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산속 옹달샘(고전이야기)

계포일낙(季布一諾)

럭키홍 2011. 2. 18. 16:21

                       

                    계포일낙(季布一諾)

과학벨트 입지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일 신년방송좌담회에서 공약 백지화를 암시하는 발언을 한 뒤 충청도는 그야말로 벌집 쑤셔 놓은 형국이다.

충청권이 대통령 공약이행을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 16일 침묵으로 일관하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입을 열었다. “대통령이 약속한 일을 원점에서 재검토 하겠다고 하면 그에 대한 책임도 대통령이 지시겠다는 것 아니냐”는 짧은 내용이었다. 박 전 대표의 간결한 몇 마디에는 강력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과학벨트를 충청권에 입지하기로 약속한 만큼 지켜야 하는 게 정치인의 도리인데, 이를 지키지 않은 책임은 전적으로 대통령에게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박 전 대표의 발언을 듣고 갑자기 중국 초나라 때 계포라는 장군에 얽힌 ‘계포일낙(季布一諾)’이라는 고사성어가 떠올랐다. 이 말은 한 번 약속하면 반드시 지킨다는 뜻이다.

전해 내려오는 얘기인즉슨 이렇다. 초나라 때 계포라는 사람에게 계심과 장공이라는 두 동생이 있었는데 계심은 힘이 장사였고, 장공은 머리가 뛰어나 동네에서 동생들에 대한 칭찬이 대단했다. 하지만 계포는 두 동생에 비해 내세울 게 없는 평범함 그 자체였다.

계포는 비록 타고난 힘과 지혜는 없지만 나도 노력하면 남보다 나은 장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날 계포가 소리쳤다. “그렇다. 약속을 지키자. 이제부터 한 번 입 밖에 내어 약속한 것은 꼭 지키는 사람이 되자.”

그 뒤 계포는 아무리 사소한 약속이라도 승낙한 것은 끝까지 지키기로 마음 먹었고 실천했다. 한 번은 친구들이 “계포, 마을 앞에 있는 호수를 헤엄쳐 건널 수 있겠어”하고 묻자 계포는 당연히 건널 수 있다며 다음날 만나자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튿날 비바람이 몰아쳐 약속장소에 나온 사람은 계포 뿐이었다.

그날 저녁 계포를 찾던 친구들이 호숫가로 달려갔을 때 그는 비에 흠뻑 젖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그걸 목격한 친구들은 계포를 약속 잘 지키는 용감한 사람으로 여겼고, 그 이야기는 온 동네로 퍼졌다.

항우와 유방이 천하를 다툴 때 계포는 항우의 부장으로 싸웠다. 그러나 항우가 마지막 싸움에서 패하고 쫓기는 몸이 되자 유방은 현상금을 걸어 계포를 수배하고 그를 숨겨주는 사람이 있으면 삼족을 멸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를 아는 사람들은 누구 하나 고발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를 유방에게 천거하기까지 했다. 마침내 계포는 유방의 조정에서 벼슬을 하면서 의로운 일에 힘썼고 모든 이의 신임을 받게 되었다.

아마도 이날 박 전 대표가 과학벨트와 관련해 언급한 말들은 이 대통령에게 ‘계포일낙’의 참 의미를 알리기 위한 게 아닌가 싶다.

한경수 서울 정치부 차장 hkslka@daej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