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이야기

소에게 빵을 먹여서는 안 된다/ 중앙일보

럭키홍 2013. 10. 11. 08:39

 소에게 빵을 먹여서는 안 된다[중앙일보] 입력 2013.10.10 00:10 / 수정 2013.10.10 00:10

손양훈
에너지경제연구원장

 

오래전에 어떤 공산주의 국가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빵은 인민의 양식이자 생명줄과 같으니 이를 값싸게 공급하는 일은 국가의 임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빵을 매우 싸게 공급했는데 문제는 늘 물량이 모자랐다는 점이었다.

충분히 공급해도 빵이 모자라는 이유는 엉뚱한 데 있었다. 빵 값을 낮추다 보니 건초보다 더 싸졌고 그래서 가축에게 풀 대신 빵을 먹이는 사람이 늘었던 것이다. 가격통제가 낳은 기상천외의 결과다.

 먼 나라의 웃기는 일화처럼 들리겠지만 한국 전력시장도 다를 바 없다. 전력요금을 공공요금이라고 해서 묶어두는 일을 거듭하는 사이에 전력 소비가 가파르게 늘었다. 그래서 철마다 전력위기를 겪고 있다. 반드시 전력으로 해야 하는 필수적인 부분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전력으로 하지 않아도 되거나 에너지 효율적으로 볼 때 전력으로 해서는 안 되는 소비까지 전력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예를 들어 보자. 식당에 가보면 등유보일러를 걷어버리고 바닥에 열선을 깔아서 전기로 난방을 한다. 에너지 역학적으로 말도 안 되는 선택이다. 그뿐만 아니다. 전기로 온수기와 건조기를 가동하고 여름철에는 가스 대신 전기로만 냉방을 한다. 심지어 문을 활짝 열고 냉방을 하기도 한다. 가격의 왜곡이 잘못된 선택을 하도록 유도한 결과다. 그야말로 소에게 빵을 먹이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한쪽에서는 전기가 부족해서 산업체의 가동을 줄이고 있는데 다른 쪽에서는 어이없는 용도로 고급 에너지인 전기를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어이없는 일이지만 사실이다.
 가격의 왜곡은 그런 엉뚱한 결과를 가져온다. 전력 가격을 인위적으로 억누르면 이른바 풍선효과가 나타난다. 석유로 해야 할 일을 전기로 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전력소비가 급속하게 늘어난다. 정치적 논리로 전기요금을 싸게 해주니 소비자들은 타 에너지원을 외면하고 전기를 사용하는 설비를 구매하고 전기를 과도하게 소비하는 선택을 한다. 개인은 비용을 줄이는 선택이겠지만 국가 전체로 모이면 엄청난 전력수급 위기가 되는 것이다.

 최근 에너지경제연구원이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이런 잘못된 소비를 시정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15~20%의 상대가격 조정이 불가피하다고 한다. 이를 이른 시일 내에 시정하지 않으면 가격 왜곡으로 인한 수급위기는 피하기 어렵다. 전력 과소비를 막고 전력 효율을 개선하는 데 대한 의욕을 저하시키지 않으려면 최소한 그 정도의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민 생활과 산업 생산에 꼭 필요한 전기를 차질 없이 공급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국가의 과제다. 하지만 원가보다 싸게 공급해서 불합리한 소비의 폭주를 방치하고 전력위기를 초래하는 것은 올바른 선택이 아니다. 한국은 에너지의 97%를 해외에서 수입한다. 에너지 안보의 면에서 세계에서 가장 취약한 나라의 하나다. 에너지의 새로운 기술과 창조적 대안이 싹을 틔우지 못하게 에너지 낭비 구조를 지속하는 것은 우리의 미래마저 어둡게 만드는 것이다. 가격이 작동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에너지 절약 같은 신기술이 경쟁력을 가지지 못하고 새로운 산업 생태계 조성으로 이어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소는 풀을 먹고 빵은 사람이 먹도록 해야 한다. 고급 에너지인 전기는 꼭 필요한 곳에 효율적으로 쓰게 하고 석유나 천연가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전기로 내몰지 않도록 해야 에너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가격과 세제를 본격적으로 개편해야 하는 가장 확실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