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산행."
도봉산 매표소에서 포대능선을 타는 60동기회 7월 정기산행 계획을 이-메일로 연락받고 10시 만날 시간에 맞추어 전철을 탔다. 7호선 건대 역에서 L임을 만나 도봉산역까지 이야기꽃을 피우며 갔다. 어떻게 남은 인생을 “비우고” 아름답게 마감하느냐는 이야기를 하다가 전철에서 내렸다. 20여 낯익은 얼굴이 도봉산 매표소에서 활짝 웃으며 우리를 맞이했다. 산악회장이 날씨가 무더워 당초 계획을 바꿔 A, B팀으로 나눠 산행을 한단다. 청장년(?) A팀은 당초 계획대로 포대능선을 타는 5시간 코스, 노년(?) B팀은 포대벙커까지 가는 3시간 보너스 코스란다. 체력에 맞춰 선택하란다. 만날 장소와 시간만 외우고 그 다음 산행은 일행의 뒤만 따라가리라 가볍게 마음을 먹고 출발지에 도착한 나는 A, B팀 중 어느 팀을 선택할까 잠시 망설이다, “산에 오르는 것은 하인들에게 시키고 그냥 구경만 하는 것이 낫지.” 농담을 던지고 B팀을 선택했다. A팀이 먼저 출발했다. B팀은 막 전철에서 내렸다는 연락을 한 지각생을 기다렸다. 나는 앞서 출발한 A 팀과 같이 출발을 하여 중간 중간에 쉬면서 느긋하게 산을 오르리라 맘을 먹고 회장에게 “먼저 간다.” 인사를 하고, 100m 앞쪽에서 무리를 지어 가고 있는 A 팀의 머리를 보며 따라나섰다. 40대 초반의 여인이 말을 걸어왔다. “도봉산을 처음 왔는데 어느 길로 가면 한두 시간에 등산을 마칠 수 있어요?” “아무 길이나 한 시간 쯤 오르다가 내려오시면 되는데…….” 나는 우문에 우답을 하고 여인을 건너다보았다. 등산화에 모자는 갖췄으나, 복장은 등산복 차림이 아니다. 여자친구 두 사람이 같이 산에 온 모양이다. 두 사람이 다 얼굴이 보얗다. 정말 초보 산행자인 모양이다. 여인과 대화를 나누느라 지체한 사이에 A팀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빠른 걸음으로 따라 가다보니 갈림길이 나왔다. A팀이 어느 쪽으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이동전화를 켜고 회장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저 어느 길로 가야 쉽게 산에 다녀올 수 있어요?” 좀 전에 길을 묻던 여인이 회장에게 다시 전화를 할까 망설이며 서있는 나에게 물어왔다. “네? 어느 쪽이나 비슷해요. 정상까지 다녀오시려면 대여섯 시간은 걸릴 거요.” “네? 그렇게 나요. 저희들 초보라서 그렇게 못 걸어요. 그냥 도봉산 좋다고 해서 한두 시간 걸을까 하고 왔는데. 선생님은 어느 쪽으로 가세요 도봉산 산행지도 그녀의 묻는 말이 나에게 같이 가자는 소리로 들렸다. 홍조를 띤 여인의 얼굴이 화사했다. A팀도 놓쳤는데 이 아줌마들하고 농담 따먹기를 하며 산을 오르는 것도 괜찮겠지 하는 유혹이 순간 머리를 흔들었다. “일행이 어느 쪽으로 갔는지 몰라 망설이고 있습니다.” 나는 솔직히 대답을 하고는 그녀의 미끼를 덥석 문 것 같아 마음이 간지러워졌다. 여인들은 내 눈치를 보며 내가 가는 쪽으로 따라올 기세였다. “오른 쪽으로 가시는 것이 더 편할 거요.” 나는 술집 여자들이 혼자 온 등산객을 유혹하여 자기 술집으로 데려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순간 났다. 그녀들이 꽃뱀같이 느껴져 여자들을 털어버리려 오른 쪽 길을 추천했다. 그녀는 오른 쪽 길로 들어서며 뒤를 힐끔힐끔 뒤돌아보았다. 그때 김 화백이 혼자 나타났다. “왼쪽이야 오른 쪽이야? 다른 사람은?” 나는 김 화백에게 물었다. “좀 있다 출발 할 것 같아 먼저 왔어. 모르겠는데, 그냥 만월암으로 간다고 한 것 같으니 왼쪽으로 가지.” 김 화백이 이정표를 보며 결론을 내렸다. 저만치 서서 내가 따라오기를 기다리던 여인들은 김 화백과 이야기를 나누는 나를 보고 갈 길로 가버렸다. 나는 꽃 새를 놓친 아쉬움과 꽃뱀의 유혹에서 벗어난 안도가 뒤섞인 묘한 기분이 되었다. 그냥 그녀들이 어떻게 하는가 따라가 볼 걸 하는 후회가 뭉클 가슴을 쳤다. 이 나이에 유혹에 빠져봐야 양주 한두 병 팔아주면 될 텐데……, 현직을 떠난 지 꽤 됐는데도 아직 현직에 있을 때 몸조심하던 버릇이 남아 옹졸한 짓을 한 것 같아 흰 웃음이 났다. 