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소련의 붕괴

럭키홍 2018. 6. 3. 16:13

[숨어있는 세계사]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 거대한 '소비에트 연방' 무너뜨렸죠

입력 : 2018.03.15 03:0 


[소련의 붕괴]

1922년 러시아 등 15개국 소련 결성, 1980년대에 공산주의 병폐 드러났죠
고르바초프 개혁·개방 정책 이끌자 소련 내 공화국들 독립 선언했어요

오는 18일 러시아에서 대통령 선거를 치러요.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는 블라디미르 푸틴(66·Putin) 현 러시아 대통령이지요. 그런데 얼마 전 푸틴 대통령이 공개 자리에서 "러시아 역사에서 가장 바꾸고 싶은 부분은 소련 붕괴"라고 말해 화제가 됐어요. 이에 외국 언론은 KGB(옛 소련의 정보기관) 출신인 푸틴이 러시아 국민의 애국심을 자극하고자 이런 발언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지요.

1991년 12월 25일 당시 소련 대통령이던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소련은 사실상 해체됩니다. 고르바초프는 자본주의 국가와 사회주의 국가가 서로 대립하던 '냉전(冷戰·cold war) 시대'를 끝내는 데 큰 역할을 한 인물로 1990년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지요. 오늘은 소련이 어떻게 붕괴했는지 살펴보기로 해요.

◇소련의 탄생과 병폐

소련은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s)'을 줄인 말이에요. 소비에트(Soviet)는 노동자·군인·농민 등으로 구성된 '대표자 회의'라는 뜻이었지만, 1917년 세계 첫 공산주의 정권을 세운 '러시아혁명'이 성공한 이후부터는 '공산주의 정권'을 의미하는 말이 됐어요.

1922년 12월 러시아를 비롯해 우크라이나·벨라루스·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그루지야(현재는 조지아) 등 여섯 나라가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을 선언하면서 이들을 한데 합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소련)'이 탄생합니다. 동유럽부터 북아시아, 중앙아시아에 걸친 세계 최초의 거대 공산주의 국가 연합으로, 나라마다 사회·문화·역사가 서로 달랐지만 경제 부흥과 공산주의 체제 수호를 위해 통합한 것이지요. 이후 소련은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타지키스탄·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 등 15개 공화국으로 확대됐어요.

1986년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가운데)이 동독을 방문한 모습이에요.
1986년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가운데)이 동독을 방문한 모습이에요. /위키피디아

1980년대 들면서 공산주의 국가들은 여러 가지 병폐를 드러내기 시작했어요. 모든 경제활동을 국가에서 정해준 대로 해야 했기 때문에 개인이나 기업의 자율성은 전혀 존중받지 못했지요. 그러다 보니 더 나은 기술을 개발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더딜 수밖에 없었어요. 또 집단적으로 일하는 노동 방식도 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욕을 끌어올리지 못했고 이는 사회 전체의 생산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제철·조선·기계 등 중공업 중심 경제 정책을 펴는 바람에 소비재(식품·의류·가구 등) 공업이 상대적으로 뒤떨어지면서 대중은 항상 생활필수품이 부족한 상황에 시달려야 했어요. 1980년대부터 동유럽 공산국가에서는 산발적 시위와 노동자 파업이 일어났지요.

1982년 소련 공산당 최고 지도자인 브레즈네프(1906~1982) 서기장이 사망하자 과도기를 거쳐 1985년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서기장 자리에 오릅니다. 이제 막 취임한 고르바초프 앞에 펼쳐진 소련의 현실은 참담했어요. 저조한 경제성장률, 근로 의욕이 없는 노동자들, 부족한 소비재로 인한 대중의 불만, 기술 혁신의 부재(不在) 등 개혁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지요. 고르바초프는 소련의 사회·경제적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경제 체제뿐 아니라 사회 체제의 대대적 변혁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어요.

◇고르바초프, 개혁·개방 정책 펼치다

"완벽한 공산주의 모델은 존재하지 않으며 누구도 진리를 독점할 수 없다. 한 국가의 장래와 그 체제는 그 나라 국민만이 정할 수 있다. 어느 나라도 다른 나라의 국내 상황에 간섭하거나 압력을 가해선 안 된다."

고르바초프가 취임 이후 '브레즈네프 독트린(선언)'을 폐기하며 한 말입니다. 여기엔 소련의 과거 체제와 이념을 바꾸려는 고르바초프의 개혁 의지가 잘 나타나 있지요.

그가 제시한 개혁 사상은 두 가지였어요. 첫째는 글라스노스트(glasnost·개방) 정책으로 연극·영화·출판에 대한 정부 감시와 검열을 최소화하고, 종교 활동이나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허용하는 것이었지요. 둘째는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개혁)로 사회·경제·외교 정책에 대한 공산당 정부의 통제를 풀고 공장의 생산력을 높이려 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노동자의 임금을 획일적으로 국가에서 정하지 않고 개별 노동자가 물건을 얼마나 만들었느냐에 따라 결정하게 했지요.

