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이야기

한국 자동차산업 전체 성장 고민해야....현대차와 기아차의 고민

럭키홍 2010. 3. 26. 08:52

          R&D투자도 소홀… 계열사에 납품 몰아주기 협력업체들 불만 고조

 

현대·기아차의 약진이 눈부시다. 작년 판매기준으로 포드를 제치고 4위, 영업이익으로는 세계 1위에 올랐다. 작년 글로벌 경제위기 등으로 전 세계 업체들이 잇달아 감산(減産)·구조조정에 들어갔지만, 현대·기아차는 2013년 생산목표를 2008년 418만대보다 56%나 많은 650만대로 잡았다.

그러나 현대·기아차가 약진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GM·도요타 등 기존의 자동차 1등기업들이 어떻게 위기를 맞게 됐는지 철저히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가톨릭대 김기찬 교수는 "현대차가 자체적인 경쟁력 향상을 통해 놀라운 실적을 거둔 것은 충분히 인정할 일이지만, 그동안 도요타·GM의 문제로 지적된 부분들이 현대차에도 전부 해당된다"며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 도요타·GM의 병폐 그대로 안고 있어

현대차는 급속 성장과 강력한 원가절감 측면에서 도요타보다도 심하다는 평가다. 또 엄청난 내수점유율에 따른 '부작용'은 과거 GM의 문제점과 비슷하다.

도요타가 이번에 대량 리콜사태를 맞은 원인 중 하나는 2000년 후 급격한 해외생산 증가를 품질관리 능력이 따라가지 못한 것을 꼽는다.

현대차 전주공장이 상용차 출고를 위해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현대차는 2013년에 버스·트럭 등 상용차 20만대를 포함, 글로벌 생산·판매 650만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블룸버그뉴스
도요타는 2002년부터 5년간 56% 생산량이 늘었다. 현대차는 같은 기간 55% 늘었다. 도요타와 마찬가지로 거의 100% 해외생산 증가에 따른 것. 일본의 한 자동차담당 기자는 "도요타는 2000년부터 글로벌 마켓셰어 15%, 즉 전 세계 7000만대 시장에서 1000만대를 차지하겠다는 '팽창정책'을 추진했다"며 "그 전개 과정이 지금의 현대차와 놀랄 만큼 비슷하다"고 말했다.

현대차의 위기 가능성은 '4P가 바뀔 때 조심하라'는 자동차 업계의 격언에서 알 수 있다. 제품(Product), 생산공장(Place), 인력(Person), 생산공정(Process) 중 하나라도 크게 바뀌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 그런데 현대차는 4P가 한꺼번에 바뀌고 있다는 게 걱정스럽다고 업계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게다가 동시다발적인 신기술 도입도 불안요소다. 현대차의 종합연구개발센터인 남양연구소의 한 중간급 임원은 "최근 엔진·변속기는 물론 각종 전자제어 분야에서 '최고·첨단'만 강조하다 보니 연구원들 사이에서 충분히 숙성되지 않은 제품이 시장에 나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고 했다.

◆현대차, 도요타와 같은 리콜 위기 때 생존 장담 못해

국내 자동차업계 고위임원은 "도요타는 리콜 사태로 위기에 처했어도 '시스템 경영'이 살아 있기 때문에 재기한다"면서도 "현대차는 시스템 대신 오너의 리더십과 사람으로 움직이는 조직이라 스피드와 추진력이 탁월한 반면, 해외시장에서 도요타와 같은 위기를 맞으면 회복이 더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또 80%에 달하는 현대·기아차의 내수점유율이 한국 자동차산업은 물론 현대차에도 결국 독(毒)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GM은 미국에서 최고 점유율(52%)을 기록한 1962년부터 파국이 시작됐다. 만들기만 하면 사주는 시장이 GM을 고객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고, 노조와 경영진을 썩게 하고 경쟁력을 좀먹었다는 것이다.

현대·기아차의 작년 내수점유율은 80%였다. 이 같은 압도적 점유율은 생산 분야 노사관계는 물론 판매·정비 노사관계까지 악화시켰다. 한국소비자원 김종훈 부장은 "고객서비스의 최전선인 판매·정비 분야조차 '서비스 개선 안 해도 판매는 어차피 잘 된다'는 안이한 의식이 팽배해 있다"고 말했다. 개인의 실적이 엉망이어도 급여·고용이 보장되고, 점유율도 80%인데 뭐가 문제냐는 식이다.

◆한국 차산업 전체 성장 고민해야

현대차가 한국의 자동차산업 역사를 일궜고, 사실상 한국의 '자동차 부품산업'을 만들어냈다는 것은 분명 인정해야 한다. 현대차의 글로벌 약진은 국가적인 자랑거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는 현대차와 한국 자동차산업이 공영(共榮)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우선 시장을 왜곡시킨다. 현대·기아차는 아반떼급 이하 차종을 만들어서는 국내에서 수익을 내지 못한다. 따라서 세계적인 소형차 붐에도, 현대·기아차는 차종을 끊임없이 대형·고급화해서 값을 올려왔다. 한국 소비자들이 고급·대형차를 선호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완성차업체가 이를 조장한 부분이 분명 있다는 얘기다.

부품업계의 장기 경쟁력도 손상되고 있다. 한 부품업체 사장은 "현대·기아차는 협력업체가 겨우 죽지 않을 만큼만의 영업이익만 보장하고, 나머지는 부품단가 인하 요구 등을 통해 전부 가져간다"며 "협력업체가 기술개발로 경쟁력을 키우는 건 꿈도 못 꾼다"고 했다. 현대·기아차 외에는 납품할 곳이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에 불만이 쌓여도 '대안'이 없다.

국내 1위의 부품업체인 현대차그룹 계열사 현대모비스는 작년 매출 10조원에 영업이익은 1조4000억원이 넘었다. 그러나 이 회사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는 1%에 불과하다. 글로벌 부품업체 대부분이 7~9%인 것에 비하면 턱없이 낮다. 스스로 연구개발은 덜 하면서 국내 협력업체들로부터 이익을 빨아들였다는 얘기다.

현대·기아차가 계열 부품사에 핵심부품 납품을 몰아주면서 '계열 부품사'와 '비계열 부품사'의 매출과 영업이익률 격차도 심각해지고 있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현대모비스·위아 등 현대·기아차 계열 11개 부품사의 작년 상반기 평균 영업이익률이 10%에 달한 반면, 같은 기간 비계열 부품 대기업 상위 31개사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2%까지 떨어졌다.

자동차산업의 수준은 부품산업이 결정한다. 따라서 현대차와 계열부품사 이외의 한국 부품산업이 고사(枯死)하게 되면 현대차에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자동차산업 전반이 흔들리게 되고, 결국은 현대차의 경쟁력에도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