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사랑방

윤세영 <수필가> 따뜻한 동행

럭키홍 2014. 4. 6. 15:56

- 같으면서 다른 -

                                  윤세영  수필가 

 

봄이 되니 주말마다 결혼식장에 간다. 식장에 앉아 긴 주례사를 듣고 있자면 아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 했던 말이 생각난다. 아이는 이상하다는 듯 내게 물었었다. “엄마, 교장선생님은 왜 ‘마지막으로’라고 말씀하시면서 항상 마지막이 아니야?” 지루하던 차에 ‘마지막’이라는 말에 귀가 번쩍했다가 실망했던 모양이다.

둘러보면 제대로 듣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도 막무가내로 주례사가 길면 참 딱하다. 그런데 지난 주말에는 인상적인 주례사를 들었다. 그 주례는 소박하고 일상적인 당부의 말끝에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에 나오는 시를 인용했다. 현악기에서 줄이 서로 간섭을 하지 않되 어우러져 하나의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듯 신랑 신부는 사랑하더라도 각자 따로 설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사랑이 간섭이나 구속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내 귀에 쏙 들어오는 주례사였다.

연리지(連理枝)는 뿌리가 서로 다른 독립된 나무였으나 두 나무의 가지가 붙어서 분리할 수 없는 한 나무가 되는 현상을 말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연리지로 인해 한 나무가 되었을지라도 각자의 뿌리가 다른 고로 하얀 꽃을 피우던 나무라면 여전히 하얀 꽃을, 분홍 꽃을 피우던 나무는 여전히 분홍 꽃을 피운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연리지야말로 진정한 사랑의 상징인 것 같다. 둘이 하나가 된다는 것, 그러나 하나가 되어서도 자기 고유의 색깔을 잃지 않는다는 점에서 말이다.

이 세상에 한 가지 색깔만 있다면 얼마나 지루하고 재미없을까. 하얀색은 검은색과 함께 있으면 더욱 도드라진다. 배색을 잘 만나면 색깔이 더 돋보이고 아름다울 수 있다. 사람도 그렇다.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야 나의 개성이 두드러지고 또한 그의 개성도 돋보인다. 나는 나다워지고 너는 너다워지는 것, 그렇게 서로 다르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아름다움이 결혼의 의미가 아닐까?

나는 남편(사진작가)이 글 쓰는 사람이 아니어서 참 좋다. 남편 또한 내가 사진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좋을 것이다. 나의 글과 남편의 사진이 만나면 서로 보탬이 되니 좋다. 따뜻한 봄날, 새 출발을 하는 젊은 신랑 신부들이 각자 개인의 완성을 통해 사랑의 완성을 이루길 바라본다. 이번 주말에 참석하는 결혼식에서는 어떤 주례사를 들을지 기대된다.

 

 

 

 

 

[윤세영의 따뜻한 동행]세상은 넓다

기사입력 2014-03-20 03:00:00 기사수정 2014-03-20 03:00:00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남편에게 건네는 나의 첫마디는 늘 똑같다. “지금 몇 시야?” 벽에 걸린 시곗바늘이 또렷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아쉽다. 안경 없이 맨눈으로 세상과 초점을 맞출 수 있다면 얼마나 명쾌할까! 남편은 그 나이에 아직 시계 볼 줄도 모르냐고 뻐기면서 시간을 알려준다. 그 농담 끝에 아는 것과 보이는 것의 상관관계를 생각한다. 시계 보는 법을 알아도 시계가 보이지 않으니 소용이 없다.

한 친구가 지금은 예순이 넘은 큰누나가 초등학교 선생이 되어 산골 학교로 처음 부임했던 이야기를 했다. 내 친구는 그때 고등학생이었다고 한다. 누나 학교로 찾아가 보니 누나가 빈 교실에서 풍금을 치고 있더란다. 산 그림자가 고즈넉한 시골학교 교실에서 풍금을 치고 있는 누나의 뒷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순간 가슴이 먹먹했다고 한다.

