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밭 가꾸기(시 창작방)

지중해의 나라 터키 이스탄블을 가다

럭키홍 2012. 9. 6. 13:46

                                                                                                                                                                                                             

-      지중해의 나라 터키 이스탄불을 가다 -

 

지구의 중심이라 주장하며 나라 이름을  붙인 나라가 우리 곁에 있는  中國 이라면, 바다의 중심이라 하여 붙인 이름이 地中海이다. 가운데 中 의 의미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하는 말이다.  

가슴 설레이며 맑고 눈부시도록 푸르른 지중해 바다의 신비가 가슴에 가득 찬   열대의 나라 지중해 연안 국가를 향해 우리 비행기는 힘찬 엔진 소리를 내 품으며 한반도 상공을 날아 고비 사막을 힘차게 날아갔다.  

부부가 함께 모처럼 가는 여행이라 마음도 가벼웠고, 그 동안 같이 살며 미지의 곳으로 떠난다는 것은 삶의 청량제요, 사랑과 이해의 오아시스가 된 것 같았다.   

지금부터 17년 전 미국 핵연료 회사에서 기술 연수 시 가족과 함께 살며 미국 내를 여행했던 경험 외에는 아내와 함께한 외국 여행은 이번이 두 번째인 나는 혼자서 회사 업무로 세계 곳곳을 출장을 다녔지만 이번 같이 아내와 오붓하게 떠나는 여행은 마치 신혼여행을 떠나는 기분 같기도 하고 마음이 가벼워 좋았다.   

그 동안 삶에 지쳐 나누지 못한 이야기를 상공에서 나누며, 앞으로의 노년의 건강한 삶을 설계하며 힘든 줄 모르고 장장 11시간을 날아가 도착한 곳이 터키 이스탄블 이다.   

 이스탄블 !    

그 옛날 실크 로드를 따라 히말라야의 높은 계곡을 넘어 중앙아시아의 사막을 거쳐 유럽을 향에 걷다 보면 마지막으로 닿는 아시아의 마지막 정거장이 이스탄불이다.

로마제국 시절에는 콘스탄티노플 이었던 이 도시는 한때 전세계의 중심지였으며, 동서양의 문명이 공존하는 메트로폴리탄이었다.

서구의 삶과 동양의 전통적인 삶이 공존하며 최신식 현대 건물들과 예술성이 뛰어난 오래 된 건물들, 터키 전통양식의 건물들, 비잔틴 과 로마시대에 세워진 대표적인 유적들이 한곳에 모여 있는 곳이다.

 

나는 떠나기 전 여행관련 책과 인터넷 조사를 하여 조금은 알고 떠났지만 유구한 역사 속에 흘러온 터키의 문화를 이해 하기는 어림도 없이 미미한 조각에 불과함을 느끼며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열심히 들었다. 머리에 경련을 일으킬 정도로 두뇌는 무거웠다.

제일 먼저 들린 곳이 역대 술탄( 터키말로 왕을 의미) 들의 거주인 "톱카프 궁전(Topkapi Palace)과 보석관" 이다.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킨 오스만제국의 술탄인 마흐메드 2세가 1479년 세운 이 궁전은 400여 년 동안 역대 술탄들이 주로 머물던 곳이다. 이 궁전은 할라치 항구와 보스포러스 해협( 마르마해), 말마라 바다를 바라보는  반도의 가장 높은 곳에, 한때 비잔틴 제국의 아크로폴리스가 있는 곳에 세워졌다.

궁전의 넓이는 서울대 면적 보다 조금 작은 70만 평방 미터이며, 5Km 에 달하는 성벽으로 둘러 쌓여 있다이 궁전은 전형적인 터키 양식의 궁전 건물로써 일정하게 만든 몇 개의 내부 정원과 그늘을 제공하는 많은 나무들이 있다. 이 궁전이 오스만 제국의 술탄들의 공식 궁전으로 사용되고, 아울러 술탄과 가족들의 거주지인 동시에 제국을 통치하는 행정중심지이기도 하였다. 또한 제국의 화폐 주조장인 동시에 문서 보관소였고, 술탄과 정부의 대학으로 제국의 최고 고등교육기관이기도 하였다. 오스만 제국의 심장부이자 뇌관이기도 한 곳이다

 언뜻 중세 유럽의 어느 성채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탑이 인상적인 입구를 지나며 나타나는 것이 하렘(Harem) 이다. 하렘의 원래 뜻은 ‘금지된’, 혹은 ‘성스러운’을 의미하는데, 남자는 술탄과 그의 자식들인 왕자들만 출입할 수 있었다.  

