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사랑한다는 사실보다 좋아한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바다에서 풍알을 만난 어느 난파선에서 살아남은 한 쌍의 남녀가 절해의 고도에 표류해 왔다고 생각해보자. 시간이 가면서 이 둘은 서로 사랑하게 될 것이다. 남녀간의 사랑이란 극히 자연발생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는 정신적 육체적 모든 면에서 서로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사랑으로 출발한 남녀가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를 좋아하게 되느냐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가 된다. 좋아할 수 있는 조건이 사랑할 수 있는 조건보다 더 어렵다는 말이다.
사춘기 시절에 외모만 보고 이성을 흠모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열렬히 구애하여 결혼하고 살다가 얼마 안 가서 상대방이 싫어지는 일이 생긴다. 내면적인 세계, 취미와 정서, 더 나아가 인격과 가치관.. 이런 깊이를 가진 세계가 시간이 흐르면서 드러난다. 처음에는 나타나지 않던 이런 내면세계가 시간이 흐르면서 그 사람을 좋아할 수 있거나 혹은 싫어할 수 있게하는 요소로 작용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좋아할 수 있게 하는 요소는 사랑할 수 있게 하는 요소보다 더 복잡하고 차원이 높다. 인간은 강제결혼이 아닌 이상 누구나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하고, 그래서 사랑이 먼저 온다. 그러나 "내가 상대방을 진심으로 좋아하는가?" 하는 문제는 결혼 후 세월이 흐르면서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