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사랑방

실패의 하인리히 법칙으로 본 임진왜란 -재난은 순식간에 들이 닥치지 않는다.

럭키홍 2011. 12. 29. 12:27

 

- 재난은 순식간에 들이 닥치지 않는다 -

 

실패(失敗) 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 일이 잘못 됨,또는 일이 제대로 되지않음" 이다.

따지고 보면 임진왜란도 한국사에서 영원히 지울수 없는 치욕의 실패사례에 속한다.

 

당시 국정의 최고책임자였던 선조는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둔감했다.

조선 개국 이후 200념간 지속된 평화와 일본에 대한 문화적 우월감은 도요토미의 능력과 전쟁가능성을 일축했다.

(당시 일본 사신파견한 황윤길과 김성일의 일본 출장후 선조임금께 보고한 엇갈린 주장에 김성일의 일본 침략 불가입장 수용)

 

조정 대신들 또한 붕당정치( 朋黨政治)라는 미명하에 파당을 지어 "끼리 끼리의 횡포" 를 계속하고 있었다. 

물론 그당당시 "10만 양병설"을 주장한 이율곡처럼 탁견을 가진 인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정의 중론은 시종일관 낙관론을 견지했고

그 의견은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니 조선은 일본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다.

 

실패에는 그나름대로 규칙성이 있다 .

하인리히는 그것을 1:29: 300 법칙으로 설명을 했다.

 

즉 하나의 큰 재난이 발생하기까지는 그에 대한 전조 현상으로 29건의 경미한 재난과 300건의 이상징후들이 나타 난다는 것이다.

임진왜란에도 이러한 " 실패의 하인리히 법칙" 이 그대로 적용 되었다.

조정과 대신들이 조금만 신경 썼더라면 미리 전쟁 준비에 만전을 기해 전 국토가 왜군들에게 유린당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고통 또한 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 조정에는 유감스럽게도 그럴만한 대신들이 존재하지 않았고, 오히려 조정에서는 분열의 시대에서 통일의 시대로 진입하는

이웃나라 일본을 깔보고 무시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몇 전부터 큰 전쟁이을 예고하는 이상징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1586년부터 1591년까지 조선에 파견햇던 일본 사신들의 태도 오만 불손함

    - 일본사신 다치바나 야스히로,소오 요시토시, 야나가와 시게노부, 겐소 등의 태도와 그들에게 들려 보낸 도요토미의 친서내용이

      이전과 비교하여 매우 오만 불손했다-ㅡ " 친서 내용에 "이제 천하는 짐의 손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2) 1591년에 들어와서

     - 왜인들이 더 이상  조선 땅에 들오지 않았고 부산포에 머물고 있던 왜인들조차 하나 둘씩 자취를 감추더니 임진왜란 직전에는

       모두 사라져 버렸다.

       조선 사람들은 그러한 점을 의아하게 생각 했지만 언, 누구도 그것이 전쟁의 폭풍전야 였음을 깨닫지 못했다.

3)  당시 조선의 제일의 명장이라 일컬어지던 신립장군마저도 자만심에 가득 차 있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0여일 전에, 유성룡은 신립에게 " 가까운 시일 내에 큰 변란이 일어날 걸 같소. 그렇게 되면 군사를 맡어야 할터인데   왜군을 막아낼 자신은 있소?  라고 물으면서 왜군이 조총을 가지고 있음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러자 신립은 "그까짓 것 걱정할 것 없소이다. 왜놈들이 갖고 있다는 조총들이 쏠때마다 맞느답니까??" 라고 말했다.

조선의 육군을 지휘하는 최고지휘관의 대일 정보가 이정도밖에 안되었으니 육전에서 왜군에게 연전 연패 당해 임진왜란 발발 20일만에 서울인

한성이 함락당하고 선조는 북으로 피난길에 오르게 되고 신립은 왜군의 기세에 주눅이 들어 싸움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배수진을 친 탄금대에 몸을 던져 자결하고 말았다.

 

실패의 종류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임진왜란처럼 유비무환 정신의 부재나 잘못된 상황판단때문에 발생하는 나쁜 실패가 있는 반면

발명왕 에디슨이 백열등을 발명하기 위해 겪어야 했던 2000번이 넘는 시행착오적  좋은 실패도 있다.

그런데 이와같은 좋은 실패든, 나쁜 실패든 실패에는 반드시 생산적인 측면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실패의 다양한 경험을 데이터베이스화

시켜서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쁜 실패는 재발방지에 주력하고 좋은 실패는 창조적 발명의 모티브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패했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실패를 은폐하고 왜곡시키기보다는 적극적으로 공개하는 것이다.

이를통해 모든 구성원들이 그와 관련된 정보나 지식을 공유하는 실패 중시 문화를 조성해야한다. 

이를 하나의 독자적인 학문 분야로 발전시킨 것이 실패학이다.

 

- 연료봉 2차용접 불량사건으로 바라본 우리의 자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