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로동선(夏爐冬扇)
홍 종 승
삼동(三冬)을 이긴 보리는
이제 푸른 치마로 갈아 입고 있는데
지난 겨울 꽁꽁 얼은
마음 한 가닥 붙잡고, 아직도
나의 사랑방 한구석에서 졸고 있는 히터녀석,
대낮 서쪽 하늘에 걸려있는
몽매한 반달처럼
실 타래같은 하얀 눈으로 나를 보고 있다
방안 액자 속의 말 한마디
-일근천하무난사, 백인당중유태화( 一勤天下無難事, 百忍堂中有泰和)-
뇌 속에서 번쩍하는 순간
녀석은 붉은 보자기를 입고 벽 속으로 숨는다
철 지난 가죽잠바를 세탁소에 맡기고 나오는데
아파트 약수터에 가로등 하나 하얗게 웃고 있다
때도 모르고 분수 없이 웃는 실 없는 자슥
너도 이제 죽어야 한다
여름에 화로가 살고, 겨울에 부채가 사는 날에는
나도 살 길 찾아 가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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