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환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전문연구위원 |
독도가 최근 핫이슈가 되면서 국민 모두의 관심사가 됐고 이는 일본의 과거사와 맞물려 한국 국민의 아픈 곳을 건드리는 민감한 사항으로 발전하는 양상이다. 일본과 한국은 언제나 이웃할 수밖에 없고 과거의 역사는 두 나라의 관계를 가르쳐 주고 있지만 침략은 언제나 일본 측이었다.
일본은 기회만 있으면 섬 밖으로 침략하는 근성을 보여 왔다. 삼국시대에는 한반도를 노략질했고 조선 중반에는 임진왜란을 일으켜 한반도를 삼키려 했다. 당파싸움으로 내부가 흩트려져 있던 상황을 놓치지 않았고 급기야 힘 빠진 조선 말기에는 조선황후를 살해하고 나라를 찬탈하기도 했다.
한 발 더 나가 일본은 중국과 동남아까지 제패하려 했다. 일제 강압기는 우리에겐 암울의 시간이요 치욕의 세월이었음을 절대 잊지 않고 있다. 어떻든 그들은 우리 민족에게 말할 수 없는 곤혹과 억압의 세월을 가져다줬다. 다행히도 우리 애국지사의 끊임없는 불굴의 노력과 열강의 도움으로 대한민국은 독립해 오늘날 세계가 부러워하는 나라로 발전하고 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독도사랑은 남달랐다. 그는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 일본을 지적했고 일본과의 국교수립을 끝까지 반대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의 끈질긴 협상 노력에도 단호히 거절했다.
그는 미국 대통령 요청으로 미국을 방문했을 때 일본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밝혀 아이젠하워의 양국 화해전략을 무력화시켰다. 한편 그는 방문기간 동안 미 국회에서 연설하는 동안 수없는 기립박수를 받으면서 대환영을 받았다. 귀국 길, 하와이에 들렀을 바로 그날, 1954년 8월 10일 우리 국토인 독도의 무인등대에 불이 켜졌다. 그로부터 독도는 한국의 실효적 지배에 들어갔고 주민이 살게 됐다. 만 58년이 지난 바로 같은 날,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했다. 한편 이승만 대통령은 우리 땅이던 대마도를 350년 전에 일본이 찬탈했으니 이를 반환할 것을 수십 차례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근거는 여러 곳에서 증명되고 있다고 기록은 전한다. 필자가 접한 자료에 의하면 독도가 한국 땅이 된 것은 서기 512년 신라 지증왕 때에 우산국이 신라에 병합될 때부터라고 삼국사기에서 전한다. 우산국이 울릉도와 독도로 구성된다는 사실은 세종실록지리지(1432년) 등 여러 곳에 나와 있고 프랑스의 유명 지리학자인 당빌(D'Anville)의 지도(1737년)에도 독도가 조선 땅으로 그려져 있다.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는 일본까지 그들의 지도 및 자료에서 우리 땅으로 명시하고 있다. 1667년 일본 관찰 고문헌 ‘은주시칭합기’에도 울릉도(당시 일본명칭 죽도)와 독도(당시 일본명칭 송도)가 고려 영토임을 확실히 하고 있고 조선시대에 일부 분쟁이 있기는 했지만 1691년 도쿠가와 막부는 독도는 조선의 땅임을 재확인했다. 이때 동래 출신 어부 이용복은 울릉도와 독도를 지키기 위해 활동했다. 그리고 19세기 말 일본 메이지정부도 공문으로 독도가 조선 영토임을 확인했고 이 외에도 여러 자료와 지도가 한국 땅임을 밝혀 주고 있어 일본이 국제재판소에 제소한 것은 일본 내의 정치적인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여겨진다.
얼마 전 전국의 2013년도 로타리총재단에 속해 울릉도를 방문했다. 울릉도에 도착하고 바로 오후에 독도를 방문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풍랑이 거세지면서 독도 접안이 어렵다는 통보를 받고 낙담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독도 방문에 대한 기대는 컸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아침에 일어나니 너무나 꿈같은 일이 일어났다. 바다는 너무 조용해졌고 비도 거쳤다. 2시간이 족히 걸리는 시간이지만 선상에 설치된 독도에 관한 비디오를 보면서 조금도 지루함 없이 독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얼마나 기대하고 고대하던 순간이던가. 접안시설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 가슴속에서 묘한 기운이 마음속 깊이 요동치고 있음을 느꼈다.
조국애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러한 현상이 오직 나뿐이겠는가? 아니 같이 온 일행뿐만 아니라 온 국민의 한결같은 마음이리라. 단숨에 독도의 봉우리에 도달할 수 있었다. “우리땅 독도야”하는 짧은 신고와 함께 독도의 고요한 분위기, 바위와 돌, 꽃과 새, 바람과 파도를 음미하면서 한동안 휘날리는 태극기와 지평선 너머로 우리가 달려온 서쪽의 본토를 말없이 응시했다. “절대로 독도를 잊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독도는 더 이상 외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