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기쁨에게 - 정호승 -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사람마다 느낌이 다르게 오겠지만
혹, 각박한 우리의 모습을 따끔하게 충고하는 시
혹, 처절한 그리움의 슬픔에 대한 시
혹,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원망은 아닐지
아니면,
사랑에 슬픈 이는 슬픈 마음을 달래려 읽고
그리움에 젖은 이는 그리움이 주는 가슴 아림을 느끼려 읽고
누군가를 원망하는 이는 그 원망의 진한 어둠에 빠지기 위해 읽고
각박한 세상에 자신만을 위해 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기 위해 읽기도할테지
나에게는 모든 마음들이 다가오기에
아직도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가지 못하고 있음을 발견케 되는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