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곡의 한마당

[대전일보-클래식 크루즈] 죽는 순간까지 악보에 쏟은 천재성/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럭키홍 2015. 6. 2. 15:27

[클래식 크루즈]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2015-04-14 B2면기사 편집 2015-04-14 05:30:54

 

죽는 순간까지 악보에 쏟은 천재성

독일의 국경근처에 위치하며 빈에서 서쪽으로 300㎞거리에 있는 잘츠부르크는 음악사상 최고의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1756-1791)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 생가 외에도 바로크 건축 양식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잘츠부르크성당을 비롯해 다양한 바로크양식의 건축물들이 많고 모차르트를 기념하여 '잘츠부르크 음악제'가 매년 개최되어 수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음악사에서 모차르트를 빼놓고는 이야기가 진행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만인의 스타였고 다섯 살의 어린 나이에 조약돌 같은 손으로 들려주는 피아노 연주는 어떤 드라마보다 드라마틱했다. 세 살에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고 다섯 살에 작곡을 시작하여 여덟 살에 교향곡을 작곡한 그에게 사람들은 천재라는 찬사로도 부족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천재여서 수 많은 대작들을 탄생시킨 것일까? 학자들의 분석에 의하면 모차르트는 아이큐가 160이 넘는다고 한다. 그럼 모차르트는 뛰어난 머리로 그냥 펜만 잡으면 작곡을 한 것일까? 그렇지가 않다. 당대의 유명한 작곡가들의 수 많은 곡을 사보하고 분석하느라 20대 후반이 되었을 때 모차르트의 손은 이미 기형이 되어있었다. 모차르트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그의 노력이 얼마나 진지했는지 느껴진다. '사람들은 내가 쉽게 작곡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아니라네. 친구여, 나만큼 작곡에 많은 시간과 생각을 바치는 사람은 없을 거네. 유명한 작곡가의 음악치고 내가 수십 번에 걸쳐 꼼꼼하게 연구하지 않은 작품은 하나도 없으니 말이야.'

160㎝가 될까 하는 키에 얼굴에는 천연두 자국까지 남아있는 결코 잘생겼다고 할 수 없는 외모의 소유자, 하느님은 공평한 것인지 모차르트에게 뛰어난 머리는 주었지만 잘생긴 외모까지 주지는 않은 것 같다. 모차르트가 평생 사랑했던 여인은 단 두 명뿐인데 그녀들이 자매라는 놀라운 사실. 모차르트는 언니 알로시아와 사랑에 빠졌지만 결국 동생인 콘스탄체와 결혼하게 된다. 3대 악처로 불리는 그녀지만 모차르트에게는 어여쁜 아내였고 작곡 열을 불타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결혼으로 정신적인 안정기에 접어든 모차르트는 대작들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현악 4중주곡', '피아노협주곡 D단조', '피아노협주곡 C장조',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36번 교향곡 '린츠'에서 41번 교향곡 '주피터'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은 모차르트의 음악에 열광했다.

세상 사람들은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가 대단한 부자라고 생각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당시 음악가들의 신분은 낮은 편이어서 작곡을 하거나 연주를 해서 벌어들이는 수입 또한 결코 많은 편이 아니었다. 왕족이나 귀족에게 받는 것도 비단 한 필, 작은 장식품 정도였다. 모차르트는 몸에 무리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작곡을 그만둘 수 없었고, 경제적 궁핍에서 벗어나고자 떠난 유럽 연주 여행은 모차르트를 오히려 빚더미에 앉게 했고 결국 파산에 이르게 했다. 어릴 적부터의 연주여행은 모차르트에게 다양한 음악사조를 익히게 해주고 수 많은 음악가들의 음악어법들을 배우는 등 작곡가로 성장하는데 좋은 기회를 주었지만 인간 모차르트에게는 결코 좋은 시간만은 아니었다.

비행기도 없던 시절 마차로의 긴 이동과 과도한 연주 스케줄은 그의 건강을 헤치는 결과를 낳았고 심장에 온 충격과 과다한 출혈로 35세를 일기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의 음악은 가슴에 남았지만 작품으로만 세상과 이야기한 모차르트를 생각하니 마음 한편이 측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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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윤 예술감독·목원대 작곡재즈학부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