스를 다시 최고경영자로 복귀시키기에 이르렀다. 스티브잡스의 진가는 불과 1년 만에 빛을 발했다. 1997년 10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던 애플사는 iMac을 통해 이듬해 4억달러 가까운 흑자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에게는 항상 환희와 도전이 함께 찾아왔다. 승승장구하던 그는 2004년 종양이라는 죽음의 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또다시 부활했다. 수술 후 그는 애플 전 직원들에게 ‘저는 이 메일을 병원 침상에서 17인치 파워북 컴퓨터를 통해 보냅니다’라며 건재함을 알렸다. 이후 아이폰 개발 등 새로운 혁신을 지속해나갔다. 미국의 전반적인 IT 경기침체로 2007 회계연도 4분기의 야후 순이익은 64%나 감소했지만, 애플의 분기 순이익은 26%나 증가했다.

‘Stay Hungry, Stay Foolish!(항상 새로운 지식 앞에 배고파하고, 항상 바보가 돼라!)’ 그가 스탠포드대학에서 행했던 이 명연설은 현실에 안주하려는 젊은이들을 일깨워주고 있다.

시대와 공간을 달리하지만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 하나로 영국에서 현대중공업 창업 자금을 빌린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기업가 정신은 스티브 잡스의 정신과 상통한다. 정주영 회장은 특히 일자무식이었지만 ‘시장 신뢰’가 기업의 가장 중요한 근간이라는 것을 통찰하고 있었다. 쌀가게 사업으로 시작해 6·25전쟁 통에도 현대건설과 현대자동차공업사 등으로 도약을 거듭했던 그는 휴전협정이 조인된 1953년 대구~거창간 고령교 복구공사를 따냈다. 공기 26개월, 총 공사비 5478만환에 따낸 공사는 당시 정부 발주 공사로는 최대 규모였다. 그러나 극심한 낙동강의 수심 차이에다 장비 부족, 잦은 홍수 등으로 공사는 도무지 진척이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물가마저 폭등했다. 착공 당시 책정한 설계상의 기름 단가가 700환이었지만 공사가 끝날 무렵에는 4500환으로 뛰었다.

집이며 계열사 장비며 모든 자산을 팔아 공사비에 대느라 가족들이 모두 거리에 나앉게 됐다. 하지만 그는 중도 포기하자는 일부 측근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기업 하는 사람은 신용이 생명’이라며 끝까지 맡은 공사를 진행했다. 결국 그는 총 7000만환의 막대한 적자를 보고서야 완공할 수 있었다.

신용을 지키려 애쓴 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현대는 고령교 공사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이후 발주되는 정부공사들을 잇따라 수주하며 도약하게 됐다. 정주영은 특히 고령교 공사를 통해 ‘맨손으로는 호랑이를 때려잡지 못하고, 걸어서는 황하를 건너지 못한다(不敢暴虎 不敢憑河)’는 시경(詩經)의 교훈도 체득했다. 어떤 사업이든 충분한 장비와 정교한 플랜 없이 막무가내로 도전만 해서는 성공하지는 못한다는 교훈이었다.

최근 전 세계가 경제위기로 신음하고 있지만 어떤 어려움이 닥쳐온다 하더라도 스티브 잡스처럼 혁신으로 무장하고 있다면, 정주영처럼 벼랑 끝의 상황에서도 신용을 지키려 몸부림을 친다면 반드시 큰 결실을 맺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하고 있다. ‘창조적 도전’과 ‘시장 신뢰’는 오늘날 칠흑 같은 경제난을 헤쳐나갈 나침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