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이야기

대전의 聖心堂

럭키홍 2015. 1. 23. 15:30

 

 

6·25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1956년 어느 날 한 젊은이가 대전역 앞 모퉁이에 빵집을 시작했다. 함경도 함흥 출신의 피란민 임길순(1997년 작고)씨가 찐빵집을 연 것이다. 임씨는 1·4 후퇴 때 기적적으로 배를 타고 북한을 벗어나 거제를 거쳐 대전에 자리잡은 터였다. 일자리를 구하러 서울로 가던 차 열차가 고장이 나서 대전에 내렸고 그길로 한밭에 정착한 것이다.

임씨는 평생 우직하게 좋은 빵을 만드는데 혼신의 힘을 다했고 늘 남들에게 베푸는 삶을 살았다. 맛있고 저렴한 빵을 만드는 것은 기본이고 매일매일 찐빵 300개를 만들어 그중 100개는 전쟁 통에 굶주리는 고아와 이웃에게 나눠줬다. 대전의 자랑 성심당 얘기다.

성심당이 요즘 세간의 화제다. 빵을 주제로 한 테마파크 조성 때문이다. 빵과 관련된 체험교육을 하고 온갖 자료를 전시하는 공간도 꾸민다고 한다. 임영진 대표는 대전일보에 이 소식이 보도된 뒤 며칠 동안 일을 못할 정도로 전화가 많이 받았다고 한다. 여기 저기서 유치의사를 밝힌 것이다. 대기업도 아닌 지방에 위치한 빵집이 이처럼 관심을 끈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빵 테마파크'가 아니라도 성심당은 이미 전국적으로 명성이 높다. 젊은이들 사이에 소위 '전국 3대 빵찝'이 널리 회자된다. 대전의 성심당, 군산 이성당, 전주 풍년제과가 바로 그것이다. 모두 지방에 자리잡은 채 수십년 동안 묵묵히 빵을 구워온 곳들이다. 다른 빵집도 훌륭하지만 대전 사람들은 성심당 빵을 최고로 여긴다. 한 두 가지가 아니라 여러 종류 빵들이 두루 맛있는 게 비교가 안 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사람 중에 성심당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과 부산의 유명 백화점에서 임시매장을 열었을 때 수백m 줄을 선 채 몇시간씩 기다려 소보로를 샀다. 부산에서는 반응이 하도 폭발적이어서 부산사람을 성심당 빵을 먹어본 사람과 못먹어본 사람 두 부류로 나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왔을 정도다. 2011년에는 한국 빵집 최초로 세계적 명성을 가진 미슐랭가이드이름을 올렸고, KTX를 통해 전국에 당일로 배달하는 체제를 갖췄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프란체스코 교황도 이 가게의 빵을 먹었다.

성심당은 21세기 대한민국의 새롭고 경이로운 현상이고 문화다. 이곳에서 만드는 튀김 소보로와 부추빵은 온국민이 좋아하는 명물로 자리잡았다. 빵을 맛보기 위해 외국인도 성심당을 찾는다. 대전의 젊은 세대에게 성심당은 만남의 장소이고 어른들에게는 추억의 공간이다. 소보로 빵 하나가 하루에 수천개씩 팔려 수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주고 국민적 공감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성심당이 뉴욕의 부숑베이커리나 파리의 뒤빵 에 데지데를 뛰어넘기 바란다. 이들 세계적 베이커리는 각각 유명 쉐프인 토마스 켈러와 크리스토프 바쉐르가 혼을 담은 빵을 만들고 있다. 지역민은 물론 세계적인 저명인사와 관광객이 즐겨 찾는 관광·순례 코스로 자리잡았다.

성심당에는 여느 기업이 갖지 못한 독특한 DNA가 있다. 고 임길순씨가 창업한 이래 60년 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맛있고 좋은 빵을 만들어왔고, 양적 팽창을 위해 품질을 저버리는 유혹에 빠지지 않았다. 특히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돕고 사랑하는 선한 의지를 늘 실천해왔다. 수 많은 빵집이 명멸해가고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판치는 21세기에 이처럼 단단하게 초심을 지켜온 것은 여간 대단한 일이 아니다. 창업주가 대흥동 성당의 종소리를 들으며 반죽을 하고 빵을 굽던 정결함과 순결함이 이어져온 탓이리라. 성심당이 곧 대전의 문화라는 자부와 긍지도 전적으로 인정한다.

성심당이 테마파크도 순조롭게 조성하고 날로 날로 성장하여 지역사회에 큰 도움이 되기 바란다. 빵 한 조각이 배를 채워주고 기쁨과 행복까지 준다면 더 바랄 게 있겠는가? 50년, 100년 후대 사람들의 입에도 거룩한 마음(聖心)으로 빚은 이 빵이 계속 오를 수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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