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이야기

송재용 교수의 스마트 경영전략

럭키홍 2010. 4. 5. 16:49
경제
위클리비즈

[Weekly BIZ] [송재용 교수의 스마트 경영전략] 혁신·원가절감 원하는가? '클러스터'에 해법이 있다.

                                                                                                       송재용 서울대 경영대 교수

 

실리콘 밸리·할리우드·대덕 과학단지… 최고수준의 인재·노하우·기업들 모여 있어
그들과의 '협력·경쟁' 자연스럽게 혁신 촉진… 인력·서비스 확보 쉬워 원가절감에도 유리

교통·통신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고 글로벌화가 급진전된 21세기에도 기업들의 클러스터로의 집적화는 지속되고 있다. 21세기 글로벌 경제 시대에도 왜 클러스터는 여전히 중요하며, 기업의 전략 수립에 있어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

#1 삼성전자는 왜 기흥, 화성 지역에 차세대 반도체 공장을 짓는가? 중국이 반도체의 세계 최대 수요처로 부상했고, 중국 정부가 공장 유치에 총력을 기울였음에도 말이다.

#2 실리콘 밸리(Silicon Valley)는 교통 혼잡과 높은 땅값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 세계 IT 기업들이 몰려든다. 왜 그럴까? 그리고 IT산업에서 획기적인 혁신은 왜 실리콘 밸리 기업들에 의해 주도되는가?

두 가지 의문에 대한 해답이 모두 이른바 클러스터(cluster)와 관련이 깊다. 클러스터란 비슷한 업종의 기업, 대학, 연구소들이 한 지역에 모여 있는 것을 일컫는다.

인터넷이 확산되고 교통·통신이 발전해 글로벌화가 진전된 21세기에도 기업들의 클러스터로의 집적화는 지속되고 있다. IT산업의 실리콘 밸리, 영화업의 할리우드, 바이오산업의 보스턴, 투자금융업의 월가가 대표적 사례이다. 한국에도 대덕 과학단지가 있고, 울산과 거제도의 조선단지가 있다.

클러스터의 중요성은 일찍이 19세기 후반 경제학자 앨프리드 마셜(Alfred Marshall)에 의해서 제기됐지만, 그 뒤 주류경제학에서는 오랫동안 외면받았다. 클러스터론이 제기하는 입지의 중요성은 주류경제학에서는 사각지대로 남았다. 그러다가 최근 폴 크루그먼(Paul Krugman)이나 마이클 포터 (Michael Porter)와 같은 세계적 석학들에 의해 재조명되고 있다.

클러스터의 이점은 무엇인가? 연관 기관들이 클러스터에 모이게 되면 무엇보다 '집적화(集積化)의 이익(agglomeration economies)'을 향유할 수 있다. 클러스터에는 다양한 유형의 인재들이 몰려든다. 각종 원·부자재를 공급하거나 법률·컨설팅 등 전문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협력업체들도 모인다. 이로 인해 기업은 필요 인력이나 원·부자재, 서비스를 탐색하고 확보하는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클러스터가 혁신의 촉진자가 된다는 점이다. 클러스터에는 혁신에 필요한 지식을 제공하는 연구 중심 대학이나 전문가 집단이 모여 있고, 혁신에 필요한 지식이나 부품, 소재를 제공하는 협력업체들도 모여 있다. 따라서 이들과의 긴밀한 협업을 통해 혁신의 성공률과 속도를 높이는 개방적 혁신(open innovation)이 가능해진다. 또한 클러스터에는 많은 경쟁 기업들이 몰려 있기에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혁신을 해야 한다는 압력도 강하기 마련이다.

경쟁력의 원천이 혁신을 통한 차별적 기술 등 무형자산 위주로 옮겨가는 지식 기반 경제가 도래하면서 클러스터의 순기능도 전통적 원가 절감보다 혁신을 촉진하는 측면이 부각되고 있다.

더욱이 클러스터 내에서 개발된 지식은 클러스터 밖으로는 잘 확산되지 않고 클러스터 내에 남아 있는 특성을 지닌다. 필자 등이 행한 연구에 의하면 실리콘 밸리 등 세계적 클러스터에 모인 유능한 인재들은 높은 연봉과 자기 발전 기회, 교육 문제 등으로 클러스터 밖으로의 이동을 꺼린다. 따라서 인재 이동을 통한 클러스터 밖으로의 지식 이전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클러스터에서는 세미나가 빈번히 열리고 공식·비공식적 교류 기회도 많아 역내에서는 지식의 이전이 보다 신속하고 높은 수준으로 일어난다.

따라서 기업이 클러스터에 축적된 최고 수준의 인재와 지식을 확보하고 이를 토대로 혁신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클러스터 내에 혁신 거점을 설치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진다. 삼성의 경우 1980년대 초반 메모리 반도체 산업 진입과 동시에 실리콘 밸리에 대규모 연구소를 설립해 주로 유학생, 교포 출신의 현지 엔지니어들을 대거 고용했다. 이 연구소는 최신 반도체 기술을 빠르게 흡수해 이를 혁신적 신제품 개발에 활용하게 함으로써 후발 기업이었던 삼성이 단시간에 세계 1등 기업으로 등극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스위스의 세계적 제약업체인 노바티스(Novatis)가 세계 제약, 바이오산업의 중심이며 세계적인 병원들이 몰려 있는 미국 보스턴으로 중앙연구소를 이전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최근 삼성전자가 중국 대신 기존 거점인 기흥, 화성에 차세대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기로 한 것도 클러스터의 이점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반도체산업은 인건비 비중이 미미하며, 엔지니어나 작업자들의 높은 숙련도와 경험, 그리고 최신 장비를 기반으로 한 높은 수율이 원가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지속적 혁신을 통해 차별적 제품을 먼저 개발하고 원가도 절감하기 위해서는 최고 수준의 인재와 지식, 노하우, 협력업체가 몰려 있는 기존의 클러스터를 활용하는 것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물론 중국으로 첨단 공장을 이전할 경우 기술 유출의 가능성도 우려했을 것이다).

혁신 지향적 기업일수록 세계 주요 클러스터에 R&D 등 핵심 거점을 두거나, 아니면 삼성전자처럼 스스로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발전시켜 왔다. 물론 클러스터에 위치함으로써 비싼 인건비나 땅값을 감수해야 하고, 지식 유출로 인해 피해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긍정적인 측면은 이를 상쇄하고도 남는다.

세종시 논란이 뜨겁지만, 기업이 순수히 경영 차원에서 세종시 입주 여부를 판단한다면 정부가 제공하는 인센티브의 내용 못지않게 세종시가 실리콘 밸리와 같은 과학 기술의 클러스터로 발전할 수 있을지가 핵심적 검토 사항일 것이다.

국경의 의미가 없어진 글로벌 시대라지만 기업의 전략 수립에서 입지(立地)에 대한 고려는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