그런데 연애 한 번 해본 적이 없는 예쁘고 순진한 누나가 나중에 집으로 데리고 온 결혼상대는 나이 차가 많이 나는 같은 학교 노총각 선생님이었다. 당시 누나에게는 작은 시골학교가 세상의 전부였던 것이다. 더구나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 누나는 남편의 병수발만 하다가 젊은 나이에 사별하는 슬픔을 겪었다.

지금은 대학 교수가 된 나의 친구는 학생들에게 항상 세상을 넓게 바라보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세상이 넓어서 얼마든지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고 혹시 실패한 선택을 한 경우에도 얼마든지 다른 선택의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다. 혼자가 된 누나가 두 번째 선택을 두려워하고 혼자 지내는 것이 못내 답답하고 가슴 아프다는 친구의 말이다.

그러자 한 친구가 말했다. 주변에 선천적으로 시야가 좁게 보이던 사람이 수술을 받고 정상인처럼 볼 수 있게 되었다며 기뻐하기에 “그동안 굉장히 답답했을 텐데 왜 이제야 수술을 받았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그 사람은 모든 사람이 그렇게 보이는 줄 알았다고 대답하더라는 것. 처음엔 싱거운 사람이라며 웃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수긍이 갔다. 태어나서부터 그렇게 보였다면 그게 당연한 줄 알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혹시 정상인 줄 알고 있는 우리의 시각도 정상이 아닐 수 있지 않을까?

시력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시각이다. 시야를 얼마나 넓게 가지냐에 따라 세상을 훨씬 더 넓고 넉넉하게 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윤세영 수필가

 

[윤세영의 따뜻한 동행]가지 않은 길

기사입력 2014-03-06 03:00:00

 

십여 년 전 비슷한 시기에 한 회사에서 퇴직 권고를 받은 두 사람이 있었다. 최근에 그 두 사람을 만났다. 한 사람은 억울하게 회사를 그만둔 후 한참 동안 분해서 잠도 자지 못하며 울화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렇게 폐인처럼 보내다 마음을 다잡고 밑바닥 장사부터 시작했다.

이름을 대면 알 만한 회사에서 전문직에 근무하던 그가 길거리에서 “골라, 골라”를 외칠 때는 목소리가 기어 들어가고 혹시 아는 사람이 볼까 두려워 얼굴도 제대로 들지 못했다고 한다. 보다 못한 옆집 상인이 나서서 소리를 질러 호객을 하는 시범을 보여주기도 하면서 그를 격려했다.

“그런데 점점 돈이 벌리기 시작하니까 창피한 게 사라지고 재미가 붙더라고요. 빨리 내일 아침이 밝아서 또 돈 벌러 나가고 싶어지는 거였어요.”

그렇게 장사의 재미를 익힌 그는 10년도 채 안 되는 기간에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다. 반면 한 사람은 퇴직 권고에 응하지 않았다. 명분 없이 쉽게 사람을 내치는 걸 받아들일 수 없다고 버틴 것이다. 그랬더니 회사에서는 그를 한직으로 발령내버렸다. 자존심이 상했다. 더구나 회사의 의중을 아는 담당부장이 그 부서에서도 가장 실적을 올리기 어려운 일을 맡겼다.

“이대로 물러나면 평생 나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될 것 같다”고 생각한 그는 자신의 전문성을 새로운 업무에 접목해가며 열심히 창의적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마침 운도 따라주어 그가 올린 실적은 기적에 가까웠다. 그렇게 3년 동안 엄청난 실적을 올리자 그를 밀어내려 했던 회사의 태도가 변했다. 결국 그는 그 회사가 새로 만든 자회사에 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이제는 어떤 경우를 만나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똑같은 경우에 두 사람은 상반된 선택을 했다. 한 사람은 회사에서 나갔고, 한 사람은 버텼다. 그렇지만 두 사람은 절치부심하여 최악의 경우를 성공의 기회로 만들었다.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가지 않은 길’로 들어섰지만, 가던 길만이 최선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만약 그런 일이 없었다면 그들은 익숙한 자리에서 안주하다 지금쯤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을 것이다.

긴 인생길에서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정답은 없다. 가다가 막다른 길을 만나거나 혹은 길을 잃었다고 해서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최선을 다한다면 길이 끝나는 곳에서 새로운 길을 열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