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이야기

"선진화"에 대한 어느 불만

럭키홍 2010. 2. 19. 18:16

선진국 꽁무니를 쫓아간다는 단어가 뭐 그리 좋습니까?" 한 고위 공무원이 어느 자리에서 농담처럼 던진 말이다. 정책 개선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되는 '선진화'라는 단어에 대해 그는 불만이 가득했다. "80년대도 아니고,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개최한다면서 말끝마다 선진화라는 건 이상하지 않습니까"로 이어졌다. 어느새 정색을 하고 있었다.

'선진화'는 경제 담당 기자들이 지겹게 만나는 단어다. 매일 쏟아지는 보도 자료의 단골 제목은 '무슨무슨 선진화'다. 공공기관도, 농어업도 선진화하게 되고, 이런저런 업종마다 선진화위원회라는 간판이 올려진다. 기획재정부가 한창 공을 들이고 있는 서비스산업 대책은 '서비스산업 선진화 대책'이다.

경제 부처만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발생한 부산 실내 사격장 사후 대책은 '안전제도 개선 및 의식 선진화 종합대책'이었다. 대한체육회는 경기단체 운영 선진화대책을 추진하고, 산불방지도 선진화 대상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취임 연설에서 산업화와 민주화 시대를 뛰어넘는 선진화 시대를 열어가자고 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엔 언론의 공무원 접촉을 차단하려고 하면서도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김영삼 정부가 1991년 발표한 7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92~96년)계획은 '경제사회 선진화와 민족통일을 지향한다'는 기본 목표를 내걸었다. 1988년 금융실명제 도입 발표는 '경제안정성장과 선진 화합 경제 추진대책'이었다. 더 거슬러 가면 전두환 전 대통령의 국정 목표 가운데 하나가 '선진조국 창조'였다.

'선진화'라는 용어는 30년 전 한국에는 어울리고, 필요한 단어였겠지만 지금은 어딘가 이상한 말이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인 나라에서 "우리는 후진적이라 선진화를 해야 한다"고 매일 노래를 부른다면 과연 합당한 일일까.

문제가 많은 시민의식과 준법(遵法)의식, 부정부패, 공사(公私) 혼동, 정실주의 등 우리가 후진적 요소를 여전히 안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각종 사회 시스템도 선진국 것을 배워야 하는 것이 많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어느 부분은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선진국 백인(白人)들의 잔치였던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우리가 금메달 둘, 은메달 둘을 땄다. 그러자 일본 언론이 "한국을 배우자"고 한다. 다른 나라가 한국 스포츠를 연구한다고 한다.

'선진화' 노래는 선진국은 다 좋다는 착각을 부를 수도 있다. 미국의 국가 부채(負債)는 국내 총생산의 90%에 육박한다. 영국도 비슷하고, 일본은 200%를 넘어선다. 30%대인 우리나라가 국가 부채 관리에 대해서 선진화를 한다는 건 이상한 말이 될 수밖에 없다. 세계 최고인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현대자동차를 분해해서 강점을 배우겠다고 팔을 걷어붙인다. 삼성전자는 세계 최대 전자회사가 됐다. 금융위기도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빨리 극복해가고 있다. 경제에서도 "한국을 배우자"는 말이 나오는 시대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교육도 한국에서 배워야 한다고 한다. 오바마는 원자력 정책에서도 한국을 배워야 할 대상으로 언급했다.

우리가 선진국이 됐다는 건 물론 아니다. 절대 자만해서도 안 된다. 다만 이제는 우리도 '선진국 따라 하기'가 모든 문제의 해답이 아닌 수준 정도는 됐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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