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이야기

[사이언스칼럼]명량, 그리고 원자력 리더십의 조건

럭키홍 2014. 10. 20. 13:36

[사이언스칼럼]명량, 그리고 원자력 리더십의 조건
이재희 한전원자력연료 사장
▲이재희 한전원자력연료 사장
최근 이순신 장군을 다룬 '명량'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이순신의 리더십을 재조명하는 이른바 '이순신 열풍'이 몰아치고 있다. 영웅으로서의 면모 이면에 한 인간으로서 가질 수밖에 없는 고뇌와 두려움, 그리고 그를 극복하며 고양해 가는 진정한 리더십의 표상을 보여준다는 점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기 때문일 것이다.

수군혁파의 추상같은 명령에도 수륙병존만이 승리의 요체임을 꿰뚫는 냉철한 판단력, 아직도 12척이 있다는 긍정과 자기 확신, 두려운 적을 맞아 홀로 맞서 보여주는 솔선수범, 백성을 향한 충(忠)의 리더십은 사회각계의 인사들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원자력계에도 그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전 세계를 무대로 펼쳐지는 치열한 에너지 각축전, 그리고 이를 마주하고 있는 대한민국 원자력계의 현실은 이순신 장군이 하염없이 바라보았을 허망한 명량의 회오리바다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전 세계의 원자력계는 격랑에 휘말려 들었다. 독일이 원전폐쇄정책을 결정하고, 이탈리아의 원전 재가동계획은 국민투표에 의해 부결되었다. 잇따른 원전비리와 사고로 인해 국민적 불신마저 팽배해졌다. 일본이 '안전신화'에 대한 맹신으로 비참한 사태를 초래했다면, 우리는 일부 잘못된 관행과 구조적 문제로 인한 불신으로 위기를 초래했다.

물론 뼈를 깎는 반성과 자기성찰이 뒤따라야할 것임은 당연하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고 해서 원자력을 '위험사회'의 근원으로 치부하는 것은 곤란하다. 유럽은 한 나라의 부족한 전력을 타 국가로부터 공급받는 에너지공급망의 구축이 가능하다. 하지만 남북이 분단되어 지정학적으로 섬과 같은 한국의 여건은 이러한 공급망의 구축이 불가능하며, 충분한 전원을 갖추지 않은 채, 산업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다. 원전 위기의 진원지인 일본이 최근 안정적 에너지 수급을 위해 원전 재가동을 추진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공급의 안정성, 경제성, 환경적 측면, 안전성 등 모든 면에서 완벽한 에너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국가의 전원구성은 에너지원마다의 특성을 토대로 현실적이고 균형잡힌 에너지믹스 구조를 구축하게 된다. 부족한 육군만으로 단병접전에 강한 일본군을 상대로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듯이, 원자력을 포함한 다양한 전원구성을 통해 에너지정책의 실효와 국가경쟁력을 앙양시켜야 한다는 냉철한 판단과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하다.

또한 원자력은 여전히 중요한 기저 전원이며 국가경쟁력의 중요한 한 축으로서의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긍정과 자기 확신이 현재 위기를 겪고 있는 원자력계가 지녀야 할 중요한 리더십의 요체이다. 하지만 이는 원자력계가 최고 최선의 에너지라는 자아도취에 빠져야 함을 이르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리더십이 자칫 경직성과 폐쇄성으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솔선수범의 리더십, 국민과 함께하는 리더십이 수반되어야 한다. 개방, 공유, 소통, 협력을 근간으로 중소기업과 협력 및 상생의 생태계를 조성하고, 국민과 소통하고 공유할 수 있는 리더십, 윤리경영과 사회공헌을 통해 국민에게 사랑받고 존경받는 사회 주역으로서의 리더십을 지녀야 할 것이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말이 있다. 우공이 옮기려는 두 개의 큰 산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아흔을 넘긴 우공이 자신의 편의를 위해 산을 옮기려 했음이 만무하다. 이는 앞으로 살아가야 할 자식과 후손을 위한 고뇌에 찬 결단이었음이 분명하다.

어려운 시기, 원자력계는 주위의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도 에너지산업 주역으로서의 역할을 망각하지 말고 우직하게 그 소임을 다해야만 한다. 그것이 에너지 주체로서 원자력의 리더십이고, 국민에 대한 원자력의 팔로우십이며, 백성을 향한 충(忠)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중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