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세계 제1차대전과 건망증

럭키홍 2014. 2. 11. 11:29

[김중위 곧은소리] 세계 제1차대전과 건망증

2014-02-11 18면기사 편집 2014-02-11 06:4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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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예보(Sarajevo)에서의 한 발의 총성!" 이 말은 세계 제1차 대전의 상징처럼 쓰여지는 말이다. 사라예보에서의 한 발의 총성이 없었더라면 전쟁이 안 일어날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으로 많은 사람들이 되뇌는 말이다. 100년 전인 1914년 6월 28일의 일이다.

19세기의 언덕을 넘어 20세기의 지평이 열리는 시기의 발칸반도는 '유럽의 화약고'라고 불릴 정도로 민족을 달리하는 국가 간의 첨예한 대립과 긴장이 마치 터지기를 기다리는 뇌관과 같은 형국을 하고 있었다. 러시아를 '큰 형님의 나라'쯤으로 여기고 있는 세르비아가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를 하나로 묶는 대(大)세르비아를 꿈꾸고 있었던 데 반해 오스트리아는 슬라브 민족의 단결을 저지하기 위해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를 병합시킬 수밖에 없었다. 세르비아인의 반(反) 오스트리아 감정은 하늘을 찔렀다.

그러던 차에 뇌관의 화약심지에 불을 붙이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이 바로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일어난 총성 사건이다. 황태자 페르디난드(F. Ferdinand)가 자신의 결혼기념일에 맞춰 부인 소피 코텍(Sophi Chotek)과 함께 보스니아에 주둔하고 있는 오스트리아 군(軍)을 검열하기로 한 것이다. 이 정보가 대세르비아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입수되었다. 재빨리 이들은 암살단을 꾸며 사전계획을 세우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날의 대공 일정은 서울 지리를 중심으로 말하면 이렇다. 우선 시청 앞에서 거행되는 환영식에 참석하고 나서 조선호텔 앞을 지나 신세계백화점쯤에 있는 사라예보 박물관을 관람하는 스케줄이었다. 프란츠 페르디난드 대공(大公) 부부를 태운 자동차는 이 일정에 따라 시청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첫 번째 범인은 권총이 뽑아지지 않았다. 두 번째 암살자도 암살을 포기하였다. 세 번째 암살자는 폭탄을 던졌으나 자동차 밖으로 떨어졌다. 대공 일행은 예정대로 시청 앞에서의 환영대회를 무사히 치렀다. 그러는 사이 보스니아의 치안 책임자들은 대공 일행의 일정은 예정대로 소화하되 그 경로는 예정과는 다른 길을 선택하도록 하였다. 조선호텔 앞의 좁은 도로를 지나 신세계쯤에 있는 박물관으로 갈 것이 아니라 시청 앞에서 길이 넓은 남대문 앞길로 해서 신세계 쪽으로 가는 것으로 방침을 변경한 것이다.

대공 일행의 자동차는 행사가 끝나자마자 또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자동차가 앞서 참모들이 진로를 변경한 남대문 쪽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원래 계획한 대로 길이 좁은 조선호텔 앞을 지나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대공 일행의 차 바로 뒤에 따라가던 보스니아의 장군이 앞차를 향해 소리쳤다. "이봐! 이 길이 아니잖아? 남대문 쪽으로 가게 돼 있어!" 그 얘기를 들은 즉시 운전자는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리고 후진기어를 잡아당겼다.

아! 그러나 운명이란 이런 것인가! 대공 암살에 실패했다는 자괴감에 빠진 범인들은 어디론가 모두 사라지고 홀로 남아 조선호텔 앞 가로수 그늘 밑을 맥없이 걸어 시청을 향해 내려오고 있던 20세 남짓한 청년 프린칩(G. Princip)! 그가 바로 대공을 태운 자동차와 일직선으로 대면하게 되었다. 순간 범인 프린칩은 권총을 빼들었다. 대공 일행을 향해 정확하게 두 발을 발사했다. 한 개의 총알은 페르디난드 대공의 목을 관통했고 또 하나는 대공비의 복부에 박혔다. 대공은 "소피! 소피! 죽지 마! 애들을 봐줘!"라는 말로 자신의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그 어떠한 계획도 이처럼 훌륭한 목표 포착을 가능케 해줄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한 사람은 미국의 사학자 요하임 르마크(Joachim Remak)였다. 독자들은 왜 자동차가 남대문으로 가기로 한 약속을 어기고 당초의 계획대로 조선호텔 쪽으로 가게 되었는가에 대해 궁금하지 않은가? 그것은 남대문 쪽으로 가기로 한 참모들끼리의 약속을 자동차 운전자에게만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건망증이었다.

이 사건이 터지고 난 다음 꼭 한 달 만인 7월 28일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에 전쟁을 선포했고 세계 제1차대전은 일어났다.

전 환경부장관 UN환경계획 한국부총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