하렘은 대부분 이방인인 일반 궁녀들이 머물던 집과 총애를 받는 후궁들이 살던 집, 그리고 술탄과 그의 가족들이 살던 집으로 나뉘어 있다. 복잡한 복도들을 따라가 보는 하렘은 호사스러운 터키 왕의 사생활을 훔쳐보는 것 같은 묘한 기분까지 들게 한다. 하렘 외에도 궁전 안에는 여러 정자와 문이 아름답고, 특히 절대 빼놓으면 안 되는 진귀한 구경거리들은 궁전 주방과 왕실의 귀중한 전시품들이다.

나는 술탄이라는 말을 들으며 설명을 듣고 있노라니 제국의 왕들이 하렘에서 어여쁜 후궁들과  술마시며 즐기다 보니  나라가 탄탄하지 못해  오스만 제국의 국력이 쇠퇴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면서 인류역사에 빼 놓을 수 없는 술과 여자라는 단어와 傾國之色 이라는 사자성어를 떠 올리기도 하였다.

  톱카피 궁전 다음으로 간 곳은 술탄 아흐메드(Sultanahmet) 지구이다.  유명한 소피아 성당(Hagia Sophia)과 블루 모스크(술탄 아흐메드 모스크)가 있는 곳이다.

동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에 의해 537년에 건축이 시작된 이곳은 당시 기독교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으로 명실상부한 비잔틴 제국의 상징이었다. 그러다 15세기에 오스만제국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된 뒤에는 이슬람의 첨탑인 미나레와 정원들, 궁묘들이 들어서며 이슬람 회당인 모스크로 변모하게 되었다.

이런 역사 때문에 기독교와 이슬람의 흔적들이 혼재된 모습이 매우 흥미롭다. 그중에서 높은 벽 위에 새겨진 비잔틴 시대의 모자이크들은 이슬람 시대의 훼손 흔적인 덧칠을 벗고 현대에 훌륭하게 복원되었다. 그 중에서도 성모를 가운데 두고 황제와 왕비가 그려진 그림, 예수와 황제, 왕비가 있는 그림, 천사 가브리엘의 모자이크들이 눈길을 끈다. 또한 56m의 높은 돔 아래에 펼쳐지는 넓은 공간은 찬탄이 절로 나오게 한다.

소피아성당을 나와 가는 곳은 바로 건너편에 있는 블루 모스크(Sultandhmaet Mosque).

 이 이슬람사원은 돔 주위로 첨탑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모습이 장관인데 수많은 이스탄불의 모스크 중에서 여섯 개의 첨탑(Minaret)을 가진 곳은 여기밖에 없다. 뾰족한 첨탑은 밤에 보면 묘하게 요염한 느낌마저 줄 것이다. 내부를 장식하는 푸른 타일 때문에 블루 모스크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린다. 모스크 안으로 들어가면 250여 개의 창을 통해 들어온 빛이 신비롭다. 그리고 넓은 예배당의 여기저기서 예배를 올리는 무슬림들로 매우 경건한 분위기다. 일부 과격분자들로 인한 테러로 그 이미지가 많이 손상된 이슬람의 원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반가운 마음마저 든다.  

나는 이슬람의 이 자도 모를 정도로 무지한 이다. 그런데 가이드의 설명을 듣노라면 이슬람을 테러로만 이해하기 전에 건전한 사상과 종교로 이해하다 보면 어느 종교보다 합리성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한양대 이희수 교수님의 열띤 강의에서 말했듯이 일방적이 편견으로 이해하는 테러 이미지는 일부 극소수( 10% 미만) 이고 대부분이 건전한 사상의 종교라는 것을 느껴보고 싶었다.  

이스탄불의 여행 중에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유람선을 타고 잔잔한 지중해 바다의 에머랄드 빛의 보스프러스 해협을 항해하는 것이다

 유람선 갑판에 앉아 지중해로 연결되는 보스프러스 해협을 돌다 보면  아시아의 풍경이 눈에 잡힐 듯 들어온다.

