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감하게 개방적 혁신 모델 추구 공정성-사회적 신뢰 수준 몇단계 높여야 끝없이 이어지는 불황, 일본식 경영의 상징인 도요타의 위기, 국적 항공사 일본항공(JAL)의 침몰…. 한때 서구식 경영의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유력한 대안으로 주목받았던 일본식 경영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다. 일본 경제가 활력을 찾지 못하고 있는 데다 도요타 등 간판 기업들마저 위기에 처하면서 일본식 경영 전반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 52호(3월 1일자)는 일본 기업들의 변화 움직임과 한국 기업에 주는 시사점을 집중 분석했다. 주요 내용을 간추린다. 전통적으로 일본 기업들은 단기 성과보다는 장기 시장점유율을 중시하고 종업원을 우선시하며 종신 고용 및 연공서열 제도를 유지했다. 하지만 최근 전통적인 일본식 경영 스타일에 미국식 단기 성과주의적 요소를 도입한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일본전산으로 대표되는 일본 교토 소재 전자 부품 업체들도 전통적인 경영 모델에서 탈피해 개방적이고 수평적인 서구식 문화를 적극 도입했다. 대기업과 하청업체 간 수직적 계열 관계를 형성한 대부분의 일본 기업과 달리 교토 기업들은 독자적인 실력을 배양해 독립 기업으로 남았다. 그 대신 이들은 대기업과 대등한 입장에서 분업 관계를 형성하는 ‘탈(脫)계열화 노선’을 채택했다. 또 교토 기업들은 연구개발 비용을 분담하고 재고 위험을 낮추기 위해 수평적 분업 구조를 구축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산-관-학 클러스터’가 형성됐다. 수평적 파트너십 같은 서구식 요소가 도입되면서 교토 기업들은 불황 속에서도 좋은 성과를 냈다. 이처럼 선도적 일본 기업들이 서구식 기업 문화를 적극 수용하고 있는 이유는 일본식 경영 자체의 내재적 문제점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일본 기업들은 부서 간 갈등이 표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이는 개인보다는 집단을 중시하는 문화적 전통과 관련돼 있다. 일본 기업들은 갈등을 없애기 위해 합의 문화를 발달시켜 왔는데 특히 중간 관리자들의 역할이 강조됐다. 중간 관리자들은 동료와 상사, 부하 직원들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대립과 갈등을 사전에 조정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일본 기업은 이런 문화를 토대로 내부 갈등을 효과적으로 봉합했다. 특히 산업 사회에서 일본 기업들은 특유의 합의 문화를 바탕으로 집단의 역량을 극대화해 고도성장을 구가했다. 하지만 외부 환경이 급변하면서 일본식 경영의 장점이 퇴색됐다. 일본 기업이 내부 합의에 치중하는 동안 한국이나 서구의 경쟁 기업들은 파괴적 혁신을 지속하면서 시장을 잠식했다. 외부 환경이 급변하면 경쟁자의 동향과 시장 변화의 흐름을 파악하고 대처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진다. 그러나 과거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한 일본 기업들은 내부 의견조율에만 신경 쓰느라 외부 환경 변화에 둔감했다. 도요타와 JAL 등 굴지의 기업들이 최근 위기를 겪은 것도 이런 일본식 경영의 문제점과 관련이 있다는 지적이다. 엄격한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일본식 기업 문화도 과거 대량 생산 체제하에서는 최적의 모델이었다. 하지만 지속적인 변화와 혁신을 추진해야 하는 21세기 초경쟁 환경에서는 유연하고 활력이 넘치는 기업 풍토가 필요하다. 조직원 간 신속하고 활발한 정보 교류도 이뤄져야 한다. 따라서 일본식 경영은 초경쟁 환경에 적합하지 않은 모델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조영호 아주대 경영대학 교수는 한국의 기업 문화 특징을 ‘동적 집합주의(Dynamic collectivism)’로 요약했다. 한국 기업들도 일본처럼 조화를 중시하지만, 일본 기업에는 없는 역동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조 교수는 “‘동적 집합주의’가 한국의 고유한 기업 문화로서 제대로 평가받고 한국형 경영 모델로 확립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한국 TV 제조업체들이 내놓아 세계 시장에서 히트를 치고 있는 LED TV의 개발 스토리는 동적 집합주의가 잘 드러난 사례로 꼽힌다. LCD TV 두께가 130mm에 달하던 시절, “벽걸이 TV라고 해도 여전히 두껍고 무거워서 못을 여러 개 박아야 벽에 걸 수 있다”는 소비자 불만이 이어졌다. 이에 삼성전자 최고 경영진은 개발팀에 최대한 두께를 줄이라고 지시했다. 엔지니어들은 40mm가 한계라고 보고했다. 그러나 경영진은 “못 하나에도 걸릴 수 있게 ‘무조건’ 30mm 이하로 줄이라”고 밀어붙였고, 결국 개발팀은 사고의 전환을 통해 LED를 도입해 29.9mm TV를 내놓을 수 있었다. ‘무조건’을 들먹이며 최고경영자(CEO)의 의지를 강행하는 경영 스타일은 분명 과학주의, 전문가주의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미국 기업이나 중간 관리자들의 합의를 중시하는 일본 기업 문화와는 전혀 다른 한국 고유의 특징이다. 조 교수는 “일본과 미국식 경영 방식 모두를 결합해 21세기형 ‘섞음의 미학’을 풀어내는 것이 현재 한국 기업이 해결해야 할 숙제”라고 지적했다. 미국과 일본 문화를 잘 융합하려면 지금보다 훨씬 고도화된 감각이 필요하다. 무분별한 수용은 오히려 더 큰 위기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방적 혁신 모델을 통해 적극적으로 문호를 개방하되 성과주의처럼 자칫 동양 정서에 반하는 시스템을 도입할 때는 운용의 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조 교수는 “개방적 혁신 모델을 추구하려면 사회적 신뢰 수준 역시 지금보다 월등히 높아져야 한다”며 “공정성과 신뢰는 한국 기업의 선진화를 위한 필수 덕목”이라고 말했다. 김남국 기자 march@donga.com 이방실 기자 smi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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