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산속 옹달샘(고전이야기)

고사성어 다시읽기 -검려지기(黔驢之技)

럭키홍 2011. 12. 9. 10:40

강혜근의 고사성어 다시읽기 -검려지기(黔驢之技)

자신의 솜씨와 힘이 없음을 모르고 뽐내다가 화를 스스로 부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당나라 때 유명한 문장가인 유종원(柳宗元)이 지은 '삼계(三戒)'에 나오는 말이다.

검(黔)이라고 하는 곳에는 본래 나귀가 없었는데, 한 호사가가 나귀를 배에 실어 들여왔다(黔無驢, 有好事者船載以入). 그러나 정작 나귀를 데리고 와 보니 쓸모가 없어서, 그냥 산 아래에 풀어놓았다(至則無可用, 放之山下).

어느 날 호랑이가 나귀를 보고 몸집이 매우 커서 신(神)이라고 생각했다(虎見之, 龐然大物也, 以爲神). 그래서 호랑이는 숲 속에 몸을 숨기고 몰래 나귀를 훔쳐보다가, 마침내 숲에서 나왔다. 그리고는 아주 조심스레 당나귀에게 다가갔으나 그 정체를 알지 못했다. 어느 날 당나귀가 울자 호랑이는 크게 놀라 멀리 숨어서(他日, 驢一鳴, 虎大駭遠遁), 나를 잡아먹으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매우 두려워했다.

호랑이는 계속 오고가며 나귀를 살펴보고 별다른 능력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然往來視之, 覺無異能者), 나귀의 울음소리에도 익숙해지자 더욱 가까이 접근했지만 끝내 감히 싸울 생각까지는 못했다(益習其聲, 又近出前後, 終不敢搏). 하지만 호랑이는 그 후에도 더욱 가까이 접근하여 부딪혀보고 기대어보고 쳐보기도 하고 비위를 거스르게 했다. 나귀는 이 때문에 화를 참지 못하고 호랑이에게 뒷발질을 했다(驢不勝怒, 蹄之). 호랑이는 이로 인하여 나귀의 능력이 별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자, 포효(咆哮)하며 뛰어올라 나귀의 목을 물어뜯어 끊어버리고 나귀의 고기를 다 먹고는 가버렸다.

검려지기를 떠올리게 하는 일이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작년에 북한이 연평도를 포격했을 때 우리 군의 K-9 자주포 6문 가운데 절반인 3문이 고장난 것이 대표적이다. 수륙양용으로 개발한 K-21 장갑차는 두 번이나 강 속에 잠기는 사고가 나서 한 명이 숨지기도 했다. 8년 동안 연구를 통해 개발한 신형 전투화가 물이 새고, 화생방 휴대용 제독기에도 하자가 발생했다. 강군(强軍)이라는 자부심이 무색하다. 국방(國防)과 꽃다운 청년의 생명을 담보(擔保)로 비리(非理)가 횡행하는 건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검(黔) 지방의 나귀 신세가 되지 않도록 스스로 돌아볼 일이 아닌가.

충남대 중문과 교수 ·공자아카데미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