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사랑방

슬픔이 기쁨에게/정호승

럭키홍 2011. 7. 28. 10:32

외로우니까 사람이다고 했습니다. 슬픔의 시인이자, 기다림의 시인으로 유명한 정호승 시인의 이야기입니다. 혹시, 정호승 시인을 좋아하시나요? 저는 시인을 참 좋아합니다. 좋아하면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시인의 책을 모두 읽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아주 재미있는 시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슬픔이 기쁨에게에게 라는 매우 특이한 제목의 시였습니다. 더욱 놀라웠던 점은 누구보다 인간에 대한 따뜻한 감수성이 가득하다고 생각했던 시인의 첫 번째 시집의 대표시가 바로 슬픔이 기쁨에게라는 매우 차갑게 느껴지는 시였던 것입니다.

 

 

시인은 이 시의 후기를 이렇게 남겨두었습니다. ‘이 어렵고 괴로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연히 나의 시집을 읽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 시대의 한 사람 시인으로서 얼마만큼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을 것인지, 깊은 밤 홀로 추위에 떨며 생각하면 할수록 부끄럽고 또 부끄러울 뿐입니다.’

 

시인이 구체적으로 기다리는 것은 사람이었습니다. 봄이 와도 녹지 않을 눈사람 같은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기다림의 행동에는 시인의 슬픔이 원천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시인을 해방시켜주고, 그를 해방시켜주며, 독자 모두를 해방시키는 그런 사람임에는 분명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외롭습니다. 욕망으로 둘러싸여 기쁨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 슬픔을 이야기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지만, 우리 모두는 알고 있습니다. 기쁨 뒤에는 숨겨진 슬픔 역시 분명히 존재함을 말이지요. 종종 그것이 삶을 힘겹게 만듭니다.

 

경쟁적인 사회의 환경이 가득한 오늘날, 가까운 주변에서 보여지는 삶의 모습들은 그러한 환경을 닮아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인지 좀처럼 사람의 향기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혹시 나도 그런 사람으로 느껴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것이 가장 큰 슬픔입니다. 이따금씩 저는 힘에 부칠 때마다 이 시를 읽습니다. 이내 힘을 얻고 다시 주어진 삶의 발걸음을 내딛곤 합니다.

 

성장은 어제보다 나아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아지기 위해서는 지금 내게 닥쳐온 상황을 이해하고, 있는 힘껏 받아들일 때에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장하기를 바라는 분들과 함께 이 시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슬픔이 기쁨에게 /정호승


 

슬픔이 기쁨에게  - 정호승 -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사람마다 느낌이 다르게 오겠지만

혹, 각박한 우리의 모습을 따끔하게 충고하는 시

혹, 처절한 그리움의 슬픔에 대한 시

혹,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원망은 아닐지

아니면,

사랑에 슬픈 이는 슬픈 마음을 달래려 읽고

그리움에 젖은 이는 그리움이 주는 가슴 아림을 느끼려 읽고

누군가를 원망하는 이는 그 원망의 진한 어둠에 빠지기 위해 읽고

각박한 세상에 자신만을 위해 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기 위해 읽기도할테지

나에게는 모든 마음들이 다가오기에

아직도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가지 못하고 있음을 발견케 되는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