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컨센서스, 20세기 세계를 좌지우지해온 미국의 패권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워싱턴에서 이뤄진 합의는 곧 세계 이슈를 이끌어가는 리더십을 발휘했기 때문에 이 같은 표현이 등장했다. 미국은 1ㆍ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군사력에서 최강국으로 등극했고 기축통화와 소비시장, 대외원조, 기술이전 등 `공공재`를 전 세계에 제공하면서 글로벌 리더십을 행사했다. 특히 1980년대 남미국가 부채 위기 때 미국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며 무역ㆍ투자 자유화, 규제 완화, 민영화 등을 밀어붙여 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되는 것을 막았다. 이때 등장한 개념이 워싱턴 컨센서스다. 그러나 2001년 `9ㆍ11테러`를 기점으로 미국 리더십은 약해지기 시작했다.
테러 피로감이 만연한 상태에서 2년 전 발화한 금융위기는 100년간 쌓아둔 미국 리더십을 허물고 말았다. 2008년 9월 제63회 유엔 총회에 유럽연합(EU) 대표 자격으로 참석한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미국은 제정신이 아니다"고 강력 비난하며 "세계 리더십을 대대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성토했다.
이후 미국 리더십은 실종됐고 각종 현안에서 고전 중이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악의 축`으로 규정한 이란과 북한 핵 문제에 개입했지만 국제 호응도 부족으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전통적인 우방 일본도 미국 리더십에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새로 들어선 일본 민주당 정권은 오키나와현 미군 후텐마비행장 이전 문제를 두고 미국 요구를 들어주지 않아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다. 미국 리더십 쇠락을 틈탄 일본의 반항으로도 해석될 정도다. 중국도 미국 리더십을 거부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직접 중국까지 찾아가 위안화 평가절상을 요구했지만 당당하게 거절당했다.
이처럼 워싱턴 컨센서스 힘이 떨어진 상황에서 국가별 특수성과 국가 주도를 강조한 `베이징 컨센서스`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중국은 지난 30여 년간 개혁ㆍ개방 정책을 추진한 후 연 10% 내외 초고속 경제 성장을 이뤄내면서 국제사회에서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EU가 부상했다. EU는 세계 주요 경제권 가운데 단연 최대 규모를 자랑하기 때문에 유력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2008년 기준 EU 국내총생산(GDP)은 18조3000억달러로 미국ㆍ캐나다ㆍ멕시코가 연합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16조8000억달러를 웃돈다. 그러나 중국과 EU 모두 글로벌 리더로 자리매김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낸 지 10여 년밖에 되지 않아 `소프트파워`가 부족하다. 특히 사회주의 체제 속에 강력한 중앙 집권을 표방하면서 소수민족과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인권 문제로 국제사회에서 비난을 받고 있다.
G2로 불리는 미국과 중국이 리더십을 공유하기도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차이메리카(Chimerica)`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니얼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는 "미국과 중국이 결국 결별하게 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