제국주의 시대에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재상 메테르니히는 ‘비엔나()의 서쪽은 동양’이라고 했다. 여기서 ‘동양’이란 당시 서구인의 다분히 오만한 시선에서 볼 때 선진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한 야만의 땅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제 그 동양이 세계 헤게모니의 중심에 다시 서기 위해 힘차게 발걸음을 내디디는 것을 보노라면 ‘역사는 순환하는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생각하게 된다. 빈의 한참 동쪽에 있는 이스탄불은 상징적인 동서의 교차로가 아니다. 이 도시는 지리상으로 정확히 동과 서, 즉 아시아와 유럽이 만나는 장소다. 두 대륙이 바로 코앞에 닿을 듯이 가깝게 보이는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나는 내 아내에게 이렇게 혼자서  말하곤 했다.  "역사가 이루어지는 현장에는 늘 당신과 같은 아름다운 여인이 곁에 있어 역사를 만들어 나갔고, 우리 가정의 역사도 당신과 내가 함께 열심히 써나가고 있다고......"   

아시아와 유럽이 만나는 이 해협에서 나는 그 옛날 아시아 상인들의 목소리와 힘찬 삶의 고동을 듣는 듯하고 해상왕 장보고의 신라호가 이곳에 깃발을 내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였다

맑고 잔잔한 에머랄드 빛 바다를 항해하다 보니 멀리 일본국기의 함대가  앞에는 일장기를 뒤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하던 욱일승천기를 달고 궁전 앞에 정박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대들도 그 옛날 제국의 향수가 그리워 이곳을 찾았는가? 라는 생각을 하며 씁슬한 기분이 들기도 하였다

 하나의 도시가 두 개의 대륙에 걸쳐 있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가. 그만큼 이 도시는 두 대륙의 상이한 문화를 속속들이 체험화하고 있다. 324년부터 기독교 문화권인 동로마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로, 그리고 1453년부터는 이슬람 문화권인 오스만제국의 수도인 이스탄불로. 이 두 개의 이름만으로도 이스탄불의 무게가 남다르게 다가온다. 1922년 서구 세력에 의해 와해된 제국의 마지막 술탄이 이스탄불을 떠나고 수도가 앙카라로 옮겨졌지만 사람들의 마음속 터키의 수도는 영원히 이스탄불로 남아 있을 것이다.  

전세계에서 온 여행자들로 관광지가 꽤나 붐비는데 문득 터키의 앞날이 궁금해졌다.

터키는 우리에게는 낯설지 않는 나라다로마시대와 비잔틴시대를 마감한 오스만 제국(1297~1922)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의 피가 흐르는 징기스칸의 후예인 돌궐족으로 아시아계의 유목민이 세운 국가이다. 내가 고교 시절에 배운 세계사에서는 오스만 투르크족이라 배웠는데 투르크라는 말이 돌궐이란 말의 발음과 유사함은 근원이 같음을 의미하는 듯하다.  

터키는 62년 전 대한민국이 동족 상잔의 전쟁을 치루고 있을 때, 우리에게 두 번째로 많은 군대를 파견하여 우리와 함께 피를 나눈 형제의 나라이다.  2002년 월드컵에서  우리 나라와 준결승 경기를 치루며 멋진 경기를 세계방방 곳곳에 보여준 나라, 우리와 같이 우랄알타이어 계의 언어를 쓰고 있는 나라, 이 모든 것이 동질감을 느끼듯이 친근하게 우리 곁에 다가와 도시의 일부 시민들이 우리를 보면 코리아 외치며 월드컵 때 응원가인  "대한민국"을 소리쳐 불러 주기도 했다

  요즘 터키는 아주 작은 유럽 쪽 영토를 빌미 삼아 유럽연합(EU)에 가입하려고 많은 애를 쓰고 있다. 하지만 EU는 쿠르드족의 인권등 여러 이유를 들어 터키의 가입을 꺼리고 있다. 기독교 세력인 동로마제국을 무너뜨리고 이슬람의 오스만제국을 세웠던 사람들, 그 제국 역시 무너졌지만 여전히 이슬람의 전통이 많이 남아 있는 터키가 EU에 가입하는 것은 어찌 보면 유럽의 포용력에 달린 문제라고 하겠다. 종교와 인종의 차이를 넘어 세계가 평화롭게 하나가 되는 멀지 않은 미래를 기대해본다.  

아울러 동방의 끝이자 유럽의 관문인 터키, 그 옛날 오스만 제국을 향해 발전의 몸부림 치고 있는 터키!

나는 우리와 인연이 깊은 이 나라의 무궁한 발전과 영광을 빌며 이 글을 마친다.