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마타하리-1차 세계대전 시 프랑스, 독일 이중 스파이

럭키홍 2018. 6. 3. 16:17

[숨어있는 세계사] 1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독일 넘나들던 '세기의 이중 스파이'

입력 : 2018.04.13 03:07

 


[마타 하리]

스파이 첩보전 치열하던 20세기 초
네덜란드 무희, 이국적 매력 이용해 고위층 대상으로 간첩 활동 펼쳤죠
최근 英·러 스파이 분쟁으로 재조명

얼마 전 영국에서 러시아 출신 스파이(간첩)가 독극물에 중독돼 의식을 잃는 사건이 벌어져 서구 세계가 발칵 뒤집혔어요. 영국·미국 등은 이 끔찍한 사건을 러시아 정부가 저지른 짓이라고 보고 이에 항의하는 의미로 러시아 외교관들을 대거 추방했답니다.

스파이란 다른 국가에 몰래 침입해 자기 신분을 숨기고 은밀하게 그 나라의 중요한 정보를 수집하는 사람을 말해요. 특히 20세기 초는 스파이를 통한 나라 간 정보 전쟁이 매우 치열했어요. 그중에는 '세기의 스파이'로 이름을 날린 마타 하리(Mata Hari)도 있었답니다.

◇이국적 미모로 이름을 날린 무희

마타 하리는 말레이어로 '태양'이란 뜻이에요. 그러나 이는 예명(예능인이 본명 외에 따로 지어 부르는 이름)이었고 실제 이름은 마르게르타 G 젤러(Zelle)였어요. 1876년 네덜란드의 사업가 딸로 태어난 젤러는 검은색 머리카락에 검정 눈동자, 이국적인 외모를 가진 여성이었어요. 1895년 네덜란드 직업 군인 매클라우드와 결혼하면서 남편의 부임지인 인도네시아 자바섬으로 이주했지요. 이후 인도네시아에서 7년간 결혼 생활을 하며 두 아이를 낳았어요.

남편과 불화를 겪다 1901년 이혼한 그는 유럽으로 돌아왔어요. 생계를 위해 1905년 '벨 에포크(좋은 시절)' 시대의 프랑스 파리 물랭루주(Moulin Rouge·당대 최고 유명 댄스홀)에서 무희(춤을 추는 댄서)로 활동을 시작한 그는 일약 사교계의 톱스타로 떠오릅니다. 아름다운 용모에 이국적인 매력을 한껏 풍겼던 마타 하리는 매혹적인 아시아풍 춤으로 사교계 인사들을 사로잡았어요. 자신의 신비로운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하려고 본명을 버리고 '마타 하리'라는 이국적인 이름도 지었지요. 자신이 자바섬에서 태어났으며 인도네시아 왕족과의 혼혈이라고 거짓말을 하기도 했어요.

1910년 프랑스 파리에서 무희로 활동하던 마타 하리의 사진. 동남아시아·인도풍 장신구를 찬 모습이에요.
1910년 프랑스 파리에서 무희로 활동하던 마타 하리의 사진. 동남아시아·인도풍 장신구를 찬 모습이에요. /위키피디아

대담한 춤으로 유명해지면서 마타 하리는 점차 프랑스 내 고위 인사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습니다. 프랑스의 군부 고위층, 유력 정치인들, 재계 유명인들뿐 아니라 네덜란드 총리, 프로이센 황태자 등 유럽의 뭇 남성들이 마타 하리에게 홀딱 반해 있었지요. 이처럼 마타 하리가 정·재계 고위층과 가까이 접촉한다는 것은 그가 중요한 정책 결정자들에게 접근해 기밀 정보를 빼낼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암시했지요. 마타 하리는 이때부터 영국과 프랑스, 독일 정보기관의 주목을 받는 '요주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마타 하리가 활동했던 20세기 초 유럽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어요. 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가 '삼국 동맹'을 맺고, 러시아·프랑스·영국이 '삼국 협상'을 맺으면서 양 진영이 서로를 견제하고 있었지요. 그러던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보스니아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 청년에 의해 암살되는 '사라예보 사건'이 발생합니다.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에 전쟁을 선포했어요. 그러자 오스트리아와 동맹 관계였던 독일이 전쟁에 끼어들었지요. 이에 세르비아와 가까운 관계인 러시아가 가담했고, 러시아의 동맹국인 영국·프랑스가 줄줄이 전쟁에 뛰어들었어요. 제1차 세계대전(1914~1918년)이 발발한 거예요.

◇독일·프랑스서 이중 스파이 활동

1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 마타 하리는 프랑스를 떠나 독일 베를린에서 무희로 활동하고 있었어요. 전쟁이 터지자 마타 하리는 프랑스로 가려고 했지요. 하지만 독일에서도 마타 하리는 독일 고위 관계자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영국·프랑스 정보 당국은 마타 하리의 프랑스행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봅니다. "독일의 스파이가 아니냐"는 것이었지요.

1917년 2월 파리에서 마타 하리가 이중(二重) 스파이 혐의로 체포됩니다. 프랑스와 독일을 오가며 양쪽에 기밀 정보를 건네는 간첩 행위를 했다는 게 프랑스 당국의 판단이었지요.

마타 하리는 "독일 정부로부터 스파이 제안을 받고 프랑스 고위층에 접근해 군사 기밀을 넘겨주는 대가로 2만프랑을 받았다. 하지만 제대로 된 활동은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어요. 실제 마타 하리가 프랑스의 중요 기밀 정보를 독일에 넘겨주었다는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지요. 그는 계속 무죄를 주장했지만 그의 결백함을 증언해줄 만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어요. 그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던 수많은 고위직 연인들은 어느 누구도 그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지요. 조국을 배반한 스파이로 함께 엮여 처형당하고 싶지 않았던 거예요.

마타 하리는 8개월에 걸친 심문과 군사재판 끝에 결국 총살형을 선고받았어요. 그리고 1917년 10월 파리 교외 뱅센에서 총살당하면서 마흔한 살 화려하고 굴곡 많았던 삶을 마감했지요.

지난 1999년 공개된 영국 정보기관 MI5 보고서에 따르면 마타 하리는 1914년 독일로부터, 1916년 프랑스로부터 각각 스파이 제안을 받아 이중 스파이로 활동했다고 해요. 하지만 세상의 기대와 달리, 마타 하리가 독일에 넘겨준 정보 중엔 그리 중대한 내용이 거의 없었고 프랑스에 건넨 독일 정보도 하찮은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어쩌면 그는 세계대전 첩보전의 희생양이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오늘날 그를 주제로 한 수많은 소설과 뮤지컬, 영화가 나올 정도로 마타 하리는 매혹적인 여성 스파이의 대명사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벨 에포크(Belle Époque)

프랑스어로 ‘좋은 시절’이라는 뜻으로, 1차 세계대전 발발 전 풍요롭고 화려했던 19세기 말~20세기 초 프랑스 파리를 가리키는 말이에요. 산업혁명으로 풍족한 자본가가 많아지고 예술과 문화가 꽃피면서 파리는 과거 볼 수 없었던 평화를 누렸지요. 거리에는 우아한 복장을 한 신사 숙녀들이 넘쳐났고, 물랭루주에서는 매혹적인 공연이 펼쳐졌으며, 레스토랑 맥심 드 파리에는 예술을 사랑하는 시민들이 모여 이야기꽃을 피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