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가 말하는 내 인생의 ○○○] 조웅래 더맥키스컴퍼니 회장의 '발품'
충남 소주회사 '선양' 인수 후 계족산에 14.5㎞ 황톳길 깔아… 맨발 걷기로 치유의 기쁨 나눠
현장서 부지런히 발품 팔아야 문제점 파악하고 逆발상 생겨
대전·충남 지역의 소주 회사 선양을 인수해 경영한 지 1년 반쯤 지난 2006년 4월 일이다. 동창생들이 대전으로 찾아와 근처 계족산(鷄足山)으로 나들이를 갔다. 그런데 일행 중 여성 한 명이 하이힐을 신고 있어 산행이 힘겨웠다. 기사도(騎士道)를 발휘해 내 운동화를 벗어주고, 나는 양말만 신고 산에 올랐다. 산 중턱 임도(林道)가 돌길이었는데, 발이 좀 아팠지만 걸을 만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누웠는데 발끝은 물론 온몸이 후끈 달아오르는 묘한 느낌이 들었고, 오랜만에 푹 잤다. 돌길을 맨발로 걸었더니 발바닥 지압 효과를 톡톡히 본 것이다.
그날 이후 매일 계족산을 맨발로 걷기 시작했다. 맨발 산행 효과를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은 욕구가 간절했다. 돌밭 위를 걷는 것은 아무래도 위험하다는 생각에 길에 황토를 깔기로 했다. 2006년 가을부터 작업을 시작해 계족산에 14.5㎞ 길이 황톳길을 만들었다. 전국에서 말랑말랑하고 푹신한 느낌이 드는 황토를 공수해 깔았다. 처음에 덤프트럭 100대 분량 황토를 쏟아부었고, 비가 오면 휩쓸려나가는 황토를 수시로 보충하고 관리했다. 난 계족산에 손바닥만큼도 땅이 없지만, 지금까지 황톳길에 60억원 정도를 쏟아부었다.
그날 이후 매일 계족산을 맨발로 걷기 시작했다. 맨발 산행 효과를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은 욕구가 간절했다. 돌밭 위를 걷는 것은 아무래도 위험하다는 생각에 길에 황토를 깔기로 했다. 2006년 가을부터 작업을 시작해 계족산에 14.5㎞ 길이 황톳길을 만들었다. 전국에서 말랑말랑하고 푹신한 느낌이 드는 황토를 공수해 깔았다. 처음에 덤프트럭 100대 분량 황토를 쏟아부었고, 비가 오면 휩쓸려나가는 황토를 수시로 보충하고 관리했다. 난 계족산에 손바닥만큼도 땅이 없지만, 지금까지 황톳길에 60억원 정도를 쏟아부었다.
- 조웅래 더맥키스컴퍼니 회장이 자신이 만든 계족산 황톳길에서 맨발을 들어 보이며 웃고 있다. 그는“회사 경영도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야 현장의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더맥키스컴퍼니 제공
나는 일주일 중 최소한 닷새는 새벽에 계족산 황톳길을 맨발로 걷는다. 한 바퀴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 담당 인부를 만나 작업 지시를 한다. 언제부터인가 계족산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나를 '작업반장'이라고 부른다. 아예 내 명함에도 '황톳길 작업반장'이라는 직함을 더해 새겨 넣었다.
난 모든 경영 활동은 부지런한 발품이 밑바탕이 돼야 한다고 믿는다. 경영자가 직접 발품을 팔고 현장의 문제점을 파악해야만 부하 직원들에게 정확하고 적절한 지시를 내릴 수 있다. 직원들에게 항상 '현장에 답이 있다'고 강조하는데, 현장에서 답을 구하는 '왕도(王道)'는 발품을 파는 것이다.
기업·공공기관·대학교 등에서 1년에 50~60회 정도 '역발상'을 주제로 강연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1인 창업으로 전화 음성 서비스 사업을 하다가 주류 회사를 인수한 것, 황톳길을 매개로 에코 힐링(Eco-healing·자연을 통한 치유)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맨발 전도사'가 된 이력(履歷)이 남들과 다른 역발상의 결과라는 것 때문이다.
- 조웅래 회장 명함엔 캐리커처와 함께‘황톳길 작업반장’이라고 적혀 있다.
대학 졸업 후 대기업을 다니다가 나 자신이 거대한 기계의 부속품 같다는 생각이 들어 '원격 검침 계량기'를 만드는 대구의 한 중소기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기술 영업 담당으로 전화국을 돌아다니며 발품을 팔다가 첫 사업 아이디어를 얻었다. 유선 전화망을 이용한 음성 서비스 사업이 유망하다는 판단에 1992년 전 재산인 2000만원을 투자해 전화로 운세를 봐주는 전화 정보 서비스업을 시작했다. 전화 회선을 확보하고, 방 한쪽에 자동 응답 기계를 들여놓았다. 문제는 홍보였다. 매일 전단 한 뭉치를 들고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발품을 파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고객이 늘면서 사업은 자리를 잡았고, 이를 발판으로 새로운 사업에 도전했다. 친구나 애인에게 음악 메시지를 전달하는 '700-5425 서비스'를 시작했다. 나 혼자 듣던 음악을 다른 이에게 선물해 들려주자는 역발상은 폭발적 호응을 얻었다. 1995년 시작한 700-5425 서비스는 IMF 외환 위기 때에도 광고비로 100억원을 지출할 정도로 회사는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IT의 급격한 발전은 내 삶을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이끌었다. 통신 기반 콘텐츠 사업 확대를 계획했지만, 무선 인터넷망 개방이 지연되면서 위기를 맞았다. 난 콘텐츠 벤처기업에서 제조업으로 변신을 시도했다.
2004년 말 대전·충남 지역 소주 회사인 선양을 인수하자 주변에서는 생뚱맞다며 걱정했다. 당시 선양은 지역 소비자들의 신뢰를 받지 못해 본거지인 대전에서도 시장점유율이 40%를 밑돌았다. 회사 인수 후 첫 작품이 기존 소주보다 산소를 3배 더 넣은 소주 '오투린'이었다. 산이나 바다에 가서 소주를 마시면 술이 덜 취하고, 깨기도 일찍 깨는 데 착안한 제품이다.
전 직원이 열심히 발품을 판 덕분에 더맥키스컴퍼니는 대전·충남 소주 시장의 선두 업체가 됐다. '소비자의 지갑을 열기 전에 소비자의 마음을 먼저 열자'는 진심이 통한 것이다. 나는 발품을 파는 데 대한 두려움이 없다. 발품의 노력은 배신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조웅래 회장은 누구인가?]
조웅래(56) 더맥키스컴퍼니 회장은 자신을 '잡놈'이라고 부른다. 그는 "이것저것 섞인 잡(雜)의 의미는 융합과 통한다"며 "영역을 뛰어넘고 틀을 파괴하는 잡놈이 '난 놈'"이라고 말한다.
경남 함안 출생인 조 회장은 경북대 졸업 후 삼성·LG 계열사를 다니다가 1992년 1인 창업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 휴대전화 벨소리 서비스 '700-5425'로 큰 성공을 거뒀고, 2004년 대전·충남 지역 소주 회사인 선양을 인수했다. 2013년 다른 술이나 음료에 섞어 마시는 국내 최초의 믹싱주 '맥키스'를 출시하고, 회사 이름도 '더맥키스컴퍼니'로 바꿨다.
2000년 마라톤에 입문해 지금까지 51차례 풀코스(42.195㎞)를 완주했다. 내년 봄 7일간 250㎞를 달리는 '사하라 사막 마라톤' 출전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