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ㆍ주가로 본 한국재벌 흥망성쇠 반세기>
연합뉴스 | 곽세연 | 입력 2011.07.11 06:13
1960년대 이병철ㆍ정주영 각축…2000년대는 2세 대결
(서울=연합뉴스) 곽세연 기자 = 대한민국 부자들의 역사는 이병철-이건희ㆍ정주영-정몽구 부자(父子)의 라이벌 대결로 요약된다.
1960~1990년대에는 이병철 삼성 회장과, 정주영 현대 회장이 국세청 신고 소득액 기준으로 1~2위를 다퉜다. 2000년대 들어서는 이들로부터 주식을 증여ㆍ상속받은 아들 이건희, 정몽구 회장이 보유 주식 평가액을 놓고 선두 다툼을 벌이고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지분 가치는 지난 7일 기준으로 각각 8조6천769억원, 8조6천521억원으로 박빙의 승부를 펼치고 있다. 국내 증시 역사상 최초로 8조원대 고지에서 펼치는 용호상박인 셈이다.
연합뉴스가 11일 재벌닷컴에 의뢰해 1960년대 이후 한국 재벌의 순위를 매겨본 결과 무수한 기업이 명멸했으나 삼성과 현대 가문은 50여년 동안 부침이 종종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정상 자리를 놓고 맞수관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는 2000년대 전에는 국세청 연간 소득 신고액, 2000년 이후는 상장사 주식 가치를 기준으로 이뤄졌다.
◇ 1960∼1970년대 중반은 `군웅할거 시대'
개인들이 국세청에 신고한 연간 소득액(배당금과 이자 합산액)을 기준으로 보면 1960년대 최고 부자는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었다.
1960년 이 회장은 국세청에 2억8천만원을 벌었다고 신고했다. 그때까지 최고 재벌로 꼽히던 정재호 삼호그룹 회장(1억3천만원), 박흥식 화신그룹 회장(1억2천만원)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
1970년에는 목재 수출로 돌풍을 일으킨 고 강석진 동명목재 회장이 17억8천만원의 소득을 신고하면서 한비사건(일명 사카린밀수사건)으로 치명타를 입은 고 이병철 회장을 제치고 정상을 차지했다.
이어 월남전 특수를 누린 조중훈 한진그룹이 9억8천만원의 소득을 신고해 2위를 차지했다. 권철현 연합철강 회장도 4억3천만원의 소득을 올려 재벌대열에 합류했다.
◇ 1970년대 중반 이후엔 재계 지각변동
중동건설 붐과 1차 석유파동으로 1970년대 중반 이후 신흥 거부들이 속출하면서 우리나라 재벌 판도에 큰 변화가 생겼다.
1970년 중반부터 최고 부자로 떠오른 인물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와 중동건설 붐에 힘입어 막대한 부를 거머쥔 정 명예회장이 혜성처럼 나타난 것이다.
그는 1980년 국세청에 연간 소득이 78억6천만원이라고 신고했다. 역대 최고치를 단숨에 갈아치우는 액수였다.
의류 수출로 급부상한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중동건설로 막대한 부를 쌓은 최준문 동아건설 회장, 구자경 LG그룹 회장 등도 신흥 재벌이었다.
3저(저환율,저유가,저원자재) 호황과 88서울올림픽 특수, 신도시개발 등 국내외 경제 이슈가 많던 격동의 시기인 1980년대를 거치면서 새로운 거부들이 속속 등장했다.
1990년 국세청 신고 소득액을 보면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이 71억5천만원으로 1위를 차지했다. 아파트 재건축으로 부상한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이 49억3천만원, 삼성그룹의 2대 총수에 오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9억5천만원의 순이었다.
재계 순위 다툼이 춘추전국 시대를 방불케 할 정도로 치열하게 전개된 것이다.
◇ 1990년대에는 재벌가 2~3세 대결구도
1990년대에는 외국인 직접 투자가 시작되고 주식시장이 활황세를 보인 영향으로 재벌그룹 계열사의 대주주인 총수 2~3세들이 부자 명단 상위권에 서서히 이름을 올렸다.
1995년 국세청 소득명세를 보면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150억7천만원으로 압도적인 차이로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51억5천만원, 최종현 선경그룹 회장이 37억7천만원을 기록했다.
그러나 1998년에 몰아친 외환위기 사태 이후에는 우리나라 부자 판도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주식시장이 침몰하면서 많은 재벌이 부도나거나 쪼그라든 틈을 비집고 벤처기업인들이 샛별처럼 등장한 것이다.
2000년 1월 상장사 주식 부자 명단을 보면 정주영ㆍ이건희 회장에 이어 김형순 로커스 대표(7천480억원)가 3위, 이준욱 대양이앤씨 대표(5천496위)가 5위에 올랐다. 10대 주식 부자 중 6명이 벤처기업인이었다.
2001년 시작된 벤처 거품 붕괴로 재계 지도는 다시 한번 크게 변하게 된다. 전통 재벌가가 상위권을 휩쓰는 형국이 됐다. 환란 등을 겪으며 밀려났던 전통의 재벌들이 권토중래에 성공한 셈이다.
