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이야기

富者 나라, 가난한 나라 어디서 갈라지나/송희영 주필

럭키홍 2014. 10. 21.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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富者 나라, 가난한 나라 어디서 갈라지나

송희영 주필
송희영 주필
왜 잘사는 나라와 못사는 나라가 갈라졌을까. 많은 사람의 궁금증이자 경제학자의 연구 대상이다. 같은 시대 유럽의 식민지였던 중남미는 궁핍한 국가들로 가득 찼고 미국은 풍요로운 나라가 되었다. 그들은 어디쯤에서 다른 길을 갔던 것일까.

산업혁명 초기 프랑스와 영국은 똑같이 가난했다. 옆에는 네덜란드·스페인·이탈리아 같은 부자 나라들이 있었다. 잘사는 이웃들을 보며 영국에서는 명예혁명(1688년), 프랑스에선 시민혁명(1789년)이 발발했다. 두 혁명 사이에 100년의 시간 차가 있었다곤 해도 왕의 지배 아래 의회가 등장한 정치 체제는 같았다.

인류 역사에서 부국(富國)과 빈국(貧國)을 가장 극적으로 갈라놓은 산업혁명은 영국이 주도했다. 당시 영국은 프랑스보다 국민의 세금 부담이 두 배나 무거웠다. 경제학자들은 재산권을 보호하는 것이 부(富)를 축적하도록 자극해 경제가 성장하는 원동력이 된다고 말하지만, 그때 영국엔 재산권을 보장하는 장치가 허술했다. 오히려 지금의 중국처럼 국가가 개인 재산을 강제 수용하는 일이 잦았다.

영국의 강점은 국가 정책을 추진하는 권한이 의회에 맡겨진 것이었다. 영국 의회는 만백성의 지지로 탄생한 것도 아니었다. 잉글랜드 지역의 유권자 숫자는 전체 인구의 3~5%밖에 되지 않았다. 민주 선거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소수(少數)를 대표하는 의원들이 정책을 결정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기업 활동에 필수적인 은행을 만들었고, 귀족들이 운하(運河) 같은 거대 국책사업을 반대해도 토지를 강제 수용할 수 있는 법을 제정했다. 왕의 명령에도 지중해 근처 프로방스에서 귀족 세력의 반발로 농업용 수로(水路)조차 뚫지 못하던 프랑스와는 전혀 달랐다.

경제를 위해서는 권력을 대통령 또는 국회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당시 영국 의회의 권력은 강했지만 그렇다고 선전(宣戰) 포고를 하는 왕권을 거부한 적이 없었다. 의회가 왕과 공존하면서 '된다, 안 된다'는 정책 결정을 빠르게 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성공한 영국의 경제 모델을 그대로 베껴 갔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가운데 한 명이자 초대 재무부 장관인 알렉산더 해밀턴은 '제조업에 관한 보고서'(1792년)에서 영국이 공업혁명을 선도하는 비결을 요약했다. 한국식 표현으로 보면 평준화 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대중교육을 확대하자고 했고, 기업 자금줄인 은행 설립과 운하·항만 같은 인프라 사업을 제안했다. 결정은 의회가 신속하게 내렸고 신생국가 미국은 곧 섬유 산업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했다.

정책 결정 방식은 산업화 물결이 동양으로 밀려오면서 달라진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후 통산성을 중심으로 형성된 경제 관료 집단이 정책 결정을 내렸고 의회는 거수기 역할에 그쳤다. 한국도 관료들이 주도했다. 중국은 모든 결정을 공산당에서 내렸다.

영국과 미국은 번갈아가며 세계 최강의 국가가 됐다. 일본·한국·중국은 그런 전략을 뒤따라가며 꽁무니 추적(追跡)에 일단 성공하고 있는 듯하다. 어느 나라가 세계 최강으로 부상할지는 불투명하지만 이만큼 잘살게 되기까지는 국가의 진로를 정하고 결단을 내려주는 선도(先導)세력이 있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일본 공업화는 15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한국은 60년, 중국은 30년 같은 길을 달려왔다. 동북아의 제조업 혈투(血鬪)는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철강·조선·전자·석유화학 등 중심 업종에서 물고 물리는 싸움이 처절하다. 세 나라 경제는 어깨동무하고 있는 부분도 있지만 정책을 결정하는 지휘탑과 결론을 내리는 속도가 달라 10~20년 후면 승패가 분명하게 갈릴 수밖에 없다.

이번 전쟁에서 밀리는 나라는 아프리카·인도·중남미처럼 가난한 나라로 추락할 것이다. 왕족·귀족·농장주 같은 집단의 반대에 부닥치면 국가 현안에 대한 결정을 미루고 우물쭈물하는 것이 가난한 나라들의 공통된 병(病)이다. 우리 국회는 언제나 결정이 늦다. 공무원들은 정치권 눈치나 보는 구경꾼이 됐다. 세월호 수습, 송전탑·원전 건설은 물론 사소한 규제 철폐에도 지겨울 만큼 지루한 시간을 보내지 않는가. 동북아 세 나라 가운데 가장 고치기 힘든 몹쓸 병에 걸렸다.

산업혁명 초기의 영국이나 일당(一黨) 지배의 중국을 보라. 민주국가인가, 재산권을 제대로 보호해주는가, 세금이 낮은가 하는 요소들은 잘사는 나라를 결정짓는 필수 요건은 아니다. 시대 변화에 따라 유연하면서도 신속하게 결정해주는 의사 결정 체제를 갖추었는가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독재자(Dictator)'란 단어는 로마시대 한때 좋은 뜻으로 사용됐다. 국가 정책이 진영 간 대립으로 혼돈에 빠졌을 때 의회가 독재자를 지명해 6개월 임기 동안 전권(全權)을 행사하도록 했다. 독재자가 내린 결론은 의회도, 행정부도 거부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우리가 지금처럼 서로 뒷다리 잡으며 질질 끄는 상태가 계속되면 국민은 로마의 현명한 독재자를 점점 더 그리워할 것이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