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사랑방

김훈의 남한 산성

럭키홍 2011. 8. 25. 11:16

 

늘 그렇듯이, 문제는 이미 드러났지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찾을 수 없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저 시간을 인내하고 위기를 감내하는 것 밖에는 말이지요. 비가 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 세계 경제가 나아지기를 바라는 것, 그것 말고 우리 스스로가 주체적으로 손발을 쓸 수 있는게 하나도 없다는 점입니다. 그래서인지 문제에 대한 책임을 떠넘기기 급급한 모습만이 역력합니다. 그 사이에 가진 것 없고, 힘없는 이들만이 피해를 고스란히 거머쥐게 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문득, 김훈 작가의 남한산성이 떠올랐습니다.

 

 

1636년 추위가 가득한 12, 청의 대군이 한양으로 진격 한다는 장계를 받고 조정은 술렁입니다. 분분한 논란이 이어지고 인조는 얼어붙은 송파나루의 남한산성으로 들어가면서 고난은 시작됩니다. 힘이 없었던 조선은 청의 무력 앞에 꺼낼 수 있었던 방법은 그렇게 도망을 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요. 성 안은 추웠고, 식량은 모자랐으며, 말들은 먹을 풀이 없었습니다. 비와 눈은 모질게 내려 병사들은 얼어 죽기 시작했고, 말들은 굶주려 죽었습니다. 그렇게 청나라의 장수는 성 밖을 둘러싼 채 항복을 요구합니다. 그렇게 47일간의 성에서 벌어진 참담한 날들의 기록이 바로 남한산성의 줄거리입니다.

 

늘 그렇듯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간단치 않습니다. 싸울 힘이 없는 이들에게 외부의 충격은 그렇게 치욕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쓰러진 왕조의 들판에도 대의는 꽃처럼 피어날 것이라며 결사항쟁을 고집한 척화파 김상헌, 역적이라는 말을 들을지언정 삶의 영원성은 치욕을 덮어서 위로해줄 것이라는 주화파 최명길, 그 사이에서 어떠한 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임금 인조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꺼져가는 조선의 운명 앞에서 고통받는 민초들의 삶이 눈물겹게 보입니다.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죽어서 아름다울 것인가, 살아서 더러울 것인가?’라며, ‘삶은 치욕을 견디는 나날이라고 작가는 역사의 한 장면을 소설로 담아냅니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게 평가할 수 있겠지만, 저에게 오늘의 현실은 그렇게 1636년의 겨울 남한산성을 닮았다고 보여집니다. 당시처럼 총성있는 전쟁은 아니지만, 이미 세상은 보이지 않는 경쟁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우리 모두는 살아야 합니다. 외환위기 이후에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자기계발 역시 그렇습니다. 그것이 자신의 과거를 거듭 새롭게 한다는 주체성보다는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절박한 외부의 충격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객체성에서 출발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청년실업, 노후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미국과 유럽에서 시작된 경제의 위기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파장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역사가 반복되는 것처럼,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 우리는 그때처럼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그래서 역사의 반복이 마음을 아리게 합니다.

 

모두가 웃으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어디 없을까요? 오늘도 그것에 대한 해결을 구하고자 세상은 분주합니다. 척화파 김상헌과 주화파 최명길의 엇갈린 해결책, 그리고 그 사이에서 아무런 결정을 내릴 수 없었던 임금 인조의 모습이 반복처럼 보여집니다. 어떤 하루를 보내고 계신지요? 비로 인한 피해, 경제의 먹구름으로 인한 위기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어떻게 보여지는지 궁금해지는 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