즉, 고르바초프는 개인의 자유를 확대하고 국가의 간섭과 통제를 줄여서 경제적 효율성과 국가의 이익을 높이려고 한 것이에요. 다만 그는 소련 내 개별 공화국을 존중하되 연방체제는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이런 고르바초프의 개혁 정치에 불만을 가진 세력이 있었는데요. 개혁이 너무 느리다고 비판하는 '급진파'와 개혁이 너무 빠르다고 비판하는 '보수파'가 대표적이었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 정책에 자극받은 소련 내 공화국들이 자유와 독립을 요구하기 시작합니다. 1989년 발트 3국(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라트비아), 그루지야, 우크라이나가 독립을 요구했고, 소련의 여러 공화국에서 독립을 위한 민족 운동이 펼쳐지기도 했지요.

1990년 3월 리투아니아가 독립을 선언하자, 고르바초프는 군대를 파견해 매우 강경하게 대응하기도 했어요. 한 공화국의 독립을 인정하면 다른 국가도 줄줄이 소련을 이탈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들불처럼 번지는 공화국들의 독립 요구를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결국 고르바초프는 각 공화국의 자치(自治·스스로 다스림)를 인정하는 새로운 연방안을 만듭니다.

1991년 8월 보수파 쿠데타에 맞서 시위를 벌이는 모스크바 시민들.
1991년 8월 보수파 쿠데타에 맞서 시위를 벌이는 모스크바 시민들.

그런데 1991년 8월, 기존 소련 체제를 그대로 유지할 것을 요구하는 보수파가 쿠데타를 일으켰어요.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반도에서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던 고르바초프는 현지에서 감금되고 말았지요. 보수파는 연방정부까지 장악했지만 당시 러시아 공화국 대통령이던 '급진파' 보리스 옐친의 반대, 러시아 국민의 격렬한 시위에 부딪혀 쿠데타는 실패하고 말았어요. 돌아온 고르바초프는 결국 여러 공화국의 자치 요구를 받아들였답니다.

보수파의 쿠데타 실패는 고르바초프의 개혁 정치에 반대하던 보수파를 몰락시켰지만, 역설적으로 소련 체제를 무너뜨리는 계기가 됐답니다. 1991년 8월 25일 마침내 고르바초프는 서기장 자리를 내려놓고 연방 중앙위원회를 해체한 뒤 발트 3국의 독립을 승인했습니다.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환호했지요. 이후 공화국 대부분이 독립을 선언하고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11개 나라(현재는 9개)가 '독립국가연합(CIS)'으로 동맹을 유지하기로 합니다. 자유와 독립을 갈망하는 역사적 흐름은 아무도 막을 수 없었던 것이지요.

☞브레즈네프 독트린(doctrine)

1968년 소련 공산당 서기장 브레즈네프가 주장한 외교 방침. 공산주의 진영에 속한 어느 나라가 생존에 위협을 받았을 때 이를 사회주의 전체에 대한 위협으로 보고 다른 사회주의 국가가 개입할 권리를 가진다는 원칙이에요. 한 나라의 주권과 이익을 사회주의 진영 전체를 위해 일정하게 제한해야 한다는 믿음을 바탕에 두고 있지요.


 

윤서원·이대부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박세미 기자

Hyung-YulCho(countrym****)
2018.03.1523:34:05신고
우리나라 빨-갱-이들은 공산주의도 아닌 날나리 건달패들이 정권 장악 하고나서 6.25이후 건설한 나라를 부패했다는 이유로 전복시키고 중공에 바치려하고 있읍니다. 미국을 자극하여 미국과의 상호방위조약을 무효화하여 국방력을 제거하려 하지만 성공해도 토사구팽으로 숙청 박헌영이처럼 간첩혐의로 형장의 이슬이되고국민들은 북돼지를 모셔야하는 중공의 한 부분으로 될 것 입니다
황영호(yhh****)
2018.03.1522:16:55신고
지상의 인류가 생긴이후 정치가로서 가장 으뜸가는 지상위인이 골바챠프이다 어느역사 어느시대를 막론하고 정치가로서 인류에게 이 위대한 인물보다 낳은 공헌을 한 인물은 없다
조민(joseph****)
2018.03.1509:35:04신고
좋은 역사적 교훈입니다. 남북분단의 대한민국의 젊은이들도 정확히 알아야할 기사네요.
김정선(jsk****)
모바일에서 작성2018.03.1509:20:33신고
역사를 정확하게 가르쳐주는 좋은 기사이다. 가능하다면 조선일보 인터넷판에서 역사교실의 범위를 확대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우리나라 역사에 관한 사실도 체계 있게 연재하고 이를 통해서 국민들에게 바른 옉사를 알리는데 앞장서면 나라를 위해서는 물론 조선일보를 위해서도 매우 좋을 것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