2011년 7월7일 현재 상장사 주식자산 기준 상위권은 이건희, 정몽구, 정몽준, 정의선, 신동빈 등 재벌 그룹 2~3세들이 차지했다.
(서울=연합뉴스) 곽세연 기자 = 대한민국 부자들의 역사는 이병철-이건희ㆍ정주영-정몽구 부자(父子)의 라이벌 대결로 요약된다.
1960~1990년대에는 이병철 삼성 회장과, 정주영 현대 회장이 국세청 신고 소득액 기준으로 1~2위를 다퉜다. 2000년대 들어서는 이들로부터 주식을 증여ㆍ상속받은 아들 이건희, 정몽구 회장이 보유 주식 평가액을 놓고 선두 다툼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가 11일 재벌닷컴에 의뢰해 1960년대 이후 한국 재벌의 순위를 매겨본 결과 무수한 기업이 명멸했으나 삼성과 현대 가문은 50여년 동안 부침이 종종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정상 자리를 놓고 맞수관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는 2000년대 전에는 국세청 연간 소득 신고액, 2000년 이후는 상장사 주식 가치를 기준으로 이뤄졌다.
◇ 1960∼1970년대 중반은 `군웅할거 시대'
개인들이 국세청에 신고한 연간 소득액(배당금과 이자 합산액)을 기준으로 보면 1960년대 최고 부자는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었다.
1960년 이 회장은 국세청에 2억8천만원을 벌었다고 신고했다. 그때까지 최고 재벌로 꼽히던 정재호 삼호그룹 회장(1억3천만원), 박흥식 화신그룹 회장(1억2천만원)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
1970년에는 목재 수출로 돌풍을 일으킨 고 강석진 동명목재 회장이 17억8천만원의 소득을 신고하면서 한비사건(일명 사카린밀수사건)으로 치명타를 입은 고 이병철 회장을 제치고 정상을 차지했다.
이어 월남전 특수를 누린 조중훈 한진그룹이 9억8천만원의 소득을 신고해 2위를 차지했다. 권철현 연합철강 회장도 4억3천만원의 소득을 올려 재벌대열에 합류했다.
◇ 1970년대 중반 이후엔 재계 지각변동
중동건설 붐과 1차 석유파동으로 1970년대 중반 이후 신흥 거부들이 속출하면서 우리나라 재벌 판도에 큰 변화가 생겼다.
1970년 중반부터 최고 부자로 떠오른 인물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와 중동건설 붐에 힘입어 막대한 부를 거머쥔 정 명예회장이 혜성처럼 나타난 것이다.
그는 1980년 국세청에 연간 소득이 78억6천만원이라고 신고했다. 역대 최고치를 단숨에 갈아치우는 액수였다.
의류 수출로 급부상한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중동건설로 막대한 부를 쌓은 최준문 동아건설 회장, 구자경 LG그룹 회장 등도 신흥 재벌이었다.
3저(저환율,저유가,저원자재) 호황과 88서울올림픽 특수, 신도시개발 등 국내외 경제 이슈가 많던 격동의 시기인 1980년대를 거치면서 새로운 거부들이 속속 등장했다.
1990년 국세청 신고 소득액을 보면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이 71억5천만원으로 1위를 차지했다. 아파트 재건축으로 부상한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이 49억3천만원, 삼성그룹의 2대 총수에 오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9억5천만원의 순이었다.
재계 순위 다툼이 춘추전국 시대를 방불케 할 정도로 치열하게 전개된 것이다.
◇ 1990년대에는 재벌가 2~3세 대결구도
1990년대에는 외국인 직접 투자가 시작되고 주식시장이 활황세를 보인 영향으로 재벌그룹 계열사의 대주주인 총수 2~3세들이 부자 명단 상위권에 서서히 이름을 올렸다.
1995년 국세청 소득명세를 보면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150억7천만원으로 압도적인 차이로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51억5천만원, 최종현 선경그룹 회장이 37억7천만원을 기록했다.
그러나 1998년에 몰아친 외환위기 사태 이후에는 우리나라 부자 판도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주식시장이 침몰하면서 많은 재벌이 부도나거나 쪼그라든 틈을 비집고 벤처기업인들이 샛별처럼 등장한 것이다.
2000년 1월 상장사 주식 부자 명단을 보면 정주영ㆍ이건희 회장에 이어 김형순 로커스 대표(7천480억원)가 3위, 이준욱 대양이앤씨 대표(5천496위)가 5위에 올랐다. 10대 주식 부자 중 6명이 벤처기업인이었다.
2001년 시작된 벤처 거품 붕괴로 재계 지도는 다시 한번 크게 변하게 된다. 전통 재벌가가 상위권을 휩쓰는 형국이 됐다. 환란 등을 겪으며 밀려났던 전통의 재벌들이 권토중래에 성공한 셈이다.
2011년 7월7일 현재 상장사 주식자산 기준 상위권은 이건희, 정몽구, 정몽준, 정의선, 신동빈 등 재벌 그룹 2~3세들이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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