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하멜과 동인도 회사

럭키홍 2015. 1. 27. 15:29

 

 

작년 11월 말, KBS에서 방영한 역사저널 그날의 '하멜표류기, 네덜란드 청년 하멜 조선에 표류하다'편을 본 후 동인도회사에 대한 지인들의 질문이 많아 경영학자의 시각에서 등장 배경을 설명한 적이 있다. 하멜표류기는 어떤 내용이 숨겨져 있을까.

1653년(효종 4) 네덜란드의 무역선 스패로 호크(Sparrow Hawk)호가 풍랑으로 난파돼 선원 64명 중 36명이 제주도의 산방산(山房山) 앞 바다에 상륙했다. 이들은 체포돼 13년 28일 동안 억류됐다가 8명이 탈출했는데 귀국선의 서기인 하멜이 한국에서 억류 생활을 하는 동안 보고 듣고 느낀 사실과 조선에 대한 정보를 정리해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에 제출했고 이 자료가 책으로 출간된 것이 하멜표류기다.

그러나 필자는 너무나 아쉬웠다. 스패로 호크의 36명의 선원에게 선진기술과 정보를 배우지 않고 그들을 포로로서 대접한 점이, 1543년 포르투갈 난파선원들에게 조총을 배운 일본과는 대조적이기 때문이었다. 당시의 네덜란드는 세계 제일의 선진국이었으니 말이다.

철학자 니콜러스 머리 버틀러(Nicholas Murray Butler)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은 기업"이라고 했다. 기업은 많은 사람을 고용해 직업의 안정화를 이뤄 사회를 원활하게 한다. 보다 새롭게 혁신으로 매번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내 세계를 발전시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계 최초의 기업은 어디서 탄생했을까.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는 다름 아닌 1602년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 Verenigde Oostindisch Compagnie)다. 1600년에 영국의 동인도회사가 먼저 설립했지만 주식회사의 형태가 된 것은 1657년 이후였다. 대항해 시대에 포르투갈·스페인의 뒤를 쫓아 동방무역에 참가한 네덜란드는 1595년부터 1601년까지 '선구회사(Voor-Compagnieen)'라고 불리는 공동출자 형태의 회사를 만들어 65척의 배를 아시아로 보냈다. 여기에서 선구회사는 항해마다 청산되기 때문에 '당좌 기업(GelegenheitsGe Sellschaft)'이라고 불렸다.

당좌 기업을 포함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1602년에 특허장에 나타난 10년의 기간(물론 연장할 수 있음)을 갖는 '영속적 기업'으로 성립돼 '당좌 기업으로서의 선구 회사'와도 구별되면서 주식회사의 기원으로 보고 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논할 경우 등장하는 논리가 '근대 세계 시스템론'인데, 주창자인 월러스텐(Immanuel Wallerstein)은 모든 국가는 세계 시스템 내에 있고 어느 중심 국가가 생산·유통·금융의 모든 면에 다른 중심 국가를 압도하고 있는 경우 그 국가는 '헤게모니 국가(패권국가)'라고 불린다 했다. 월러스텐은 헤게모니가 네덜란드-영국-미국의 순서로 이어졌다고 주장한다.

단, 헤게모니는 항상 어느 국가가 잡고 있는 것이 아니고, 위의 세 나라의 경우 네덜란드는 17세기 중엽, 영국은 19세기 중엽, 그리고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후부터 베트남 전쟁의 시기에 헤게모니를 잡고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영국·미국이 헤게모니 국가였던 것에는 인정하지만, 네덜란드의 국가적 우위를 인정하지만 패권국가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는 아니라고 보는 학자들도 많다. 근대 세계 시스템의 특징에 기업, 주식 등의 자본주의를 예로 들고 있다고 한다면 이 논리는 근거가 있다고 생각한다.

패권국가든 아니든 네덜란드는 당시의 다국적기업인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통한 세계의 상품과 유통 그리고 주식을 움직이고 있었다는 점에서 강력한 국가였다고 평가된다. 17세기 세계시장의 중심지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강력한 네덜란드가 등장하게 된 요인은 글로벌시티로서의 암스테르담의 종교적 관용과 상인의 도전적 혁신 등의 당시의 새로운 글로벌적 요소를 포함했기 때문이다. 하멜표류기를 보고 나서 필자가 가장 아쉬워했던 점이 바로 이 점이고 이는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었기 때문이다.

이덕훈 한남대 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