그녀들이 정말 등산 초보자 인지도 모르는데 선량한 여인들을 공연히 꽃뱀으로 오인한 죄를 진 것도 같았다. 마음을 비운다고 해놓고 아직 체면에 매달리는 것 같아 웃음이 나왔다. 도봉산 滿月庵 김 화백과 대화를 나누며, 초콜릿과 오이를 나눠 먹으며 쉬다가, 돌길을 걷고 계단을 올라 만월암자에 도착했다. 계단을 오르며 가빠진 숨을 몰아쉬며, 만월암자 취수장에서 호스를 타고 흘러나오는 물을 한바가지 마셨다. 돈을 주고 산 생수보다 훨씬 맛이 좋았다. 갈림길에서 오른 쪽 길을 택한 B 팀은 능선을 따라 걷고 있으며, 포대 벙커까지 갔다가 만월암으로 내려올 테니 기다리라고 김 화백에게 전화를 했다. 나는 암자의 처마 밑에서 망월암까지 설치된 계단을 올라 망월암 넓은 바위에 버티고 서서, 녹음으로 뒤덮인 계곡을 내려다보고, 바위들이 장관을 이룬 능선 올려다보며 산의 정기를 한껏 들이마시며 호연지기를 키웠다. 내가 길목을 지키고 있으니 나를 추월해서 올라갈 리는 없는데, 망월암에 오른지 20분은 더 지난 것 같은데 김 화백이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암자로 내려가 김 화백을 찾았다. 뜰이나 마루에 그가 보이지 않았다. 선방 안에서 스님과 몇 신도가 둥그렇게 둘러앉아 법어을 나누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디밀고 방안에서 김 화백을 찾았으나 그가 보이지 않았다. 스님이 방으로 들어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혼자 내려갔을 리는 없을 텐데 무슨 일이지, 혹시 하는 방정맞은 생각에 전신이 긴장됐다. 나는 계곡을 내려다보며 두리번거리다 취수장으로 갔다. 취수장 암벽에 기대어 스케치를 하는 선골(仙骨)의 김 화백이 보였다. 후유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나는 스케치하는 김 화백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위에서 기다릴게.” 신호를 보내고 다시 망월암으로 올라갔다. 나는 오가는 등산객들의 만태(萬態)를 멍청히 쳐다보다 무료해졌다. B 팀을 찾아갈까하고 나섰다. 포대 벙커까지 600m는 더 가야한다는 이정표를 보고 포기했다. 나는 쌍쌍으로 오르는 등산객을 보며 연인일까 부부일까 추측을 하기도 하고, 아무리 산속이지만 웃통을 벗으면 어떻게 해 하며 매너 없는 등산객을 속으로 나무라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한참 후에 김 화백이 장소가 불편하여 스케치가 어렵다는 애교 섞인 불평을 하며 나타났다. 김 화백이 준비해온 소주 한 병을 나눠 마셨다. 맑은 공기로 깨끗이 청소가 된 목줄기를 따라 빠른 속도로 알코올이 위장에 도착하여 찡하고 생을 확인하는 신호를 보내왔다. 알딸딸해진 기분을 타고 말이 저절로 나왔다. 주위 경관이 훨씬 아름답게 보이고, 알코올이 암놈을 그립게 하여 갈림길에서 놓친 여인들의 뽀얀 얼굴이 선하게 떠올랐다. 땀으로 목욕을 한 B 팀이 망월암에 도착했다. 간식을 반주로 정상주를 나눠 마시며 소년으로 돌아갔다. 옛일과 살아갈 날들이 뒤섞은 대화가 산정으로 불어오는 하늬바람에 실려 웃음꽃을 피웠다. 같은 해에 같은 대학에 입학한 인연을 맺은 지 반백년이 되어가는 친구들은 마냥 즐거웠다. 신선들 같이 해맑은 웃음을 함빡 웃었다. 친구들이여! 부디 건강하시라. 마음을 비우고 스트레스를 털고 항상 행복하시기를! 만장봉 서쪽에 있는 도봉산 오봉 < 조선닷컴 블로그에서 > |
'산 사랑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예산 가야산에서 (0) | 2008.03.05 |
---|---|
산이 날 에워싸고/ 박 목 월 (0) | 2008.02.18 |
즐거웠던 계룡산 산행 4 (0) | 2008.01.24 |
즐거웠던 계룡산행 3 (0) | 2008.01.22 |
즐거웠던 계룡산 산행 2 (0) | 2008.0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