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및 명글의 고향

아버지로 산다는 것/정세기

럭키홍 2011. 12. 8. 12:11

 

아버지로 산다는 것/정세기

잠든 아이를 보며
눈물 짓는 때가 있으니
어느덧 나도 내 아버지가 저승으로 떠난 나이
... 오늘은 직장 상사에게 꾸지람 받고
네 네 굽신거리고 돌아오는 길
도랑가에 앉아 생각느니
또랑또랑한 물소리가 아이 목소리로 들리지 않았던들
나는 도랑물에 돌이라도 하나 주워 던졌을 것이다
내가 좀 더 젊었더라면 술이라도 거후르고
달보고 짖는 개처럼 헛된 큰소리라도 쳤을 것
그러나 아버지가 된다는 것
도랑가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것
도랑물 위에 내리는 달빛처럼이나 고요해지는 것이어라
자식들아 내 아들 딸아
아버지라는 직업은 굴욕이 훈장이구나
밥그릇을 던져버리지 않는 것이 진정한 용기로구나
밥상에 둘러앉은 너희들의 재잘거림이
비굴마저 받아들이게 하는구나
애비는 오늘 도랑가에 한참이나 앉았다가
별빛처럼이나 맑아져서 돌아가고 있단다
비탈길도 아름답다 여기면서
더러는 눈물 반 웃음 반으로
달을 보며 허허로이 걷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